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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의 잠을 깨운 ‘잠’, 파란 일으킨 ‘화란’

입력
2023.05.25 16:17
수정
2023.05.25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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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칸국제영화제를 10번째 취재 중인 라제기 영화전문기자가 칸에서 극장 안팎 이야기를 전합니다.

영화 '잠'의 배우 정유미(왼쪽부터)와 유재선 감독, 이선균이 21일 프랑스 칸 미라마르극장에서 열린 공식 상영회가 끝난 후 환호와 박수에 화답하고 있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잠'의 배우 정유미(왼쪽부터)와 유재선 감독, 이선균이 21일 프랑스 칸 미라마르극장에서 열린 공식 상영회가 끝난 후 환호와 박수에 화답하고 있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올해 칸국제영화제에는 한국 영화가 7편 초청됐습니다. 장편 5편, 단편 2편입니다. 장편은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화란’), 비경쟁 부문(‘거미집’), 미드나이트 스크리닝 부문(‘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 비평가주간(‘잠’), 감독주간(‘우리의 하루’)에 1편씩 선정됐습니다. 하지만 허전한 기분을 감출 수 없습니다. 영화제의 꽃인 경쟁 부문 명단에 든 한국 영화가 없기 때문입니다. 지난해에는 박찬욱 감독이 ‘헤어질 결심’으로 감독상을, 송강호가 ‘브로커’로 남자배우상을 수상하는 진기록을 연출해 더 대비되는 듯합니다.

황금종려상 다투는 작품이 없다고 한국 영화계가 올해 칸영화제에서 별다른 수확을 얻지 못했다 할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주목할 점이 있습니다. 신인 감독 2명이 ‘잠’(감독 유재선)과 ‘화란’(감독 김창훈)으로 칸영화제 초청장을 받은 점입니다.

‘잠’은 지난 21일 오전(현지시간) 한국 영화로서는 첫 상영회를 가졌습니다. 몽유병을 소재로 한 공포 영화이나 섬뜩함만을 전하지 않습니다. 잔잔한 웃음과 따스한 사랑을 담고 있으면서도 사회 비판 의식이 번득입니다. 가부장제와 육아문제, 층간소음 문제가 은근히 다뤄집니다. 신인 감독의 솜씨로 보기에는 놀라운 대목이 적지 않습니다.

첫 장면부터 인상적입니다. 어둠 속에서 남자 코 고는 소리가 들리고, 이윽고 나타나는 얼굴은 여자 수진(정유미)입니다. 영어자막에서도 재치를 드러냅니다. 수진의 남편 오현수(이선균)는 연극배우입니다. 수진이 현수를 ‘오 배우’라고 부를 때 자막은 ‘Oscar Winner’입니다. 이선균이 오스카 작품상을 수상한 ‘기생충’의 주연배우임을 감안해 만든 자막입니다. 관객들은 이 부분에서 꽤 큰 웃음을 터트렸습니다.

유재선 감독은 연세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대학 동아리에서 단편영화를 만들며 감독의 꿈을 키웠습니다. 봉준호 감독의 ‘옥자’(2017) 연출부로 일하며 제작 전반에 대한 공부를 많이 했다고 합니다. 영화 상영이 끝난 후 관객들은 진심 어린 박수와 환호를 보냈습니다. 유 감독은 ‘리틀 봉’이라는 별명이 붙어도 이상하지 않을, 인상적인 데뷔식을 치러냈습니다.

영화 '화란'.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화란'.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제공

‘화란’ 역시 만만치 않은 영화입니다. 가정폭력에 시달리다 폭력조직에 가담하는 고교생 연규(홍사빈)의 사연을 그립니다. 연규가 흠모하는 중간보스 치건을 송중기가 연기했고, 연규의 이복동생 하얀을 김형서(가수 비비)가 맡았습니다. 꽤 화려한 출연진을 자랑하는 이 영화는 초반 30분가량 괴물 같은 야성을 발산합니다. 폭력에 시달리는 연규가 폭력적으로 변해가는 과정은 우리 사회의 현실을 생각하게 합니다.

김창훈 감독은 어려서부터 감독이 되고 싶었다고 합니다. 동아방송예술대 졸업 후 10년 동안 시나리오 작업에 몰두했습니다. 모텔에서 일하거나 페인트칠 등을 하며 계속 글을 써 감독 데뷔를 준비했다고 합니다. ‘화란’은 2016년 시나리오를 썼다고 하니 7년 만에 결실을 맺은 겁니다. ‘화란’은 프랑스와 벨기에, 네덜란드 등 15개국에 선판매되며 해외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합니다.

한국 영화가 위기라는 말들이 많습니다. 올해 개봉한 한국 영화 중 관객 100만 명을 넘긴 건 ‘교섭’과 ‘드림’ 2편에 불과합니다. 한국 영화 흥행 1, 2위 영화인 2편 모두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했습니다. 1년에 1,000만 영화가 2편씩 나오던 코로나19 이전과 너무 다릅니다. 영화계에선 ‘100만 보릿고개’라는 말까지 나옵니다. 한국 영화에 새로운 전환점이 필요한 시기, 재능과 패기를 지닌 신인 감독들의 등장은 반갑기만 합니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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