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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작된 '취객 전쟁'… 늘어난 신고에 토사물까지 '고달픈 경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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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작된 '취객 전쟁'… 늘어난 신고에 토사물까지 '고달픈 경찰들'

입력
2023.05.01 04:30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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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지구대 이틀 밤 관찰해보니]
거리두기 해제되고 기온 오르며 주취자 급증
지구대서 침 뱉고 구토… "폭력 안 쓰니 양호"
현장 경찰 "정작 중요한 신고 누락될까 걱정"

4월 29일 새벽 3시 서울 마포구 홍익지구대 소속 경찰관들이 취객의 건강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이서현 기자

4월 29일 새벽 3시 서울 마포구 홍익지구대 소속 경찰관들이 취객의 건강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이서현 기자

"띵동."

"무슨 신고야?"

"택시 뒷자리에 오바이트(구토)를 했답니다."

'불금(불타는 금요일)'이었던 지난달 28일 밤 서울 마포구 홍익지구대. 이곳은 지난해 전국에서 가장 많은 주취 신고(736건)를 처리한 지구대다. 이날도 4분에 한 번꼴로 112 접수 알람이 울렸다. 대부분 주취 신고였다. 토요일 새벽인 29일 0시 40분쯤 "취한 여성이 길거리에 거품을 물고 누워 있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경찰관이 현장에 가보니 여성의 옷은 토사물 범벅이었다. 공조 요청을 받은 소방이 도착해 혈압과 맥박을 재보니 정상이었다. 지구대로 데려와 친오빠가 오기까지 1시간 동안 경찰관들은 건강에 이상은 없는지, 자해하는 건 아닌지 계속 확인했다. 박천식 홍익지구대 팀장은 "요즘 들어 주취 신고가 부쩍 늘었다"며 한숨을 쉬었다.

작년 주취 신고 90만 건... 전년 대비 18만 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거리두기가 해제되고 날씨까지 포근해지면서 취객이 급증하고 있다. 한국일보가 지난달 28일과 29일 이틀 동안 홍익지구대를 비롯해 인근 서교동 클럽과 술집을 취재해보니 '주취 천국'이었다. 클럽과 술집 앞은 새벽까지 30~40명씩 줄을 설 정도로 붐볐다. 깨진 술병과 토사물이 가득한 거리에서 몸을 가누지 못하는 취객을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인근 편의점 직원 윤모(22)씨는 "길거리에 '대(大)자'로 뻗어서 자는 사람도 많다"고 고개를 저었다.

4월 28일 새벽 서울 마포구 홍대 인근 길거리에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된 취객들. 이서현 기자

4월 28일 새벽 서울 마포구 홍대 인근 길거리에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된 취객들. 이서현 기자

주취 신고 증가는 통계로도 확인된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신고 건수는 97만6,392건으로 2021년(79만1,905건)보다 18만 건 이상 치솟았다. 올해는 코로나19 대유행 직전이던 2019년(101만4,542건) 수준에 근접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경찰청은 "서울의 경우 1월과 2월 각각 2,800건이던 신고 건수가 3월 들어 3,600건으로 늘었다"고 밝혔다.

그래픽=강준구 기자

그래픽=강준구 기자

현장 경찰들은 업무 스트레스와 경찰력 낭비를 호소한다. 27일 오후 11시 30분 홍익지구대에 "차도에 사람이 엎드려 있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올 1월 서울 동대문구에서 취객이 경찰 보호를 거부하고 찻길에 누워 있다가 차에 치여 사망한 것처럼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급박한 상황. 쏜살같이 뛰어나간 경찰관 3명은 한 여성을 지구대로 데려왔다. 여성은 지구대 안에서도 계속 침을 뱉더니 "속이 안 좋다"고 호소했다. 경찰관 두 명이 화장실로 데려가는 일을 두 시간 동안 반복하는 동안 지구대 업무는 사실상 마비됐다.

경찰관들은 "폭력을 휘두르거나 난동을 부리는 사람도 있는데 이 정도면 양호한 편"이라며 취객 상태에 신경 썼다. 그것보다는 정작 중요한 신고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 수 있어 걱정이 크다고 했다. 안모 경장은 "주취 신고는 현장에서 잘 마무리된다고 해도 평균 2시간은 걸린다"고 전했다. 다른 신고가 들어오면 아무래도 기동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의미였다.

4월 29일 새벽 1시 서울 마포구 홍익지구대 경찰관들이 취객을 들것에 실어 나르고 있다. 이서현 기자

4월 29일 새벽 1시 서울 마포구 홍익지구대 경찰관들이 취객을 들것에 실어 나르고 있다. 이서현 기자


국가가 왜 취객을 보호하나

정부는 주취 신고 업무를 분산하고 사망 등으로 이어지는 일을 막기 위해 2012년부터 국공립병원에 취객 전용 응급실인 '주취자 응급의료센터'를 운영 중이다. 현재 서울에 4곳 등 전국에 19곳이 있다. 경찰 매뉴얼을 보면 의식 없는 만취자를 응급센터에 이송할 수 있지만, 정작 병원에서 주취자를 거부하는 경우가 많아 이용률이 높지 않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작년 이용자는 6,332명으로 하루 평균 17.3명꼴이다. 센터 한 곳당 하루 이용자가 1명도 안 되는 셈이다.

4월 29일 새벽 4시 홍익지구대 전경. 이서현 기자

4월 29일 새벽 4시 홍익지구대 전경. 이서현 기자

지난달 11일엔 응급 상황이 아닌 취객도 수용할 수 있는 주취해소센터가 부산에 처음 문을 열었다. 그러나 '세금까지 들여 주취자를 보호해야 하는 것이냐'며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한파 경보가 내린 지난해 11월 말, 서울 강북구에서 경찰관 두 명이 술에 취한 60대 남성을 자택 대문 안 계단에 앉혀 놓고 돌아갔다가 동사한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경찰관들이 입건됐단 소식에 경찰 내부망에선 "주취자에게 이불까지 덮어 줘야 하느냐"며 격앙된 글로 들끓었는데, 시민들 사이에서도 동조하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

4월 28일 새벽 홍익지구대 경찰관이 주머니에서 꺼낸 물품들. 이서현 기자

4월 28일 새벽 홍익지구대 경찰관이 주머니에서 꺼낸 물품들. 이서현 기자

28일 새벽 3시. 주취 신고를 받은 안 경장이 라텍스 장갑 두 쌍과 물티슈, 검은 비닐봉투 한 개를 주섬주섬 챙겼다. 취객 대부분이 구토를 하기 때문에 출동 경찰관에겐 필수품이다. "주취 업무만 줄어도 시민에 봉사하는 경찰 업무에 좀 더 충실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순찰차에 올라타는 안 경장의 넓은 등판이 유독 무거워 보였다.

이서현 기자
장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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