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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과 지금의 샤넬 No.5

입력
2023.05.08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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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샤넬 No.5- 두 번째 이야기

양귀비 대신 장미를 심어 마약과 폭탄 대신 향수로 조국 팔레스타인을 구하려 했던 한 사업가의 이야기가 2016년 다큐멘터리 'Perfume War'로 만들어졌다. 인류는 향기의 위력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Pxfuel 사진

양귀비 대신 장미를 심어 마약과 폭탄 대신 향수로 조국 팔레스타인을 구하려 했던 한 사업가의 이야기가 2016년 다큐멘터리 'Perfume War'로 만들어졌다. 인류는 향기의 위력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Pxfuel 사진

향수의 기원은 알 수 없지만, 지금도 판매되고 있는 가장 오래된 향수는 1533년 이탈리아 산타마리아 노벨라의 도미니코회 수도사들이 조향한 ‘아쿠아 노벨라(Aqua di S.M Novella)’라고 한다. 프랑스 국왕 앙리 2세와 메디치가의 카트린 드 메디치의 결혼 선물로 만들어져 ‘여왕의 물(Acqua della Regina)’이라 불리는 이 향수는 시트러스 향을 메인 노트로 라벤더와 로즈메리 향 등이 가미된, 알려진 바 세계 최초의 알코올 기반 향수다.

‘복음의 성수’쯤으로 번역될 이름처럼, 대부분의 향수는 꿈과 서사를 함축한 이름으로 세상에 나왔다. 즉 향수(향기)는 조향사나 소비자의 꿈을 구체화하는 언어와 욕망의 매개체였다. 이러한 경향을 전폭적으로 탈피한 것이, 화학 실험실 용어처럼 건조한 이름의 '샤넬 No.5'였다. 화려한 크리스털 조각 치장을 벗어던진 금욕적인 용기(容器)도 파격적이었다.

샤넬 향수는, 성적 금기나 기독교적 원죄를 연상시키는 ‘나의 죄’라는 뜻을 지닌 랑방의 향수 ‘몽 페쉬(Mon Peche, 1924)’, 사랑의 거처란 의미를 지닌 겔랑의 ‘샬리마르(Shalimar, 1925)’ 등과 경쟁했다. No.5는 매개체가 아닌 본질, 즉 욕망 자체이고자 했고, 코코 샤넬이 선택한 공백의 메시지는 여성(의 욕망)의 미스터리에 대한 궁극적인 질문이자 추구였다.

알려진 바, 샤넬 No.5에는 80여 종의 천연오일과 화학 성분이 쓰인다고 한다. 원료가 재배되는 기후·토양 등의 환경 변화와 조향 기법의 발달로 지금의 향기는 100년 전의 그것과 같지 않고, 원료와의 배합비율도 미세하게 달라져 왔다고 한다. 하지만 매년 수천 종의 향수가 명멸하는 그 치열한 향기의 전장에서 샤넬 No.5는 바래지 않는 상징성을 지켜왔다. 코코 샤넬이 포착한 100년 전의 욕망과 지금의 그것이, 미스터리가 그리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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