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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환자 치료는 교도소 담장 걷기"... '이대목동 사건' 이후 모든 게 달라졌다

입력
2023.05.01 14:00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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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캐슬 '3058': ①슬의생 99즈는 없다]
참의사도 버거운 의료 소송 리스크

편집자주

한국은 의료 가성비가 좋다고 하죠. 아프면 예약 없이 3,000~4,000원에 전문의를 보는 나라, 흔치 않으니까요. 그러나 건보 흑자, 일부 의료인의 희생 덕에 양질의 의료를 누렸던 시대도 끝나 갑니다. 미용 의원이 넘치는데 지방 병원은 사라지고, 목숨 살리는 과엔 지원자가 없습니다. 의사 위상은 높은데, 국민이 체감하는 의료 효능감은 낮아지는 모순. 문제가 뭘까요? 붕괴 직전에 이른 의료 현장을 살펴보고, 의사도 환자도 살 공존의 길을 찾아봅니다.

지난달 18일 경기 성남시 분당서울대병원에서 신경외과 방재승(가운데) 교수가 개두술 수술을 진행하고 있다. 수술은 짧게는 1~4시간, 길면 20시간까지 걸린다. 1998년부터 전공의 생활을 한 26년차 '명의'인 그조차 소송에 시달린다. "남들은 아무도 안 고친다는 어려운 환자 고쳐보겠다고 했다가, 저도 소송 많이 걸렸습니다." 성남=홍인기 기자


저도 의대 입학 땐 내외과 생각했죠. 바이탈과(직접적으로 생명을 다루는 과) 계신 분들 정말 대단하고 존경하죠, 근데 보통 사람 이성으로는 선택 못하는 종교적 수준의 헌신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서울에서 개원한 피부과 전문의 정우림(36·가명)씨는 "제가 의대에 다녔던 2000년대 중반에도 벌써 '바이탈 안 보는 과'에 가기 위해 필사적으로 공부하던 분위기였다"고 돌이켰다. 그 역시 환자를 도울 때 가장 행복함을 느끼는 평범한 의사지만 "까딱 잘못되면 감옥 갈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느끼면서까지 일하고 싶지는 않았다"고 한다.

정씨와 같은 이유로 '사람 목숨 살리는' 바이탈과를 기피하는 젊은 의사들이 늘고 있다. 의대를 마치고 전문과목 수련을 앞둔 이들이, 내외산소(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등 필수의료를 외면하는 것. 전국 수련병원 8개 필수의료 분야 전공의(레지던트) 충원율은 2017년 95.1%에서 지난해 78.5%로 빠르게 떨어졌다(이종성 국민의힘 의원실).

'일은 고되고, 돈도 덜 번다'는 게 바이탈과를 멀리하는 주된 기피 사유처럼 언급된다. 하지만 필수의료에 관심 있는 젊은 의사들도 바이탈과 지원을 주저하게 하는 더 주요한 원인은 바로 '소송 리스크'다. 진료행위에 민·형사상 책임을 져야 할 수 있다는 두려움은 멀쩡히 일하던 전문의도 대형병원을 떠나 로컬(개원가)로 눈을 돌리게 한다.

한국일보가 대한전공의협의회 협조로 개설한 바이탈과 전공의·전문의 익명채팅방에서 만난 한 외과 전문의는 상황을 이렇게 비유했다. "소방관이 사람을 구하려고 불타는 집에 들어갔는데 방화복(법적 보호)은 안 주면서, 못 구하면 '왜 못 구했냐'며 처벌하는 꼴입니다. 최근 (의료 소송) 기조를 보면, (기피과가) 다른 과보다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닌데 왜 내 면허, 내 인생 바쳐가며 일해야 하나 현타(현실 자각 타임)가 오는 거죠. 저도 외과 전문의 땄지만 바이탈은 접었습니다."

의사-환자, 의료소송에 극심한 인식 차

한국환자단체연합회 관계자들이 지난 2021년 3월 국회 앞에서 '중대범죄 의료인 면허취소법'의 법제사법위원회 통과가 불발된 데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2년 가량 법사위에서 잠자던 해당 법안은 올해 2월 보건복지위원회가 간호법 등과 함께 본회의에 직회부(패스트트랙) 결정을 하면서 다시 의료계 현안으로 떠올랐다. 지난달 27일 간호법과 '의사면허취소법'이 통과되면서 대한의사협회 등은 파업을 예고한 상태다. 연합뉴스

사실 '의료 소송' 문제는 의사들과 일반인들이 각각 느끼는 인식의 격차가 매우 극심한 영역이다. 의사는 "소송 당하면 끝"이라는 부담감에 떨고, 일반인은 "의사에게 소송해 봤자 이길 수 없다"는 생각을 기본적으로 깔고 있다.

