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대표 시민단체' 사하로프 센터
세르게이 루카셰프스키 소장 인터뷰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통치하는 러시아에서 시민단체는 온전히 기능할 수 없다. 푸틴 대통령은 2000년 집권 후 정권을 비판하는 세력에 '범죄자' 딱지를 붙였다. 자유, 평화, 민주주의 등 자신이 싫어하는 가치를 좇는 이들을 탄압했다.
지난해 2월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침공을 개시한 후엔 억압이 더 심해졌다. 그해 12월 발효된 '개정 외국대리인법'은 그 정점에 있다. 외국대리인이란 외국과 연관된 정치 조직을 의미하는데, '간첩'과 유사한 의미로 쓰인다. 바뀐 법은 외국대리인으로 분류된 개인, 단체에 대한 지원을 끊도록 한다. 대중 행사도 조직할 수 없다. 전쟁 전 근근이 활동을 이어가던 시민단체의 목줄을 완전히 끊는 법이다.
'사하로프 센터'는 푸틴 대통령에게 억압당한 시민단체 중 가장 유명한 곳이다. 옛 소련에서 활동한 인권운동가 안드레이 사하로프를 기리고자 설립됐다. 사하로프는 한때 수소폭탄 개발자였으나 독재 정권에 환멸을 느끼고 핵실험 반대 운동과 스탈린주의적 독재체제 비판에 앞장섰다. 1975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고 유럽연합(EU)이 그의 이름을 딴 인권상을 매년 시상할 정도로 중요한 인물이다.
센터는 모스크바시 소유 건물을 25년 동안 사용했지만, 법 개정으로 지난 4월 말 쫓겨났다. 센터는 "외국에서 자료를 기부받았다"는 이유로 2015년 외국대리인으로 분류됐다. 소장인 세르게이 루카셰프스키(48)는 독일로 탈출했다. 그간의 억압과 향후 계획을 10일 한국일보 화상인터뷰에서 털어놨다.
푸틴 압박 속 '겨우' 지켜온 센터, 지난달 결국 문 닫아
루카셰프스키는 전쟁이 시작된 직후인 지난해 3월 독일로 거처를 옮겼다. 그는 "전쟁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공격일 뿐 아니라 시민사회에 대한 공격이 되리라는 것을 예감했다"며 "가뜩이나 '반역' '간첩' 등 혐의를 잘 뒤집어씌우는 러시아에서 전쟁은 이를 더 쉽게 만드는 명분"이라고 했다. 동료 30여 명도 해외로 흩어졌다. 센터 관리는 인권운동과 무관한 전담 직원에게 맡겼다.
루카셰프스키의 해외 이주는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보다는 센터 운영을 이어가기 위해서였다. 그는 "센터는 러시아 인권운동의 과거를 보여주고 나아가야 할 길을 보여주는 장소"라고 했다. 센터엔 소련 정권과 맞서 싸우던 사하로프의 인생이 빼곡하게 전시돼 있다. 매년 300개가량의 인권 관련 행사가 열렸고, 연 방문객은 2만 명에 달했다. 센터 존재 자체가 푸틴 정권 독재에 대한 저항이었다.
전쟁 이후 센터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벌이는 만행을 알렸다. 루카셰프스키는 "전쟁 이후에도 센터 방문객이 줄지 않은 것은 우리의 활동을 지지하는 러시아인이 많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자료 해외로 뿔뿔이 흩어져... "계속 저항할 것"
방대한 자료는 해외로 옮겨졌다. 루카셰프스키는 "협력 관계에 있던 세계 각국 기관에 자료들을 보관해야 한다"며 "언제까지 신세를 져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역사적 자료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불안도 커졌다. 이에 자료를 디지털로 변환해 저장하는 데도 속도를 내고 있다.
해외에 거주 중이어도 푸틴 대통령은 여전히 두려운 존재다. 그럼에도 꿋꿋하게 활동을 이어갈 예정이다. 루카셰프스키는 "러시아에서의 활동은 잠시 중단하지만, 유튜브, 텔레그램 등을 통해 러시아 정권과 더 치열하게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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