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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하다" 피의자 헌법소원에 '기소유예→기소' 번복한 검사... 괘씸죄 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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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억울하다" 피의자 헌법소원에 '기소유예→기소' 번복한 검사... 괘씸죄 작용?

입력
2023.05.16 04:00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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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소유예 처분 취소 청구 두 달 뒤 정식 기소
헌재 통지에 수사 재기… 헌법소원 자동 각하
검찰 "처분 불복 헌법소원 제기… 반성 없다"
뚜렷한 사정변경 없어… 변호인 "공소권 남용"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청사 전경. 홍인기 기자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청사 전경. 홍인기 기자

검찰이 기소유예 처분의 부당함을 주장하며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한 피의자를 특별한 사정변경 없이 기소한 정황이 드러나 논란이 일고 있다. 새로운 증거 등이 발견되면 검찰 처분이 번복되는 경우가 있지만, 이번 사건에선 헌법소원 외에는 별다른 변동 사항이 없었다. 헌법소원 청구에 따른 '괘씸죄'가 적용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15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부장 박혁수) 소속이던 김모 검사(현재 타 기관 파견 중)는 올해 2월 초 40대 남성 A씨와 50대 여성 B씨를 특수절도 혐의로 기소했다. 두 사람은 공모해 지난해 4, 5월 두 차례에 걸쳐 서울 서초구 무인양품 매장에서 총 2만6,700원 상당의 도시락 3개와 신발 깔창 2쌍을 훔친 혐의를 받는다.

앞서 검찰은 지난해 7, 8월 두 사람을 기소유예 처분했다. 경찰 기록을 바탕으로 혐의는 인정하되 재판에는 넘기지 않은 것이다. 김 검사는 당시 권모 검사와 한 건씩 사건을 나눠 처리했고, 경찰로부터 사건이 송치된 뒤 피의자 조사나 보완수사 요구는 없었다. 검찰은 불기소결정서에 △피해변제가 이뤄졌고 △무인양품 측도 처벌을 원치 않고 있으며 △피의자들이 범행을 뉘우치고 반성한다는 점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A씨와 B씨는 검찰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지난해 말 "기소유예 처분을 취소해 달라"며 헌법소원을 제기한 것이다. B씨는 헌법소원 청구서에서 "A씨가 몸이 불편해 물건 고르는 걸 도와줬을 뿐, 당연히 계산했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밝혔다. 인지장애가 있던 A씨가 결제하지 않고 물건을 가져간 사실을 자신은 몰랐다는 것이다. A씨도 합동절도가 아닌 자신의 단독범행이라며 헌법소원을 냈다.

헌재가 사건 접수 사실을 검찰에 통지하며 증거기록 제출을 요구하자 검찰 분위기가 바뀌었다. 김 검사는 헌재 통지 후 일주일도 안 돼 사건을 병합하고 수사 재기를 결정했다. 그리고 올해 2월 두 사람을 정식으로 재판에 넘겼다. 기소유예 처분 취소 청구사건의 경우, 검찰이 기소하면 기소유예 처분 자체의 효력이 사라지기 때문에 헌재는 각하 결정을 할 수밖에 없다.

검찰은 법원에 제출한 의견서를 통해 "피고인들은 처분에 불복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고, 이런 피고인들의 태도 및 사건 기록을 면밀히 검토한 결과 범행을 뉘우치지 않고 반성하지 않는다고 판단해 사건을 재기했다"고 처분 변경 사유를 밝혔다. 더불어 "혐의 유무를 명확히 해 달라는 헌법소원 주장에 따라 기소해 법원 판단을 받는 게 피고인들 입장에도 부합한다고 판단했다"고 강조했다.

A씨와 B씨 측은 "검사의 공소권 남용에 해당하는 위법한 공소제기"라고 반발하고 있다. 기소유예 처분 당시와 비교해 사정 변경이 없었다는 취지다. 두 사람의 변호인은 "검사가 자신의 기소유예 처분에 대해 피고인들이 헌재에 취소를 구하자 기소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또한 "합동절도를 위해 공모했다는 점이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입증됐다고 할 수 없다"며 공소사실 자체도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법조계에선 대법원 판례상 기소유예 처분을 기소로 번복한 사건의 공소권 남용 여부는 '기소할 만한 사정 변경이 있었는지'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검찰은 '헌법소원 청구 외 사정 변경이 있었느냐'는 본보 질의에 "(A씨와 B씨가) 경찰 조사에선 객관적 상황을 시인했는데 범행을 극구 부인하는 취지로 헌법소원을 제기했다"며 "각각 기소유예 처분됐던 두 사건이 병합돼 복수범행으로 서로 증거가 보강됐고, 폐쇄회로(CC)TV 분석도 면밀하게 진행되는 등 사정 변경이 있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A씨와 B씨가 헌재에 첨부한 수사기록 등에 비춰보면 헌법소원을 청구했다는 것 외에 달라진 사정이 뚜렷하지 않다. 경찰 조사 때부터 B씨는 'A씨의 범행사실을 몰랐다'고 일관되게 부인했고, 'A씨의 단독범행'이란 주장도 바뀐 적이 없기 때문이다. 경찰의 피의자 신문조서와 송치결정서에도 혐의 부인 사실이 적시됐다. CCTV 영상은 이미 분석이 이뤄졌던 증거로, 처분 변경의 주요 근거로 삼기엔 무리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검찰은 통상 헌재 결정을 보고 수사를 재기하는데 청구 직후 처분을 바꾸는 건 이례적"이라며 "검사는 법적 불안정성 해소 차원에서 적극 임했을 수 있으나, 당사자 입장에선 감정적인 기소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유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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