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칸국제영화제를 10번째 취재 중인 라제기 영화전문기자가 칸에서 극장 안팎 이야기를 전합니다.
올해 칸국제영화제는 한국 기자들에게는 상대적으로 좀 한가합니다.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과 일본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브로커’가 경쟁 부문에 올랐던 지난해에 비해 올해는 경쟁 부문에 초청된 한국 영화가 없어서입니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으로 글로벌 스타가 된 배우 이정재의 감독 데뷔작 ‘헌트’가 미드나이트 스크리닝 부문에서 첫선을 보인 점도 기자들의 손발을 바쁘게 만들었습니다. 올해는 단편영화 2편을 포함, 7편이 초청됐어도 치열한 수상 다툼이 없으니 조금은 여유롭게 영화제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아쉬움은 당연히 있습니다. 눈은 내년으로 자연스레 향하게 됩니다. 과연 올해와 달리 내년에는 한국 영화(또는 한국 감독이 연출한 영화)가 경쟁 부문 레드 카펫을 밟을 수 있을까요. 세계 영화 애호가라면 눈이 크게 떠질, 한국 감독의 신작이 내년 개봉합니다. ‘기생충’으로 오스카 4관왕 신화를 쓴 봉준호 감독의 할리우드 영화 ‘미키17’입니다. 내년 봄에 개봉한다니 칸영화제에 초청될 만도 합니다. 봉 감독은 2919년 ‘기생충’으로 칸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했으니 경쟁 부문 강력 후보로 거론될 만합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배급사 워너브러더스는 내년 3월 29일 ‘미키17'을 극장 개봉한다고 지난해 12월 이미 발표한 상황입니다. 여러 영화들을 공개하는 대형 스튜디오로서는 특정 영화의 개봉 일정을 쉬 바꾸지 못합니다. 큰 변수가 없는 한 ‘미키17’은 내년 3월 관객과 만나는 것이 확정적입니다. 칸영화제가 5월 중순 개막하는 일정을 감안하면 ‘미키17’의 칸영화제 초청은 아예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세계 유수 영화제들은 ‘세계 첫 상영(World Premier)’을 중시합니다. 영화제 중의 영화제로 꼽히는 칸영화제는 특히 첫 상영을 영화 초청의 중요 잣대로 생각합니다. 유명 감독이나 유망한 신인의 영화가 칸에서 세계 첫 공개되면 세계 영화인들과 영화팬들의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습니다. 첫 상영은 영화제의 권위를 내세우고 지키기 위한 중요 방법 중 하나입니다.
예외는 늘 있기 마련입니다.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는 2003년 11월 개봉하고도 다음 해인 2004년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됐습니다. 처음 발표된 명단에는 없었으나 추가 발표 때 경쟁 부문에 깜짝 합류했습니다. 당시 경쟁 부문 심사위원장이었던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강력한 요청에 따른 결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올드보이’는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했고, 이후 박 감독은 ‘깐느 박’이라는 별명을 얻게 됩니다. ‘미키17’이라고 ‘올드보이’의 길을 가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다만 그 가능성이 희박할 따름입니다.
예단해서는 안 되겠으나 내년에도 한국 영화는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오르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비경쟁 부문이나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등 다른 부문을 거치지 않고 단번에 경쟁 부문에 초청되기는 쉽지 않습니다. 한국 감독 중 칸영화제를 경험한 이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칸영화제는 유망 감독에게 한번 눈길을 줬다 해도 될성부른 떡잎이 아니면 외면하고는 합니다. 한국 영화는 이창동 박찬욱 봉준호 감독 이외에 경쟁 부문에 진출할 만한 감독들을 길러내지 못했습니다. 칸영화제 경쟁 부문이 별거냐 할 수 있겠으나 세계 영화계에서는 특별한 지위입니다. 한국 영화의 부흥을 이어가기 위해선 지속적인 진출이 필요합니다. 봉 감독은 아니더라도 누군가 깜짝 놀랄 만한 수작으로 칸영화제의 눈길을 사로잡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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