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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귀했길래, 세종 울린 '전복 효심'

입력
2023.05.23 20:0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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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현
이주현푸드칼럼니스트·요리연구가

편집자주

음식을 만드는 것도 사람, 먹는 것도 결국 사람이다. 우리 일상을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음식과 음식 이야기에 담긴 인문학적 의미를 알기 쉽게 풀어내고, 그 의미를 독자들과 공유한다.

전복 파스타. ⓒ이주현

전복 파스타. ⓒ이주현

보양식의 계절을 코앞에 두고 있다. 이번 여름은 유난히 뜨거울 것이라는 무시무시한 소식을 접하면서 일찌감치 보양식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 보양식 하면 삼계탕, 장어, 오리 고기 등의 음식이 떠오르기 마련이다. 그중 계절 불문 부동의 1순위를 지키는 한국의 대표 보양식은 바로 '전복'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몸이 아플 때면 가장 먼저 전복죽을 찾곤 한다. 인스턴트 라면에도 전복 몇 알이 들어가면 고가의 산해진미 요리로 신분이 바뀐다. 삼계탕에도 전복이 합세하면 주인공인 닭 보다 전복에 시선을 빼앗기고야 마니, 여러모로 전복의 위력이 참 대단하다. 전복은 대체 언제부터 한국의 대표 보양식이 된 걸까.

특정 음식이 보양식으로 사랑받으려면, 우수한 영양은 물론이고 귀한 식재료라는 인식이 더해져야 한다. 전복의 풍부한 영양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전복은 언제부터 우리에게 귀한 식재료로 여겨졌는지 그 배경을 살펴봐야 한다. 전복은 선사시대의 패총에서 전복 껍데기가 나왔을 만큼 그 역사가 오래되었다. 그러다 본격적으로 귀한 대접을 받기 시작한 건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다. 전복은 임금님의 수라상에 올라가는 귀한 진상품 중 하나였다. 당시 전복은 해녀들이 직접 바다에서 채취하였는데, 전복이 바다 깊은 곳에 서식하는 바람에 갖은 고생을 하여도 하루에 한두 개 정도의 적은 수량만을 얻을 수 있었다. 그마저도 전복이 귀한 음식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탐관오리나 관리들의 갈취 행위가 심각했다. 세상만사가 그렇겠지만, 음식은 먹기 어려울수록 귀한 대접을 받는다. 전복의 공급량은 절대적으로 적었고, 일반 백성은 일생 동안 전복을 구경조차 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었다.

수급 상황이 이렇다보니 민간뿐만 아니라 왕실에서도 전복은 진귀한 음식이었다. '조선왕조실록'을 살펴보면, 세종이 당뇨와 눈병으로 고생하던 시기가 있었다. 그 당시에 전복 껍데기는 '석결명'이라고 불렸는데 '눈을 밝게 해주는 딱딱한 물질'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이에 아들 문종이 전복을 구해 와 약을 바치는 심정으로 아버지 세종에게 직접 썰어 드렸다. 그러자 세종이 귀한 전복을 구해 온 아들의 효심에 감동해 눈물까지 흘렸다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그 당시에도 전복만큼 영양이 풍부한 음식이 여럿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이처럼 귀한 대접을 받지는 못한다. 아마도 전복의 희소성과 사회문화적 배경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지금까지 한국의 대표 보양식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 아닐까.

전복은 영양도 풍부하지만, 그 맛 역시 가히 최고의 식재료로 여겨질 만큼 뛰어나다. 이웃 나라 중국에는 아주 큰 냄비의 국물 요리에도 건전복 몇 알만 넣으면 다른 조미료가 필요 없다는 말이 있다. 그 정도로 전복 한 알에는 진한 감칠맛이 담겨 있으니 다른 식재료의 도움 없이 큰 역할을 톡톡히 한다.

무더운 여름, 불 앞에서 땀 뻘뻘 흘리며 쑤는 전복죽보다 더 빠르고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보양식 요리가 있다. 버터와 전복의 단순한 조합이 최고의 맛을 내주는 전복 파스타이다. 먼저 전복을 깨끗하게 손질한다. 내장 부분은 가위로 잘게 다진 후에 비린맛을 제거하는 맛술을 한 큰술 넣어 섞는다. 기름을 두른 팬에 버터를 녹이다가 손질한 전복살을 넣고 볶는다. 여기에 고소한 내장 소스와 삶은 파스타 면을 넣고 잘 섞어준다. 취향에 따라 다진 마늘, 크림, 치즈 등을 추가해도 좋지만, 깔끔하게 간장이나 소금간으로 마무리하면 쫄깃 담백한 전복살과 부드러운 버터향의 조합을 온전히 즐길 수 있다.

전복은 어떻게 요리해도 그 맛과 영양이 뛰어나다. 하지만 한국인이라면 예로부터 진귀한 음식으로 여겨왔던 전복을 먹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마음이 흡족해진다. 그러니 전복은 우리의 몸과 마음에 기력을 회복시켜주는 보양식으로서 앞으로도 굳건히 그 자리를 지키지 않을까.

이주현 푸드칼럼니스트·요리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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