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수 부족에 불용액 전용 등 자구책
총선 앞두고 '표퓰리즘' 나랏빚 우려
'재정준칙' 뒷전... 기재위, 불신 자초
국세 수입이 목표치를 밑도는 ‘세수 결손’이 유력해지며 예산안 손질이 불가피해 보이는 형편이 됐는데도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편성할 수 없다는 정부 입장은 요지부동이다. 드러내지는 않아도 국회를 믿지 못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정치적 셈법에 의해 추경안이 뒤틀릴 수밖에 없으리라는 것이 의원 생리에 밝은 현직 재선 의원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우려다.
21일 기재부에 따르면, 정부가 3월 말까지 걷은 국세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4조 원 적은 87조1,000억 원이다. 경기 하강과 자산시장 부진 등이 겹친 결과다. 4월부터 연말까지 작년과 같은 규모의 세금이 걷힐 것이라고 비교적 낙관적으로 가정해도 연말 세수 부족분은 30조 원에 육박할(28조6,000억 원) 전망이다. 지난해 말 국회에서 확정된 세입 예산은 400조5,000억 원이다.
이에 일단 정부 재량으로 가능한 자구책부터 강구한다는 게 정부 계획이다. 현재 확실한 가용 자금 규모는 15조 원가량이다. 지난해 예산에 잡혔다가 사용되지 못하고 넘어온 불용액 12조9,000억 원에, 우선순위에 따라 지방교부세 정산, 공적자금기금 출연, 채무 상환 등에 쓰고 남은 작년 세계잉여금 2조8,000억 원을 합친 금액이다. 여기에 기금 여유자금도 보태질 수 있다. 약 5조 원이 최대일 것으로 예상된다. 2016년 이래 한 해 5조 원 이상의 기금 여유자금이 추경에 투입된 경우가 없었다는 게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장혜영 정의당 의원실 분석 결과다.
나머지 충당 방법은 불용 예산 전용(轉用)과 체납 세금 징수 등이다. 불용은 편성한 예산을 쓰지 않는 행위로, 세수 부족 때문에 세출을 줄여야 할 때 활용하기도 한다. 불용이 예상되는 사업에 어떤 것이 있는지 정리하는 내부 검토작업에 최근 기재부가 착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17일 추 부총리가 김창기 국세청장, 윤태식 관세청장을 불러 ‘체납세액 관리 관계기관 회의’를 열고 체납액 징수를 강화해 줄 것을 주문한 것도 세수 결손이 핵심 배경이다.
이렇게 안간힘을 쓰는 것은 어떻게든 추경을 피하기 위해서다. 세입 경정을 따로 하지 않는다는 게 현재 정부 방침이다. 추 부총리는 4일 기자간담회에서 “내부적으로 세수 재추계를 하고 있지만 추경은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추경 불가’는 작년부터 추 부총리가 누차 천명해 온 원칙이다. 추 부총리가 활용하겠다고 공언한 잉여금이나 여유자금 규모로는 세수 구멍을 메우기에 역부족이라거나, 국회가 편성한 예산을 행정부가 임의로 쓰지 않으면 재량 남용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는데도 아직은 아랑곳없는 모습이다.
왜 추 부총리는 추경이라면 손사래를 칠까. 1년도 남지 않은 총선을 앞두고 국회가 어떤 식으로 움직일지를 현직 의원 처지에서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괜히 국회에 추경안을 가져갔다가 본래 취지와 반대로 지출이 불어나 긴축 기조가 깨지고 나랏빚이 늘어 재정건전성이 망가질 수 있다는 게 추 부총리 걱정이라는 것이다. 자기도 의원이지만 선거를 앞둔 의원에게는 당장 자기 당선이 급선무라 나랏돈은 수단이 되기 십상이라는 취지의 언급도 추 부총리가 한 적이 있다는 게 기재부 안팎에서 들리는 전언이다.
불신은 국회가 자초한 측면이 크다. 최근 기재위 여야가 합의하고도 선심성 지역 사업을 염두에 둔 ‘표(票)퓰리즘’ 아니냐는 비난 여론에 밀려 유보된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기준 완화가 단적인 사례다. 짧게는 작년 9월 윤석열 정부안 공개 뒤 8개월간, 길게는 문재인 정부가 법제화 추진을 시작한 2020년 10월 이후 31개월간 적자 상한을 관리하려는 목적의 ‘재정준칙’이 기재위 문턱조차 넘지 못한 채 계류 중인 것도 마찬가지 경우다. 결국 여당마저 소극적이기 때문인데, 지역구 예산을 당선 지렛대로 삼으려는 데에 여야가 다르지 않다는 게 빈축의 요지다.
다만 일각에는 예측보다 훨씬 불어난 세수 결손 탓에 스스로 세운 기준인 ‘국내총생산(GDP) 대비 적자 비율 3% 이내 관리’가 자승자박이 될 것을 염려한 정부의 속내도 재정준칙 표류에 얼마간 작용했을지 모른다는 관측이 없지 않다. 여야와 정부가 이심전심이었다는 것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급하지도 않은 일에 왜 그렇게 적극적인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야당에서 나올 정도로 정부의 준칙 법제화 의지가 강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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