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역사재단 학술대회
'일제강점기 교육정책의 연구 방향'
'식민지근대화론'은 한국의 근대화는 일본 제국주의가 가져다준 시혜적 선물이라고 본다. 조선에 학교를 많이 지어 교육의 기회를 제공했다는 거다. 하나, 식민지 조선에서의 조선인 교육은 무척 제한적이었으며, 오히려 일본이 조선인을 탄압하고 차별하는 기제로 교육을 활용했음을 다양한 증거로 밝히는 학술 연구회가 개최됐다. 27일 동북아역사재단에서 열린 '일제강점기 교육정책의 연구 방향' 학술대회다.
초등교육 정책을 연구·발표한 김광규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연구위원은 "강점 후 조선총독부는 조선에서 교육의 목적은 일본어를 잘하고 성실 근면하게 노동에 종사하는 '충량한 신민 육성'이라는 것을 분명히 했으며 일제 말까지 그 근본은 달라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식민당국이 학교 설립과 경영에 들어가는 경비를 수요자에 떠넘긴 점도 지적했다. 이로 인해 교육의 공공성이 상실됐으며 무엇보다 남성 중심적 가부장 질서와 결합해 절대다수의 여성이 초등교육에서 소외되는 현상을 낳았다.
안홍선 서울대 교수는 "일본의 중등교육체제가 조선에 그대로 이식됐지만 지극히 제한된 교육기회로 식민지 조선의 중등교육은 일본에서와는 사뭇 다른 양상으로 전개됐다"고 밝혔다. 조선인에게 매우 차별적인 입시정책으로 고등보통학교는 상급학교 진학을 위한 입시위주의 경쟁교육이 되고 말았다. 취업할 직장이 없고, 진학할 고등교육기관이 부족한 상황에서 여자고등보통학교는 '현모양처' 양성 교육으로 전락했다. 하지만 농업·상업 종사자 양성을 위한 실업학교를 졸업하고도, 관공청, 기업 등 근대적 직업군의 '봉급 생활자'가 될 기회를 포착한 것은 오히려 적극적인 조선인들이었다.
고등교육 분야를 맡은 김태웅 서울대 교수는 "'경성제대-관립전문학교-사립전문학교'라는 고등교육의 서열구조가 구축돼 학력 차별과 민족 차별 구조를 심화시켰다"고 주장했다. 1910년 이후의 관립전문학교는 주로 조선에 있는 일본인 학생을 위한 것이었고, 1920년대의 경성제대 역시 조선에 대한 통치정책의 연구와 일본인 학생들의 진학을 위해 개설됐다는 것이다. 반면, 조선인 위주의 사립전문학교는 총독부의 지원을 전혀 받지 못해 경영난과 학내 분규에 시달렸다.
이번 학술대회는 일제의 억압적인 식민 지배에 관한 역사적 사실을 분야별로 나누어 집필하는 재단의 '일제침탈사 편찬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된 것이다. 박찬승 편찬위원장은 "식민지근대화론자들은 식민지 시대 교육을 받은 인재들이 해방 이후 한국 경제 성장의 주역이 되었다고 하지만 이는 사실 매우 피상적인 주장"이라며 "이번 연구가 식민주의적 주장을 실증적으로, 그리고 논리적으로 적극 반박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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