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공공기관 노조는 단체협약을 체결하면서 육아휴직 대상을 '1년 이상 근속한 조합원'으로 한정했다. 현행법상 육아휴직 사용 대상자는 해당 직장에서 6개월 이상 근무한 사람인데, 범위를 노사가 임의로 좁힌 것이다. 노조 가입 대상인 직원이 노조에 가입하지 않거나 조합원이 노조를 탈퇴할 경우 회사가 이들을 해고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단체협약에 넣은 곳도 있었다. 또 다른 공공기관에선 월 170시간보다 적게 일하는 단시간 근로자의 최저임금을 총액 기준 80만 원으로 한정했는데 이는 법정 최저임금보다도 낮은 금액이다. 일부 공공기관 노조 규약에는 '노조 위원장 당선자가 임원인 사무총장을 지명·선임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모두 현행법 위반이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1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올해 3월부터 실시한 공공부문 단체협약과 노동조합 규약 실태 확인 결과, 479개 기관 단체협약 중 179개(37.4%)에 불법·무효로 판단되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고 발표했다. 정부가 조사한 대상은 공무원·교원·공공기관의 단체협약이다.
법 위반 사항이 많은 이유는 일반 사기업 노조와 달리 공무원·교원 노조가 '공무원노조법'과 '교원노조법'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공무원노조법은 국가·지자체의 정책결정에 관한 사항이나 임용권의 행사 관련 사항은 교섭 대상이 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일부 공무원노조 단체협약에 포함된 △구조조정 등을 이유로 정원 축소 금지 △성과상여금 집행 전 노조와 합의 △조합원 복지예산 편성 시 노조와 사전 합의 등 조항을 정부가 위법하다고 판단한 이유다.
이 장관은 "민간부문과 달리 공무원노조법은 교섭해서는 안 되는 사항에 대해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며 "그 부분은 국회나 지방자치단체, 지방의회의 권한을 제한할 소지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밖에 고용부가 판단하기에 '공정과 상식의 국민 눈높이에서 불합리하다고 여겨지는 내용'이 포함된 단체협약도 135개(28.2%)에 달했다. 예를 들어 한 국립대 노조는 대학 본부로부터 운영비 연 600만 원, 포럼비 연 1,400만 원, 워크숍·체육문화활동비 연 2,000만 원을 지원받고 있는데, 고용부는 "세금이 포함됐으므로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이 장관은 "노사가 잘 몰랐거나 아예 담합해서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단협을 체결하는 사례는 앞으로 개선되리라 본다"며 "불법인 단체협약 및 노조 규약은 노동위원회 의결을 얻어 시정명령하고, 불응할 경우 노동관계법 위반으로 형사처벌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노동계는 이날 고용부의 발표에 즉각 반발했다. 한국노총은 "단체교섭과 단체협약을 통해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것이 노사관계의 기본원칙"이라며 "구조조정이나 조직개편 시 노조 합의를 요구한다거나, 인사위원회에 노조 추천 인사를 포함하도록 하는 것은 노동조건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 노조와 협의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고도의 정책결정 사항이나 임용권 침해라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한 공공기관 노조 위원장은 "노조에서 과도하게 요구한 것도 있고 국민 눈높이에 안 맞는 것도 일부 있겠지만, '인사위원회에 노조 추천 인사 포함' 등 단체협약에 꼭 필요한 일부 내용까지 싸잡아서 비판하는 건 정부가 나서서 노조 혐오를 조장하는 것"이라며 "법이 있더라도 기관·업종마다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2, 3년에 한 번씩 단체협약을 체결하는 건데, 법대로만 할 거면 이게 다 무슨 의미가 있냐"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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