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선 감독 '잠' 비평가주간서 기립박수
수작 공포 영화로 대형 신인감독 예감
"'옥자' 연출부로 영화 만들기 다 배운 듯"
장편 데뷔작으로 칸국제영화제에 초청됐다. 칸 입성만으로 주목받을 일. 영화제 첫 공개 자리에서 기립박수와 환호가 터졌다. 21일 오전(현지시간) 프랑스 칸 미라마르극장에서 열린 ‘잠’ 상영회는 대형 신인감독의 탄생을 예감케 하는 자리였다. 이날 오후 영화진흥위원회 부스에서 만난 ‘잠’의 유재선 감독은 “제 영화의 칸영화제 상영은 어느 평행우주에서나 가능한 일이라 생각했다”면서 “배부른 거를 넘어 배가 터질 지경으로 복에 겨운 상황”이라며 흥분과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잠’은 비평가주간 경쟁 부문 초청장을 받았다.
‘잠’은 신혼부부 현수(이선균)와 수진(정유미)이 주인공이다. 연극배우인 현수는 갑자기 몽유병에 시달린다. 낮에는 다정다감한 남편이나 잠만 들면 괴물로 돌변한다. 현수는 의사를 만나나 신통한 방법이 없다. 수진이 딸을 출산하면서 부부의 위기감은 더 커진다. 급기야 현수는 무당으로부터 남자귀신이 씌었다는 말까지 듣는다. 부부 관계는 결국에 파국 직전으로까지 치닫는다. 영화는 가부장제와 육아의 고통을 다루면서 층간소음이라는 사회 문제까지 끌어온다. 공포와 사회극, 코미디를 자유롭게 오가며 섬뜩함과 웃음 등 다양한 감정을 제조하는 연출 솜씨가 신인답지 않다.
유 감독이 ‘잠’을 연출한 건 “피상적인 호기심”에서 비롯됐다. 그는 “몽유병 때문에 건물에서 떨어질 뻔했다든지 옆에서 자는 사랑하는 사람을 해쳤다는 등의 괴담에 충격받은 기억이 있다”며 “몽유병 환자들의 일상은 어떨까 궁금증이 생겼던 것 같다”고 말했다.
영화에는 유 감독의 일상이 녹아있다. 배우의 꿈을 포기하려는 현수의 처지는 “‘잠’ 시나리오를 쓰던 시기” 유 감독 상황과 “굉장히 비슷”했다. 유 감독은 “당시 7년 사귄 여자친구와 결혼을 준비 중이어서 인생의 화두가 결혼이다 보니 무의식적으로 결혼 생활에 대한 이야기가 탄생한 것 같다”고 말했다. 현수는 유 감독 자신을, 수진은 유 감독의 아내를 모델로 캐릭터를 구축했다. ‘둘이 함께라면 어떤 문제라도 극복할 수 있다’ 현수ㆍ수진 부부의 가훈은 유 감독 아내의 신조이기도 하다.
유 감독은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군대 시절 ‘킬러들의 도시’(2008)를 보고 처음으로 저런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고, 이후 영화동아리에서 단편영화를 만들며 감독의 꿈을 키웠다. 그는 영화자막 번역 일을 많이 했고, 영화 ‘옥자’(2017) 연출부로 일하기도 했다. 21일 상영회에서 사회자는 유 감독을 “봉 감독 조감독(Assistance)”이라고 소개했고, 객석에서는 작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유 감독은 “촬영 전 단계부터 촬영, 후반 작업, 프로모션까지 ‘옥자’와 2년을 함께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시엔 뭘 배운다는 생각은 전혀 안 했고, 저 때문에 영화 망치는 일 없게 하는 게 목적이었다”고 돌아봤다. ‘잠’을 찍으며 봉 감독이 자신에게 끼친 영향을 체감했다. “촬영 준비, 후반 작업, 배우를 상대하는 모습 등 제가 봉 감독님을 따라 하려고 발버둥치는 제 자신을 발견했어요. 영화 만들기에 대한 모든 것을 ‘옥자’를 통해 배운 게 아닐까 생각이 들어요.” 유 감독은 “봉 감독님이 칸영화제 초청에 대해 아주 좋아하시고 축하한다는 말을 해주셨다”고 전했다.
유재선 감독은 칸영화제 모든 부문 신진 감독을 대상으로 하는 황금카메라 후보다. 그는 “지금도 과분한 운과 사랑과 관심을 받고 있어 너무너무 행복하다”며 “지금 이 순간만으로도 감사하고 영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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