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트렌디 요람이었는데... '늙어가는' TV 미니시리즈
'청년 세상' OTT와 간극 심화
"TV 충성도 높은 중년 잡자" 1960, 80년대 시대극 제작 봇물
과거에 치우진 전략이 미래? 언 발에 오줌 누기 우려도
요즘 TV에서 시청률이 가장 높은 세 드라마(미니시리즈)인 JTBC '닥터 차정숙'(주간 평균 17.4%·5월 셋째 주 기준)과 SBS '낭만닥터 김사부3'(13.4%), JTBC '나쁜 엄마'(8.0%)엔 공통점이 있다. 드라마가 시작되고 화면에 가장 먼저 이름이 뜨는 주인공이 모두 중년 배우다. '닥터 차정숙' 엄정화(54), '김사부3' 한석규(59), '나쁜 엄마' 라미란(48) 등이 그 주역이다. 세 배우의 평균 나이는 약 54세. 안방극장을 쥐락펴락하는 건 청춘스타들이 아닌 중년들이다. TV 미니시리즈가 고령화되고 있는 것이다. 20, 30대 젊은 배우를 내세운 트렌디 드라마를 중심으로 오랫동안 미니시리즈 유행이 흘러왔던 것을 고려하면 새로운 흐름이다.
TV 미니시리즈가 '늙어 가는' 현상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드라마들과 비교하면 확연하다. 넷플릭스 '택배기사' 김우빈(34)부터 디즈니플러스 '레이스' 이연희(35), 웨이브 '박하경 여행기' 이나영(44), 넷플릭스·웨이브 '청담국제고' 이은샘(24)까지. 이달 OTT에서 공개되거나 선보일 드라마는 젊은 배우들의 세상이다. 네 배우의 평균 나이는 34세. TV 미니시리즈 주역 배우들과 비교하면 무려 20세가 낮다. TV냐 OTT냐, 즉 플랫폼에 따라 벌어지는 '드라마 세대 격차'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TV 드라마의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이유
TV 미니시리즈의 고령화는 방송사 시청률 하락과 그에 따른 광고 매출 급감과 무관하지 않다. 공시에 따르면, SBS의 올해 1분기 광고 매출은 월드컵 특수를 누린 전년 동기 대비 약 36% 떨어졌고, CJ ENM도 같은 기간 30% 줄었다. TV 채널을 보유하고 있는 한 콘텐츠 스튜디오 관계자는 25일 "시청률은 광고 수익과 직결된다"며 "TV를 떠나고 있는 10, 20대 대신 '본방 사수'에 충성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중년 시청자를 잡기 위해 드라마 제작 및 편성 추세가 달라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3, 4년 전만 해도 '트렌디 드라마 왕국'으로 불렸던 tvN이 올해 '일타스캔들'과 '패밀리' 같은 가족극을 줄줄이 내놓고, JTBC가 '닥터 차정숙'과 '나쁜 엄마' 등 중년 엄마가 주인공인 드라마를 연이어 편성한 배경이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이 올 상반기 낸 '2022 방송매체 이용행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TV를 필수 매체라고 생각하는 10대와 20대는 모두 1.6%에 불과했다. 반대로 60대와 70대는 52.5%와 84.7%로 높았다. 방송사들이 충성도 높은 중년 시청층 잡기에 혈안이 되면서 과거를 다루는 시대극 제작은 새삼 가열되는 추세다. KBS는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한 미니시리즈 '오아시스'(3~4월)와 '어쩌다 마주친 그대'(5월~)를 올 상반기에 연달아 방송했고, tvN은 1938년을 무대로 한 '구미호뎐 1938'을 이달부터 내보내고 있다. MBC는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 '수사반장'의 프리퀄(원작의 전사)인 '수사반장 1963'을 내년 방송을 목표로 제작 중이다. TV에선 시간이 거꾸로 흐르고 있는 셈이다. 공희정 드라마 평론가는 "만화 '영심이'(1990)의 20년 후를 배경으로 제작된 ENA 드라마 '오! 영심이'의 등장도 중년 시청자의 중요성이 TV 시장에서 커지고 있는 데 따른 변화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봤다.
중년·과거에 치우진 이야기의 두 얼굴
드라마 제작 현장의 목소리를 종합하면, 방송사 등에서 중년 서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 관련 드라마 기획이 곳곳에서 활발히 이뤄지는 분위기다. 이런 흐름을 보여주듯 아파트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통해 엄마들의 '진짜 행복'을 묻는 ENA 드라마 '행복배틀'이 31일부터 방송되고, 밥하던 아줌마들이 탐정단으로 돌변하는 범죄 추리극 '살롱 드 홈즈'(이미지나인컴즈 제작)도 제작되고 있다. 소설을 쓰는 박생강 드라마평론가는 "로맨스에 치중한 기존 중년 드라마들과 달리 요즘 중년 드라마는 인생 재발견에 치중하는 경향이 짙다"며 "50, 60대도 미래에 대한 불안이 커진 고령화 시대의 반영"이라고 해석했다.
하지만 중년 시청자를 잡기 위한 방송사들의 이런 전략이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당장은 중년 시청자를 잡을 수 있어도 추억과 중년에 치우친 콘텐츠 제작 및 편성 전략은 TV 플랫폼의 미래 소비자와의 간극을 더 벌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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