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유엔난민기구 최고대표보 "한국, 난민 신청 많아질 것… 제도 정비 시급"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단독 유엔난민기구 최고대표보 "한국, 난민 신청 많아질 것… 제도 정비 시급"

입력
2023.05.02 04:00
24면
0 0

[질리언 트릭스 UNHCR 최고대표보 인터뷰]
러시아인 난민 신청 몰려…우크라 전쟁 여파
난민법 10년 인정률은 2.3%…G20 최하위권
법무부 난민법 개정엔 "법적 안전망 필수적"
"노동·교육시장 통한 정규 이주 경로 넓혀야"

질리언 트릭스 유엔 사무차장보 겸 유엔난민기구(UNHCR) 보호 부문 최고대표보가 지난달 28일 서울 중구 UNHCR 한국대표부 사무실에서 본보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UNHCR/Kwang-hee Park

질리언 트릭스 유엔 사무차장보 겸 유엔난민기구(UNHCR) 보호 부문 최고대표보가 지난달 28일 서울 중구 UNHCR 한국대표부 사무실에서 본보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UNHCR/Kwang-hee Park

"한국은 대규모 난민을 받은 경험이 많지 않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러시아 난민 사례를 보면 향후 난민 신청을 많이 받게 될 겁니다. 변화의 시점에서 진정한 난민을 받을 효율적 제도를 갖출 필요가 있습니다."

질리언 트릭스(Gillian Triggs·78) 유엔 사무차장보 겸 유엔난민기구(UNHCR) 최고대표보는 난민과 관련한 한국 상황을 이같이 진단했다. 한국은 1992년 유엔 난민협약 및 난민의정서에 비준하고 2013년 아시아 최초로 난민법을 제정·시행했다. 그러나 최근 10년 난민인정률은 평균 2.3%로 주요 20개국(G20) 최하위 수준이며, 난민 면접조작 사건 등 제도 미비와 전문 인력 부족에 따른 문제가 끊이지 않고 있다.

난민법 시행 이래 10년간 난민 신청·인정 건수와 인정률. 그래픽=강준구 기자

난민법 시행 이래 10년간 난민 신청·인정 건수와 인정률. 그래픽=강준구 기자

한국일보는 지난달 28일 서울 중구 UNHCR 한국대표부에서 트릭스 최고대표보를 만나 한국 난민 문제의 현주소와 해법을 짚어봤다. 호주 인권위원장 출신인 트릭스 최고대표보는 2019년부터 스위스 제네바 UNHCR 본부 보호 부문 최고책임자로 전 세계 130개국 사무소의 난민 보호와 재정착, 개별 국가와의 협력을 총괄하고 있다. 그는 한국 내 난민 보호 등 정부 기관과의 현안 논의차 방한했다.

송두환 국가인권위원장, 박용민 외교부 다자외교조정관, 이재유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 등과 면담·회의를 진행한 트릭스 최고대표보는 "한국은 글로벌 중추 국가로서 국제사회에서 역할을 확장할 의지를 갖고 있다"고 봤다. 그는 "10년 전 난민법을 도입한 뒤 현재 법 개정이 논의되는 점은 고무적"이라며 "국제적 난민 보호 기준을 충족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트릭스 최고대표보는 지리적·정치적으로 한국이 처한 상황과 낮은 난민인정률엔 우려를 내비쳤다. 법무부에 따르면 올해 1~3월 한국 난민 신청 건수 중 러시아 국적이 1,056건으로 가장 많았다. 지난해 러시아인 전체 신청 건수(1,038건)를 이미 넘은 것으로,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에 따른 병력 동원 우려가 원인으로 분석된다. 1분기 난민인정률도 1.4%에 그쳤다.

