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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혁과 전현희 사태를 보면서

입력
2023.06.07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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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정부 알박기 제거에 몰두하면
'환경부 블랙리스트' 되풀이 우려
대통령·정무직 임기 뉴노멀 필요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한상혁(왼쪽)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지난달 30일 오후 경기 과천시 정부과천청사 방송통신위원회에서 나와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이 지난달 3일 권익위 감사와 관련한 본인 입장을 직접 소명하는 감사원 '대심'에 출석하기 앞서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뉴시스·한국일보 자료사진

한상혁(왼쪽)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지난달 30일 오후 경기 과천시 정부과천청사 방송통신위원회에서 나와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이 지난달 3일 권익위 감사와 관련한 본인 입장을 직접 소명하는 감사원 '대심'에 출석하기 앞서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뉴시스·한국일보 자료사진

당선인 시절 윤석열 대통령의 가까운 지인이 이런 조언을 했다고 한다. “임기 시작과 동시에 정무직은 모두 사표를 내게 하라. 대신, 전 정부 인사라도 전문성과 능력이 있는 사람은 일을 시킨다는 원칙을 밝히고, 나도 임기 말에는 알박기 인사를 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하라.”

정권 교체기마다 벌어지는 ‘전 정부 인사 솎아내기’로 시간과 국력을 낭비하지 말라는 조언이었다. 윤 대통령이 무심코 흘려들은 것인지, 아니면 알아서들 물러날 거라 기대한 것인지, 제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 결과는 익히 아는 대로다. 정권 초기 버티는 공공기관, 국책연구원, 대통령직속위원회 기관장을 내보내느라 행정부 전체가 홍역을 치렀고, 지금도 치르는 중이다.

버티는 공직자들을 두둔할 생각은 없다. 새 정부 국정 철학과 맞지 않는 야권 인사가 임기를 다 마치겠다고 고집하는 게 대통령제와 맞지 않아 보이는 건 사실이다. 대선은 새로 선출된 대통령이 공약대로 국정을 펼쳐보라는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또 임기제를 무기로 전 정부 인사 혼자서 새 정부의 부당함에 맞서겠다는 건 이상이나 몽상에 가깝다. 48년간 8명의 미국 대통령을 거치면서 연방수사국(FBI) 국장을 지냈던 존 에드거 후버도 정권이 바뀌면 사표를 냈고, 대통령이 반려하는 형식을 거쳤다.

하지만 지금처럼 수사와 감사를 앞세운 무차별적인 전 정부 인사 솎아내기를 찬성하기는 어렵다.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은 TV조선 재승인 점수 조작 의혹 건으로 불구속 기소된 뒤 면직당했다. 임기를 겨우 두 달 남겨놓은 상태였다. 그나마도 면직 처분에 불복해 집행정지 신청을 내면서 사법부 판단이 나와야 지루한 싸움이 끝날 전망이다. 과연 면직으로 얻은 실익은 무엇일까. 이럴 바엔 임기를 다 채운 전통을 남기는 게 낫지 않았는지 궁금하다.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은 근무 태만 등으로 감사원 감사를 받았다. 그러나 감사위원 사이에서도 이게 기관장을 징계할 거리가 되는지를 두고 논란이 일었다고 한다. 결국 기관 주의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감사원은 그럴듯한 명분과 논리로 포장하고 있지만, 국민 눈에는 표적감사로 비치고 있다.

감사와 수사, 여론을 앞세운 집중 공격에 버틸 장사는 사실 많지 않다. 최근에는 전 정부 시절 임명된 중앙선관위원장으로 화력이 집중되는 모양새다. 버티던 구여권 공직자들이 코너에 몰리고 하나둘 떠나가니 여권은 기세를 잡았다고 여길지 모른다. 하지만 착각이다. 지금 윤석열 정부가 전 정부 인사들을 상대로 벌이는 공개적인 사퇴 압박은 문재인 정부 시절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의 직권남용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여기는 사람이 많다.

직권남용의 공소시효는 7년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경우 박근혜 정부로 정권을 넘기는 데 성공했지만, 퇴임 후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 칼날을 피하지 못했다. 윤 대통령도 자기 진영 사람이 두 번 연속 대통령이 돼야 퇴임 후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다. 이 간단한 이치를 모르지 않는다면 칼자루를 쥐고 있을 때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 이후 제도적 뉴노멀을 만드는 게 현명하다.

마침 대선 직후 야당이 먼저 차기 대통령이 인사권을 행사할 수 있는 행정부, 공공기관 직책 리스트와 자격 요건을 규정한 '플럼북' 신설을 제안했다. 더 늦기 전에 불씨를 살릴 필요가 있다. 정무직과 전문직을 확실히 나누든지, 대통령과 주요 고위직 공무원의 임기를 맞추든지 21대 국회가 끝나기 전에 결론을 내주기 바란다. 보복이 보복을 부르는 정치는 여기서 멈춰야 한다.


김영화 뉴스1부문장 겸 정치부장
yaa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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