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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월의 입’도 무소용…멀쩡한 은행도 불신·투기심리로 휘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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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월의 입’도 무소용…멀쩡한 은행도 불신·투기심리로 휘청

입력
2023.05.05 17:00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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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웨스트 등 미국 지역은행 주가 폭락
재무 문제 없이도 불안 심리로 매도
"공매도 세력이 부추겨" 주장도 나와

3월 13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라의 실리콘밸리은행(SVB) 본사에 고객들이 줄을 서자 한 경비원이 바깥을 내다보고 있다. 샌타클래라=AFP 연합뉴스

3월 13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라의 실리콘밸리은행(SVB) 본사에 고객들이 줄을 서자 한 경비원이 바깥을 내다보고 있다. 샌타클래라=AFP 연합뉴스

지역은행 3곳의 연쇄 파산 이후 공포가 미국 금융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뱅크런(대규모 예금인출) 등 뚜렷한 징후가 없는데도 팩웨스트 뱅코프와 웨스트 얼라이언스 등 지역은행들의 주가가 연일 폭락한 배경에는 사그라지지 않는 불안 심리가 있다. 은행 시스템을 불신하는 투자자들은 주식을 마구 집어던졌다. 이 틈을 타 한몫 챙기려는 공매도 세력이 가세하며 위기를 부채질하고 있다.

“시장은 (가장 마지막으로 파산한) 퍼스트리퍼블릭은행 다음으로 약한 희생양을 찾고 있다”는 한 애널리스트의 경고가 서늘하다.

“은행 건전해” 공언에도…매각 보도로 ‘흔들’

4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NYT)와 워싱턴포스트(WP) 등에 따르면, 이날 뉴욕증시에서 팩웨스트 뱅코프와 웨스트 얼라이언스의 주가가 각각 전장 대비 50%와 38% 급락했다. 팩웨스트는 이번 주에만 70%의 낙폭을 보였다. 미국 언론과 금융 전문가들의 시선은 이들 은행의 재무구조에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는 점에 쏠렸다. “두 은행은 예금자들이 서둘러 돈을 꺼냈다가 파산한 실리콘밸리은행(SVB) 등과 달리 안정적인 예금액과 건전한 자본을 유지하고 있었다”(NYT)거나 “어디에서도 이전에 붕괴 수순을 밟은 은행과 유사한 징후를 볼 수 없었다”(WP)는 것이다.

이날 주가 하락의 불씨를 댕긴 건 두 은행이 “매각을 검토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였다. 웨스트 얼라이언스는 사업 전체 혹은 일부 매각 가능성이 있다는 파이낸셜타임스(FT)의 기사가 나온 직후 주가가 62%까지 급락했다.

주가가 폭락하기 불과 몇 시간 전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은 기자회견에서 “미국의 은행 부문 여건이 개선됐다. 미국의 은행 시스템은 건전하고 강력하다”고 자신했다. JP모건의 제이미 다이먼 최고경영자(CEO)도 1일 퍼스트리퍼블릭은행 인수 직후 “은행 위기는 거의 끝났다”고 선언했다. 경제계 거물들의 잇따른 공언도 시장을 안심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던 셈이다.

공매도 세력 활개치는데… 뾰족한 해법 없어

4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의 지역은행 팩웨스트 뱅코프의 간판이 보인다. 로스앤젤레스=AFP 연합뉴스

4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의 지역은행 팩웨스트 뱅코프의 간판이 보인다. 로스앤젤레스=AFP 연합뉴스

3월 SVB에 이은 지난달 시그니처은행, 퍼스트리퍼블릭은행 등의 파산으로 퍼진 지역은행 연쇄 도산 공포감은 언제 어디로 불똥이 튈지 모르는 상황이 됐다. 투자자들이 지역은행의 생존 가능성 자체를 확신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스티븐 켈리 예일대 금융안정 프로그램의 선임연구원은 “SVB처럼 보이는 은행이 가장 취약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주가 하락은 당장 파산으로 이어지지는 않지만, 은행의 신뢰도를 깎는다는 점에서 치명적이다.

가뜩이나 미국인의 은행권을 향한 불신은 치솟고 있다. 갤럽이 시그니처은행과 퍼스트리퍼블릭은행이 지난달 파산한 직후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응답자의 48%가 은행이나 기타 금융기관에 맡겨둔 돈의 안전에 대해 “우려된다”고 답했다. 2008년 금융위기 때와 비슷한 수치다.

불안을 투기 자본으로 삼은 공매도 세력은 시장 혼란에 기름을 부었다. 공매도는 주가 하락이 예상되는 주식을 빌려 매도한 뒤 추후에 더 낮은 가격에 해당 주식을 매수하고 빌린 주식을 갚아 차익을 얻는 기법이다. 해당 종목의 주가가 하락하면 이익을 얻는다. 시장분석업체 오르텍스에 따르면, 공매도 투자자는 4일 하루에만 특정 지역은행의 주가 하락으로 3억7,890만 달러(약 5,000억 원)의 이익을 거뒀다. 미 당국은 은행 주가의 폭락 배후에 시장 조작 세력이 있는지를 조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와 정치권이 더 강한 처방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행동주의 투자자이자 트라이안펀드의 공동설립자 넬슨 펠츠는 “연방예금보험공사(FDIC)의 예금 보험 한도를 현재의 25만 달러(약 3억3,500만 원)에서 더 늘려야 은행 위기가 잦아들 것”이라고 FT에 말했다. 앞서 FDIC도 예금 보장 한도 상향을 고려하고 있다고 발표했지만, 예금보험의 한도를 늘리려면 의회의 승인이 필요하다. 공매도 금지 등의 조치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미 증권거래위원회(SEC)는 현재로서는 고려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급조된 대책 몇 개로 불안 심리를 잠재울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캐피털 알파 파트너스의 이안 카츠 상무이사는 “투자자들은 지역은행 주식의 급락을 두고 ‘워싱턴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묻지만 대답은 명확하지 않다”며 “의회가 움직이기 시작하려면 훨씬 더 많은 은행 파산이 있어야 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전혼잎 기자
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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