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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적’ 콘텐츠는 가라? ‘덕심(心)’ 자극하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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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적’ 콘텐츠는 가라? ‘덕심(心)’ 자극하면 산다

입력
2023.05.02 10:0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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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콘텐츠 흥행의 법칙 보여준 '킬링 로맨스'
팬덤 강한 스포츠 야구 주제로 한 콘텐츠도 늘어
"보편적 트렌드 사라져…특정 팬층 겨냥 콘텐츠 늘 것"

영화 '킬링 로맨스'의 이원석 감독이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린 '여래바래 4기 창단식' 현장 사진. 인스타그램 캡처

영화 '킬링 로맨스'의 이원석 감독이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린 '여래바래 4기 창단식' 현장 사진. 인스타그램 캡처

"얼른 영화 '킬링 로맨스' 보고 오셔서 '여래바래 4기' 해요."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팬클럽 모집글을 가장한 팬들의 영화 홍보글이 넘쳐난다. 팬들의 '덕질'(특정 분야에 심취해 그와 관련된 것을 모으거나 파고드는 행위)로 뜬 영화 '킬링 로맨스' 이야기다. '여래바래'는 극 중 은퇴한 톱스타 황여래(이하늬)의 팬클럽 이름. 대중의 마음을 얻는 것보다 일부 '덕후'(특정 취미나 분야에 빠져 있는 사람)를 저격하는 것이 생존 전략이 된 요즘 콘텐츠 시장의 단면이다. 유튜브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로 원하는 콘텐츠를 취향 따라 골라 보는 행태가 정착되면서 생긴 변화다.

이선균은 '킬링 로맨스'를 통해 파격 변신을 시도했다. 굽실거리는 헤어스타일, 콧수염, 짙은 아이라인 등이 조나단 캐릭터에 강렬함을 더했다. '킬링 로맨스' 티저 포스터

이선균은 '킬링 로맨스'를 통해 파격 변신을 시도했다. 굽실거리는 헤어스타일, 콧수염, 짙은 아이라인 등이 조나단 캐릭터에 강렬함을 더했다. '킬링 로맨스' 티저 포스터

'킬링 로맨스'는 섬나라 재벌 조나단(이선균)과 결혼한 여래(이하늬)가 자신의 팬클럽 3기 출신 사수생 범우(공명)와 함께 인생을 되찾기 위한 작전을 펼치는 이야기다. 예측하기 어려운 전개와 B급 감성을 잘 살린 작품이라는 평가. 하지만 공개 초반 "환불받고 싶다"와 "나도 모르는 사이에 깔깔 웃고 있었다" 등으로 극명하게 호오가 갈렸다. 1일 영화진흥위원회 집계에 따르면, 지난달 14일 개봉한 이 영화의 누적 관객수는 17만 1,121명에 불과하다.

하지만 SNS로 'B급 감성' 덕후들 사이 입소문을 타며 변화 조짐이 감지되고 있다. 이례적인 '평점 역주행'도 기록했다. 초반 61%로 출발했던 CGV 골든에그지수(관람한 후 작성하는 평점)는 1일 기준 77%로 급상승했다. 팬심에 호응한 이벤트도 연이어 열렸다. '여래바래 4기 창단식'은 물론 영화 속 화제의 노래인 H.O.T.의 '행복'과 비 '레이니즘'을 패러디한 곡 '여래이즘'을 따라 부르는 싱어롱 상영회 'JOHN NA 좋아단 행복 합창회'도 열렸다. 팬심이 이벤트로 연결되고 이벤트 후기로 또 다른 관객을 모으는 일종의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졌다. 황진미 영화평론가는 "침체된 한국 영화 산업에서 덕후의 취향을 건드린 적시타"라면서 "모두에게 통할 콘텐츠보다 개별화되고 독특한 지점을 겨냥해 덕후들끼리 입소문이 난 것이 좋은 전략이 된 것"이라고 짚었다.

티빙 '아워게임:LG 트윈스' 메인 포스터. 티빙 제공

티빙 '아워게임:LG 트윈스' 메인 포스터. 티빙 제공

실제로 '덕심(心)'을 콘텐츠 기획 단계부터 타게팅하는 경우도 늘었다. JTBC '최강야구2'를 비롯해 최초로 프로야구 10개 구단이 동시에 참여한 디즈니플러스 오리지널 시리즈 '풀카운트' 등 최근 쏟아지고 있는 야구 관련 콘텐츠들이 대표적인 예다. 팬덤이 강한 스포츠인 야구를 소재로 삼아 고정 시청층을 확보하려는 전략이다. 티빙은 아예 구단 중 LG트윈스만 다룬 다큐멘터리 '아워게임 : LG트윈스'를 공개했다. 특정 시청자를 겨냥했지만 공개 첫 주 주간 유료가입기여자수 3위를 기록했다. 열렬한 LG팬인 배우 하정우가 스토리텔러로 나서 "나무 방망이 그냥 툭 갖다 대면 되는 걸 그걸 못하나" 등 팬들이 공감할 내레이션으로 팬심을 자극한 것은 물론 더그아웃의 이면까지 공개한 점이 흥미를 자극했다는 평가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개인화된 플랫폼으로 콘텐츠 소비를 하면서 보편적인 트렌드는 오히려 그 누구의 취향과도 맞지 않게 된 시대"라면서 "특정 집단의 취향만 맞아도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둘 가능성이 커지며 대중성보다 '덕심'을 겨냥할 콘텐츠는 더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근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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