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개막 예술의전당 전관 개관 30주년 연극 '오셀로' 주연
"TV·영화도 좋지만 내 국적은 '연극배우'"
지난 4월 끝난 드라마 '모범택시’ 시즌2를 연출한 이단 PD는 종영 인터뷰에서 '절대악'인 지하조직 '금사회'의 보스 박민건 교구장을 연기한 배우 박호산(51)을 언급했다. 박호산이 교구장의 대사를 다듬어 줬다며 많이 배웠다고 했다. 차분한 태도에 깍듯한 존댓말을 쓰지만 뒤로는 온갖 악행을 저지르는 교구장 캐릭터는 그렇게 탄생했다.
박호산은 이런 과정을 "캐릭터를 디자인한다"고 말한다. 최근 예술의전당에서 만난 그는 "변화하는 소비자 요구에 맞춰 새로운 패션이 등장하듯 연기도 그 시대 관객에게 어울리는 새 스타일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발각되지 않고 오랜 시간 악행을 이어 온 교구장 캐릭터를 위해 그는 말투를 바꾸고 악역의 정형성에서 벗어나고자 애썼다.
그런 그가 요즘 새롭게 디자인 중인 인물은 영국 대문호 셰익스피어의 대표 캐릭터 중 하나인 '오셀로'다. 박호산은 12일부터 6월 4일까지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공연되는 셰익스피어 원작의 예술의전당 전관 개관 30주년 연극 ‘오셀로’에서 배우 유태웅과 번갈아 오셀로를 연기한다. '오셀로'는 베니스의 무어인 용병 출신 장군 오셀로가 악인 이아고의 계략에 빠져 부인 데스데모나를 의심하고 질투하다 결국 살해까지 이르는 이야기다. 질투라는 감정만으로 인생을 파국으로 몰아가는 오셀로는 보통 우매하고 나약하며 격렬하게 감정을 분출하는 모습으로 그려지곤 한다. 하지만 박호산은 자신이 디자인한 오셀로는 다르다고 말한다. 그는 "외국인으로서 베니스에서 장군의 지위까지 오른 이 인물의 지적인 능력과 정치력에 주목, 이아고가 속이기 힘든 단단한 인물로 해석했다"며 "차분하다는 점에서는 '모범택시'의 교구장과 닮은 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통기타 가수를 꿈꾸던 박호산은 중학교 3학년 때 셰익스피어 원작을 재해석한 극단 76의 연극 '햄릿'을 보고 흠뻑 빠져 진로를 배우의 길로 틀었다. 1996년 뮤지컬 '겨울 나그네'로 데뷔해 연극과 뮤지컬에서 주·조연으로 활발히 활동하다 연기 경력 20년을 넘긴 2017년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로 대중에게 이름을 알렸다. '슬기로운 감빵생활'은 박호산뿐 아니라 박해수, 이규형 등 당시 연극계 스타들이 TV로 활발히 진출하는 데 물꼬를 튼 작품이다. 박호산은 "극단 리딩(낭독) 모임에 나간 것 같았다"고 당시 촬영장 분위기를 회상했다.
박호산은 '오셀로' 준비 중에도 짬짬이 드라마 촬영 일정을 소화할 정도로 최근 TV와 영화계의 러브콜이 늘었지만 "나는 연극배우"라고 거듭 강조했다. 연예기획사에 소속돼 있지만 꾸준한 무대 연기를 위해 극단 맨씨어터의 단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는 그는 "연극은 동시대의 고민을 비춰 주는 거울이고 연기자는 그 둘 사이를 연결하는 고리이자 통로"라고 힘주어 말했다. "국적은 바뀌지 않는 거잖아요. 제가 미국에서 사업을 크게 하면 대한민국 사람이 아닌가요? 사람이 밥(무대 연기)을 먹어야지 매일 빵(매체 연기)만 먹을 수는 없잖아요. 대학로는 거쳐 가는 곳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박호산은 "연기하는 것만으로도 더없이 행복하다"고 했다. 다만 그는 이제 TV와 영화에서도 강렬한 존재감의 '신스틸러'를 넘어 타이틀 롤을 맡고 싶은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그는 "재연까지 합치면 300여 개 캐릭터에 이르는 연극·뮤지컬 연기가 내 자산"이라며 "실력이 있으면 기회는 언제든 찾아오는 만큼 거북처럼 묵묵히 내 길을 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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