트릭스 최고대표보는 "각국 상황이 달라 신중히 판단해야 하지만, 왜 인정률이 낮은지 건설적 논의는 필요해 보인다"고 짚었다. 이어 "(한국이 가입한) 1951년 난민협약은 제2차 세계대전 때 강제로 터전을 잃은 이주자들이 대량 발생해 만들어진 것"이라며 "우크라이나 전쟁을 비롯해 수단·시리아·미얀마 등 전 세계가 전례 없는 상황에 놓여 있어 난민협약 계승과 인권적 시각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최근 10년 난민불인정 결정 후 재신청 및 이의신청 인정 건수. 그래픽=강준구 기자

최근 10년 난민불인정 결정 후 재신청 및 이의신청 인정 건수. 그래픽=강준구 기자

난민법 개정과 관련한 의견도 내놨다. 법무부는 '난민 불인정 결정 후 심사를 재신청한 경우, 21일 내 중대한 사정 변경이 있는지 난민인정 재심사 적격 여부 심사를 거쳐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법안 추진에 나섰다. 난민심사를 체류 연장 수단으로 악용하는 걸 방지하자는 취지지만, 인권단체에선 재신청 길을 막아 사실상 난민신청자를 추방하려는 것 아니냐고 비판하고 있다.

트릭스 최고대표보는 "난민 제도 악용은 많은 국가의 고민"이라며 "다만 진정으로 보호가 필요한 이들을 위한 법적 안전망은 필수"라고 지적했다. 그는 서울행정법원 난민 소송 담당 법관들과의 면담을 언급하며 "전반적으로 더 공정하고 효율적인 제도를 명확히 확립할 필요성에 공감대를 형성했다"고 전했다. 앞서 법원행정처는 법무부의 난민법 개정안에 '부적격 심사 기준·내용과 절차적 보장 방안이 명확하지 않다'며 신중 검토 의견을 냈다.

전문 인력 부족도 보완점으로 꼽힌다. 난민법 시행 당시 18명이던 난민심사관이 현재 90명으로 늘었지만, 여전히 1차 심사 과정에서만 1만여 건이 적체돼 있다. 허위면접조서로 난민 신청자를 탈락시킨 정황이 드러나며 난민 면접조작 사건이 불거지자 법무부는 55명에 불인정 결정 취소 처분을 내리기도 했다. 이 사건 피해자인 이집트인은 2014년부터 9년째 난민신청자 지위에 있으며, 지난달 24일부터 법무부 앞에서 단식농성을 시작했다.

트릭스 최고대표보는 "합리적 법 적용이 가능한 독립적이고 공정한 시스템을 통해 치우치지 않은 판결이 내려지는 게 중요하다"며 캐나다·스웨덴·노르웨이·독일 등을 모범국가로 들었다. 그러면서 "난민이 사용 가능한 언어로 신청할 수 있고, 시스템을 효율적으로 작동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훈련받은 공무원과 법조인들이 있어야 공정한 결정이 내려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난민 문제 해결을 위한 영구적 해법으로 '사회통합'을 꼽았다. 트릭스 최고대표보는 "난민을 포함한 이주 문제에 있어 통합을 장려할 수 있는 제도와 리더십이 한국사회에도 이익이 될 수 있다"며 "이민청 신설과 맞물려 노동·교육 시장을 통한 정규 이주 경로를 확대한다면 난민 제도 남용은 줄어들고 보호가 필요한 이들은 분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질리언 트릭스 유엔 사무차장보 겸 유엔난민기구(UNHCR) 보호 부문 최고대표보가 지난달 28일 서울 중구 UNHCR 한국대표부 사무실에서 본보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UNHCR/Kwang-hee Park

질리언 트릭스 유엔 사무차장보 겸 유엔난민기구(UNHCR) 보호 부문 최고대표보가 지난달 28일 서울 중구 UNHCR 한국대표부 사무실에서 본보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UNHCR/Kwang-hee Park


질리언 트릭스 UNHCR 최고대표보는

영국, 호주 국적 변호사로 호주 인권위원장을 비롯해 영국 국제비교법연구소장, 아시아개발은행 행정재판소 재판장 등을 역임했다. 국제공법 전문가로서 시드니대 법학부 학장과 국제법 챌리스 명예교수, 멜버른대 교수 등을 거쳤다. 1만 명의 변호사를 연결해 법률 지원이 필요한 이들에게 무료 자문을 해주는 비영리 단체 '저스티스 커넥트' 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법치주의와 성 평등 공로를 인정받아 2021년 7월 세계법률가회의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명예훈장을 수여받았다.


이유지 기자
김영훈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