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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홋카이도 원주민 아이누 유골 반환하며 사과… 정작 일본은? [특파원24시]

입력
2023.05.07 10:30
수정
2023.05.07 11:01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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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일본 연구자가 기증한 유골
호주 박물관 반환하며 "진심으로 사과"
일본 대학·박물관엔 해외 유골 그대로

1904년에 촬영된 아이누인들. 아이누는 일본 홋카이도와 러시아 사할린 지역 등에 분포해 살아 온 원주민이다. 촬영자 미상·위키피디아 캡처

1904년에 촬영된 아이누인들. 아이누는 일본 홋카이도와 러시아 사할린 지역 등에 분포해 살아 온 원주민이다. 촬영자 미상·위키피디아 캡처

약 100년 동안 호주의 박물관에 보관돼 있던 일본 홋카이도 원주민 아이누족 유골 4구가 6일 일본 아이누 단체 대표들에게 반환됐다. 박물관 관계자는 반환식에서 “조상이 겪은 굴욕과 여러분이 겪은 고통에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말했다.

교도·지지통신에 따르면 이번에 반환된 유골은 일본 메이지 시대 저명한 해부학자·인류학자였던 고가네이 요시키요(1859~1944) 등이 1911~1936년 호주에 연구 목적으로 기증한 것이다. 일부는 무덤에서 반출된 것이며, 호주 원주민인 애보리진의 유골과 교환한 것도 있었다. 호주 측이 직접 도굴하거나 가져간 것은 아니지만, 박물관은 유족 동의 없이 반출된 유골을 100년 가까이 보관한 데 대해 깊이 사과했다.

멜버른박물관의 티모시 굿윈 이사는 이날 반환식에 참석한 아이누 단체 대표들에게 “여러분의 조상이 오랜 세월 굴욕을 겪은 데 유감을 표하며, 유골 반출로 여러분께 고통을 드린 데 대해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밝혔다. 홋카이도 아이누협회 이사장은 “조상님들이 얼마나 쓸쓸했겠느냐. 앞으로 일본에서 제대로 영혼을 위로하겠다”고 말했다. 사할린 아이누 후손인 ‘엔치우 유족회’ 대표는 “아직 일본에 있는 애보리진의 유골도 신속히 반환되기를 기원한다”고 밝혔다. 유골은 8일 홋카이도로 돌아간다.

일본 정부가 2020년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홋카이도에 만든 아이누 문화 전승 시설 '우포포이' 내 위령시설. 일본의 각 대학과 박물관 등에 연구 목적으로 보관돼 있던 아이누 유골 1,900여 구 중 신원 미상으로 반환 요청이 없는 1,600여 구를 이곳으로 옮겼다. 호주에서 반환되는 유골 4구 중 3구도 이곳에 안치될 예정이다. 우포포이 홈페이지 캡처

일본 정부가 2020년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홋카이도에 만든 아이누 문화 전승 시설 '우포포이' 내 위령시설. 일본의 각 대학과 박물관 등에 연구 목적으로 보관돼 있던 아이누 유골 1,900여 구 중 신원 미상으로 반환 요청이 없는 1,600여 구를 이곳으로 옮겼다. 호주에서 반환되는 유골 4구 중 3구도 이곳에 안치될 예정이다. 우포포이 홈페이지 캡처


앞서 호주 정부는 2017년 멜버른박물관 등에 아이누 유골이 보관돼 있다며 일본 측에 먼저 반환 의사를 밝혔다. 호주가 유골 반환에 적극적이었던 배경에는 과거 가혹했던 원주민 탄압과 동화 정책에 대한 사죄와 화해의 노력이 있다. 1984년 원주민 유골에 관한 법률이, 2009년엔 해외 원주민 유골에 대한 법률이 각각 제정됐고, 이에 따라 각 박물관은 반환 노력을 추진해 왔다. 이보다 먼저 독일의 박물관도 보관 중이던 아이누 유골이 메이지 시대 삿포로 묘지에서 도굴된 것이라는 사실이 2016년 밝혀지자 이듬해 홋카이도 아이누 협회에 반환한 바 있다.

반면 부적절하게 입수한 유골 반환에 대한 일본의 대응은 느리다. 문부과학성은 2019년에야 ‘아이누 유골은 동의 없이 연구에 사용할 수 없다’는 내용이 담긴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대학 등이 보관했던 1,900여 구의 아이누 유골 중 반환 요청이 없는 유골 1,600여 구를 2020년 홋카이도에 건설한 아이누 문화 전승 시설 ‘우포포이’의 위령시설로 옮기기도 했다. 그러나 아이누 이외의 유골에 대해서는 논의된 적이 없다. 고가네이는 인도네시아 보르네오섬 원주민 다약족 등의 두개골을 수집할 때 사람을 고용해 몰래 야간에 파내도록 했다는 기록을 남겼는데, 해당 유골은 현재까지도 도쿄대, 도쿄의과치과대, 교토대 등에 보관돼 있다.

일본 메이지 시대 저명한 해부학자·인류학자였던 고가네이 요시키요(1859~1944). 아이누 유골을 비롯해 세계 각지의 소수민족 유골을 무단으로 수집해 연구했다. 위키피디아 캡처

일본 메이지 시대 저명한 해부학자·인류학자였던 고가네이 요시키요(1859~1944). 아이누 유골을 비롯해 세계 각지의 소수민족 유골을 무단으로 수집해 연구했다. 위키피디아 캡처

호주의 원주민 유골 반환이 과거 가혹한 동화정책 등에 대한 사죄와 반성의 일환인 것과 달리, 일본 정부는 메이지 시대 류큐국(현 오키나와)과 에조치(현 홋카이도)를 무력으로 점령한 후 현지인을 차별하고 고유의 언어와 문화를 말살한 데 대해 침묵하고 있기도 하다. 일본 국회는 2008년 홋카이도 도야코에서 열린 주요 8개국(G8·G7+러시아) 정상회의 직전 아이누를 ‘선주민’(원주민)으로 인정하는 결의를 채택하고 일본 정부도 이를 수용했지만, “근대화 과정에서 다수의 아이누족이 차별받아 빈궁한 처지를 벗어날 수 없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엄숙하게 받아들인다”고 밝혔을 뿐 사과는 하지 않았다. 오키나와인은 원주민으로 인정받지도 못하고, 대학을 대상으로 한 유골 반환 소송에서도 패소하고 있다.

도쿄= 최진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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