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중' 내건 야당 후보 제쳐
중 영향력 확대 우려한 미·대만 안도
중남미 국가 파라과이 대통령 선거에서 친미국·친대만 성향의 보수우파 후보가 압승했다. 실리를 내건 친중국 성향의 중도좌파 후보가 약진했으나 71년간 장기집권한 보수우파의 벽을 넘지 못했다.
최근 중남미에 몰아친 좌파 물결(핑크타이드)은 일단 멈췄다. 뒷마당에 친중 정권이 들어서는 것을 우려한 미국은 가슴을 쓸어내렸고, 대만은 남미 유일의 수교국을 지키게 됐다.
'5년 더' 집권여당, '친대만' 내걸고 압승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치러진 파라과이 대선에서 집권여당 공화국민연합당(ANR·콜로라도당)의 산티아고 페냐(44) 후보가 약 42.7%를 득표해 약 27.5%를 얻은 제1야당 정통급진자유당(PLRA) 소속 에프라인 알레그레(60) 후보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인구 750만 명인 파라과이 대선이 국제사회 이목을 끈 것은 중국과 대만의 대리전 성격을 띠면서다. 파라과이는 세계에 13개뿐인 대만 수교국으로, 남미에선 유일하다. 페냐 당선자는 지난 1월 미 CNN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미국, 이스라엘, 대만이라는 지정학적 관계를 계속 안고 갈 것"이라며 동맹의 굳건함을 재확인했다.
알레그레 후보의 공약은 대만과의 국교 단절과 중국과의 교역 정상화였다. 의리보다 실리를 챙기겠다는 것이었다. 대두와 소고기 등의 중국 수출이 막혀 불만인 농민 표심이 그를 지지했다. 1947년 이후 딱 한 번(2008~2012)을 제외하곤 71년간 정권을 놓친 적 없는 여당의 무능을 심판하자는 논리도 함께 내세웠다. 빈곤과 부패는 파라과이의 고질병이다. 마리오 아브도 베니테스 현 대통령은 코로나19 대응 실패로 남미에서 가장 인기 없는 지도자로 꼽힌다.
대선 직전 여론조사에서 페냐 당선자는 근소하게 뒤처졌다. 하지만 표심은 변화보다는 익숙함을 선택했다. 콜로라도당의 조직력도 막강했다. 전국의 투표소를 감시하고 원주민들을 버스에 태워 투표소로 보내면서 페냐 당선자를 뽑도록 압력을 가했다고 미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야권의 분열도 여당을 도왔다. 3위를 기록한 국가십자군당 소속 파라과요 쿠바스 후보는 22.92%를 득표하며 선전했다. 알레그레 후보가 콜로라도당 대표인 오라시오 카르테스 전 대통령을 '파라과이의 파블로 에스코바르(콜롬비아의 마약왕)'에 비유하는 등 과격한 발언을 한 탓에 중도 표심이 이탈했다는 분석도 있다.
탈미국·좌파로 기우는 남미에서… '친대만·우파' 선방
차이잉원 대만 총통은 1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대만과 파라과이의 오랜 관계를 발전시키고 페냐 당선자의 지도력 아래 파라과이가 번영하기를 기대한다"고 환영했다.
중남미로 뻗치던 중국의 손길을 막아냈다는 점에서 우방인 미국도 한숨을 돌렸다. 남미 주요 13개국에 좌파 정권이 들어선 가운데 파라과이를 포함한 3개 나라가 우파 정권으로 남게 됐다.
다만 NYT는 페냐 당선자의 집권이 미국과의 관계를 복잡하게 만들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가 헤즈볼라와 연관됐다는 등의 이유로 미 재무부의 제재 대상에 올라있는 카르테스 전 대통령의 측근을 자처하기 때문이다. 페냐 당선자는 17세 때 PLRA에서 정치를 시작했다가 2016년 콜로라도당으로 이적하며 비판을 받았는데, 이때 그를 지원한 것이 카르테스 전 대통령이다.
페냐 당선자는 국제통화기금(IMF)에서 근무한 경제통으로, 카르테스 정권에서 재무장관을 지냈다. 일각에선 그를 '카르테스의 꼭두각시'라고 부른다. AP통신은 "이번 선거는 카르테스 전 대통령의 승리"라고 했다.
단임제인 파라과이 대통령 임기는 5년이며, 페냐 당선자는 오는 8월 15일 취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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