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난'에 절도 범죄 반등, 생계형 적잖아
악질범 단죄 '특가법', 소액 절도범도 옥죄
가중처벌 탓에 고액 범죄보다 형량 높기도
법조계 "지나친 엄벌주의... 형평성 맞춰야"
2020년 3월 한 ‘생계형 범죄’가 크게 논란이 된 적이 있다. 40대 남성 이모씨가 감염병 사태로 일자리를 잃고 열흘 넘게 굶주렸다. 배고픔을 견디다 못한 그는 구운 달걀 18개를 훔쳤다가 붙잡혔다. 금액으로는 5,000원어치였다. 검찰은 반복된 절도 전과(9범)를 이유로 징역 18개월을 구형했다. 구형량이 세계 최대 아동ㆍ성착취물 사이트를 운영한 손정우의 형량과 같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여론이 들끓었다. 결국 검찰은 혐의를 바꿨고, 이씨는 징역 3개월 판결을 받았다.
3년이 지난 지금은 어떨까. 올해 3월 한 남성이 서울북부지법 법정에 섰다. 절도로 징역을 살고 출소한 지 2년도 안 돼 또 남의 물건에 손을 댄 것이다. 그가 훔친 물품은 소시지 등 9,600원어치 무인상점 음식. 재판부는 “배가 고파 범행한 것으로 보인다”며 남성의 궁핍한 처지를 이해했다. 처벌은 여전히 무거웠다. 징역 1년의 실형이었다.
법은 아직 우리 사회 장발장들에게 재기의 기회를 주는 울타리 역할을 하는 데 주저하고 있다. 경제 사정이 어려워져 생계형 절도가 계속 늘고 있지만 법은 매몰차기만 하다. 물론 “징벌이 너무 가혹하다”는 동정론 반대편엔 “범죄는 범죄다”라는 원칙론도 엄존한다. ‘사회안전망’은 가난한 이를 보듬지 못하고 여론은 양분됐는데, 사법시스템마저 관대함과 엄격함 사이에서 길을 잃다 보니 장발장들을 위한 아량의 공간은 찾아보기 어렵게 된 것이다.
절도 11% 늘었는데, 생계형도 특가법 처벌
최근 절도 범죄는 부쩍 증가했다. 11일 경찰청 범죄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절도 범죄 발생 건수(잠정)는 18만4,369건으로 2021년(16만6,409건)보다 10.8% 많아졌다. 올해는 1분기에만 4만4,061건이 발생해 지난해 같은 기간(3만8,881건) 대비 13.3% 늘었다.
2012년(29만460건) 정점을 찍은 뒤 10년 가까이 감소 추세던 절도 범죄가 반등한 건 경제난과 무관치 않다. 김상균 백석대 경찰학부 교수는 “꿈쩍 않는 고물가에 살기 힘들어진 서민들이 절도에 빠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업률과 물가상승률을 더한 ‘경제고통지수’가 1% 상승할수록, 절도는 3.76% 증가한다는 분석 결과(경찰대 치안정책연구소)도 있다.
양형 논란을 낳는 중심엔 생계형 범죄자를 옥죄는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가법)’이 있다. 제5조의4에는 ‘3회 이상 징역형 절도 전과자가 누범 기간(형 종료 또는 면제 후 3년) 내 같은 죄를 저지를 경우 2년 이상 20년 이하 징역을 부과’하도록 돼 있다. 검찰이 이씨에게 매긴 형량도 특가법에 근거한 것이었다. 게다가 절도 범죄는 재범률(경찰청 기준 22.8%)도 높은데 특가법까지 적용되니 덩달아 형량이 올라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소액 절도 사범에게 혹독한 형벌 체계는 기형적 결과를 낳기도 한다. 배가 고파 물건을 훔친 사람이 ‘한탕’을 노린 거액 절도범보다 무거운 형에 처해지는 것이다. 지난해 10월 주차권 200장과 7만 원이 든 식당 현금통을 훔친 혐의(특가법)로 기소된 50대는 최근 인천지법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고아원에서 성장하고 한동안 주민등록조차 되지 않은 채 노숙인으로 살아온 남성이었다. 반면 비슷한 시기 공범을 시켜 지인 금고에서 3억 원을 훔친 혐의(특수절도)로 재판에 넘겨진 30대에게는 1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이 부과됐다.
사법부도 특가법의 형평성을 두고 고민이 깊다. 지난달 인천지법은 구직에 실패한 70대 기초생활수급자가 축의금 20만 원을 훔친 사건에 대해 “국가는 돈이 없어 밥을 굶는 사람을 방치하지 말아야 할 책무가 있다”면서 “특가법은 피고인과 같은 국민을 별다른 대책도 없이 가혹하게 처벌만 한다”고 꼬집었다. 2020년 한국도시연구소가 펴낸 보고서에는 “범죄 성격에 따라 가중처벌을 해야지 전력에 따라 (가중처벌) 하는 건 특가법 취지와 맞지 않다”는 판사들의 토로가 실리기도 했다.
"벌금형 추가, 죄질 맞는 양형 적용해야"
개선 노력이 없었던 건 아니다. 이씨 사건 등을 계기로 의정부지법과 울산지법은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국회에선 특가법 제5조의4를 삭제하는 개정안이 발의됐다. 그러나 헌재는 “입법 당시 입법재량 범위를 벗어난 것으로 보기 어렵다”며 합헌 결정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역시 “특가법 삭제 여부는 범죄의 죄질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판단해 더 이상 진전은 없었다.
법을 바꾸기 어렵다면 ‘보수’라도 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가령 특가법 기존 조항에 ‘벌금형’을 추가하는 식이다. 취약계층이라도 벌금은 노역(일당 약 10만 원)으로 차감 가능하고 분납제도를 이용할 수도 있어 부담도 덜하다. 이씨의 2심 변호인이었던 이진우 수원고법 국선전담변호사는 “현재 특가법은 구성요건에 해당하면 무조건 일정 수준의 징역형을 선고한다”면서 “판사가 벌금과 징역을 선택할 수 있어야 입법취지 측면에서도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근본적으로는 재범을 막을 사회보장체계를 촘촘히 짤 필요가 있다. 이씨는 출소 후 한동안 거주지 마련에 또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전해졌다. 울산지법을 통해 헌재에 제청 신청을 했던 정희승 법률사무소 제성 변호사는 “장기 수감생활이 생계형 범죄자의 갱생에 도움을 줄지 의문”이라며 “출소 뒤 사회 정착 시스템이 부족해 또 다른 범죄에 노출된 이들에게 처벌만이 능사인지 곱씹어 봐야 한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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