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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점 맞은 학생을 대하는 법

입력
2023.05.10 04:30
수정
2023.05.10 08:16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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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석 검찰총장이 8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열린 마약범죄 근절 대책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이원석 검찰총장이 8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열린 마약범죄 근절 대책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국어 과목에서 80점을 맞은 학생이 있다. 당초 기대했던 100점은 아니지만, 그럭저럭 우등상은 받을 만한 점수다. 그렇다면 교사는 잘했다고 학생을 칭찬해야 할까. 틀린 문제를 지적하며 혼내야 할까. 지도 방식에 정답은 없겠지만, 혼내고 망신만 주면 학생에게 도움이 되기는커녕 반발만 부를 수 있다는 건 자명하다.

교사와 학생의 관계에 빗댈 수 있는 것이 검찰과 경찰의 관계다. 경찰에서 송치된 사건을 살펴보고 기소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검찰의 주된 업무다. 검찰은 그 과정에서 점수만 매기지 않을 뿐 자연스럽게 경찰 수사의 잘잘못을 평가하게 된다.

대검에서 매달 소개하는 형사부 우수 수사사례에는 경찰을 바라보는 검찰의 속내가 담겨 있다. 대검은 보도자료를 배포할 정도로 검찰 밖으로 이런 사실을 알리고 싶어 한다. 특수부 검사들이 요직을 독식한 상황에서 형사부 검사들의 사기를 높이고 검찰 본연의 역할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내포돼 있을 거다.

그런데 검사들의 우수함을 알리는 방식이 고약하다. 보도자료에는 ‘경찰이 단순 송치한 사건을 파헤쳐 사건의 전모를 밝혔다’ ‘경찰이 불송치 결정한 사건을 전면 재수사해 피의자를 구속했다’ ‘경찰이 넘긴 기록을 세심히 검토해 추가범죄 사실을 밝혀 냈다’ 등의 문구가 자주 등장한다. 사건 내용만 다를 뿐, 매달 경찰이 제대로 수사하지 않은 사건을 검찰이 바로잡았다는 점을 무한 반복해 알리고 있다.

보도자료를 본 경찰의 속내가 좋을 리 없다. 정부기관 중에서 소속 구성원들의 활약상을 다른 기관을 깎아내리는 방식으로 알리는 곳은 검찰이 유일하다. 겉으론 경찰과 긴밀히 협조한다고 강조하지만, 실제론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는 셈이다. 속마음이 그러하니 조금만 자극이 들어와도 감출 수가 없다.

검ㆍ경 수사권 조정 당시 경찰이 형사사건의 99%를 담당하고 있다고 도발하자, 검찰은 “우리는 100%를 맡고 있다”고 반박했다. 1%는 검찰이 직접 수사하고, 송치된 99%도 검찰이 다시 봐야 하니, 모든 사건을 수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논리였다. 경찰이 이태원 참사 특별수사본부를 구성해 대대적인 수사에 나섰을 때도, 검찰 관계자는 “경찰에서 사건이 넘어오면 어차피 검찰이 처음부터 다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검찰 논리를 확대하면 경찰은 수사기능을 모두 없애고 검찰은 검사를 대폭 늘려 모든 사건을 수사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어차피 검찰이 처음부터 다시 수사할 텐데, 번거롭게 경찰을 거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생이 마음에 안 든다고 교사가 시험문제를 직접 풀 수 없듯이, 모든 수사를 검찰이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학생이 문제를 틀렸을 때 바로잡는 것은 교사의 기본적 역할이다. 교사가 그런 일을 했다고 아주 훌륭하다고 평가하진 않는다. 경찰 수사를 대하는 검사들도 다를 바 없다. 응당 할 일을 대단히 큰일을 한 것처럼 포장해선 안 된다는 뜻이다. 오히려 학생을 자주 칭찬하면 성적을 올리는 데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80점 맞은 학생은 충분히 그런 얘기를 들을 자격이 있기 때문이다.

대검은 갈등을 유발하는 형사부 우수 수사사례를 발표할 게 아니라, 칭찬받을 만한 경찰 수사사례를 선정해 발표하는 게 낫다. 다른 기관에 대한 존중의 표현이자 검ㆍ경 상호신뢰의 첫걸음이 될 것이다.


강철원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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