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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사이버 멍석말이에 앞장서는가

입력
2023.05.27 00:0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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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백호 kt 위즈 선수. 연합뉴스

강백호 kt 위즈 선수. 연합뉴스

올해 3월에 펼쳐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은 한국 야구팬들에게는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았다. 대부분의 팬이 우리나라가 본선 8강에는 오를 거라고 예상했지만, 한국 국가대표는 한 수 아래라고 예상했던 호주에 석패하고, 일본에 큰 점수차로 패하면서 1라운드의 벽을 넘지 못했다. 세계 3위 규모의 야구 리그 KBO가 열리는 나라의 우울한 결과였다. 야구 관계자들에게도, 팬들에게도, WBC 특수를 노렸던 배달 업체들에도.

그중 한 선수에게는 WBC가 더욱더 우울한 기억으로 남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kt 위즈의 강백호 선수 말이다. 강 선수는 호주전에서 세리머니를 하다가 실수로 아웃되고 말았다. 2루타를 친 뒤, 베이스에서 발을 뗀 채로 세리머니를 하다가 태그를 당한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강 선수를 질타했다. 정작 강 선수는 이번 WBC 한국 팀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퍼포먼스를 보였지만, 그의 성적은 이 사건에 묻혀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WBC의 고통스러운 기억도 천천히 묻혔고, KBO의 정규리그가 시작됐다. 그런데 강 선수는 또 다른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5월 18일이었다. 강 선수는 김현수 선수의 안타를 처리하다가, 너무 느슨하고 느린 송구로 앞서 있던 주자 박해민 선수의 득점을 허용하고 만 것이다. kt 위즈 패배의 단초가 되는 치명적인 실수였다.

수많은 스포츠 언론들이 온갖 자극적인 헤드라인을 이용하여 강 선수를 공격했다. '무성의한 플레이, 무슨 생각인거야'라든지, '강백호 리스크'라든지, '초등학생도 안 할 플레이'라든지. WBC에서 벌어졌던 사건까지 끌어올려서 강 선수를 적극적으로 공격하는 것을 보고 있자니, 선수 한 명을 일부러 매장하려고 이러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들 정도였다.

강 선수가 실수한 것은 맞지만, 야구는 한 시즌 동안 144경기나 치르는 장기전이다. 그 수많은 경기 동안 저지른 한 번의 실수에 자신의 존재가 팀의 리스크라는 심각한 인격 침해까지 받아야 했을까? 99년생, 이제 스물다섯 살인 선수가?

거기다 강 선수는 한국 최고의 타자 중 하나다. 그는 2018년 신인 선수로 kt 위즈에 지명될 때부터 수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받았고,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내가 응원하는 팀 NC 다이노스에 강 선수가 온다면 나는 아마 우리집 앞마당에 석유가 터지는 것과 비슷한 기쁨을 느낄 것이다. 슬프게도 그럴 일은 없겠지만….

어쨌든, 이토록 대단한 재능을 가진 선수를 목격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야구팬으로서 기쁜 일이다. 단지 조회수를 좀 끌어보려고 억지로 논란을 만들어 내서 그런 놀라운 선수 한 명을 사이버 멍석말이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강 선수가 재능을 펼치기 힘들까 봐 걱정이 되고 화가 난다.

주요 포털 사이트들이 연예·스포츠 기사의 댓글 작성을 금지한 지가 꽤 되었다. 전혀 정제되지 않은 악의에 가득찬 댓글들이 연예인과 운동선수 개인에게 무수히 쏟아졌고, 이로 인해 수많은 유명인들이 큰 피해를 입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게 합리적인 결정이었다고 믿는다. 그런데, 언론이 앞장서서 악의에 찬 기사를 쓰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그로 인한 피해는 무슨 수로 막을 것인가?


심너울 SF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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