의사가 아닌 이들은 "의사 과실로 의료사고가 발생해도 증거(의료기록) 확보도 어렵고, 전문 영역이라서 책임 입증도 어렵다"고 생각한다. 실제 의료사고 민사(손해배상 청구소송) 1심에서 환자 쪽의 '완전 승소' 비율은 1% 안팎, '일부 승소'로 범위를 넓혀도 20%대다. '의사는 살인·성폭행 등 강력 범죄를 저질러도 끄떡없는 방탄 면허'라는 인식도 있다. 이런 불신이 '의사면허취소법'이나 '수술실 폐쇄회로(CC)TV 설치 의무화법' 같은 법 제정 움직임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중증·응급 환자를 주로 보는 의사들은 "교도소 담벼락 걷는 심정으로 일한다"고 항변한다. 한국일보 기획취재팀과 인터뷰한 많은 의사들은 의료소송이 낳은 폐해의 대표 사례로 '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 사건'을 꼽았다. 2017년 12월 이 병원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신생아 4명이 균 감염으로 사망한 사건으로 교수 2명과 수간호사는 구속되고, 전공의를 비롯해 의료진 7명(의사 4명·간호사 3명)이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결과는 1·2·3심 모두 무죄.

의료계는 이 사건을 감염관리 미비, 고질적 인력 부족 등 병원 시스템 실패의 책임을 개별 의료진에게 물었던 불합리한 처사였다고 본다. 지난해 12월 대법원 최종 판결까지 소송이 5년 간 이어지는 동안, 소청과 전공의 지원율은 113.6%(2018년)에서 25.5%(2023년)로 추락했다.

그래픽=김대훈 기자

서울 소재 의원에서 봉직의(페이닥터)로 일하는 내과 전문의는 "저도 대학병원 돌아갈 생각도 했었지만, 이대목동병원 사건을 보고 덜컥 겁이 나더라"며 "교과서대로 치료해도 불가항력적인 이유로 환자가 사망하면 소송 걸리고 감방에 갈 수 있다는 생각, 기피과는 피부·성형보다 돈은 못 벌면서 위험 부담은 훨씬 크다는 자각이 (이 일을 계기로) 의사들 사이에서 퍼졌다"고 설명했다.

한국은 의료 사고 발생 시 보상·배상 같은 해법보다, 수사와 재판을 통한 '형벌화' 경향이 강하다는 게 의료계 시각이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에서 발표한 '의료행위 형벌화 현황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2013~2018년 한국 의사가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기소된 건수는 연평균 754.8건인 반면 같은 기간 일본은 51.5건, 독일은 28.4건이었됐다.

소신파 의사도 "환자가 무서워요"

지난달 18일 경기 성남시 분당서울대병원에서 한 외과의사가 수술실로 이동하고 있다. 성남=홍인기 기자

나름의 소신과 신념을 갖고 '비선호 필수과'를 선택한 젊은 의사들도 "환자가 무섭다"고 말한다.

나중에 의료선교를 가서 소아 환자를 주로 볼 생각으로 수도권 대학병원 소청과에 간 '소신파 지원자'인 최지수(32·가명)씨. 전공의 2년 차인 그는 "하루살이 신세라 무서운 것도 잊고 일하지만, 수술이나 입원이 당장 필요한 환아 보호자가 병실 문제 등 여러 이유로 퇴원한다고 할 때면 골치가 아프다"고 토로했다. "절차상 '자의 퇴원서'는 받지만 법적으로 물고 늘어지면 커버(보호)가 안 돼서 매번 무섭다"는 이유다.

서울 시내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일하는 응급의학과 전공의는 "환자가 머리를 다쳐 응급실에 와도, 뇌출혈이 있나 없나 보려면 컴퓨터 단층촬영(CT)을 해야 하는데 환자가 안 찍는다고 하면 문제"라고 설명했다. 그는 "(뇌출혈) 없을 가능성이 더 크지만, 안 찍고 귀가 조치를 했다가 뒤늦게 발견된다면 곤란해질 수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의료진에 대한 안전장치가 없다 보니 그런 환자들을 만날 때마다 좀 무섭다"고 토로했다.

중증·응급 환자엔 의사 책임 면제?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왼쪽)이 지난달 3일 세종시 보건복지부에서 이필수 대한의사협회장(오른쪽)과 '필수 의료 지원 대책' 이행 상황, '간호법' 등 보건의료 주요 현안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의협은 필수의료 분야 의사들의 위험 부담을 덜자는 취지로 '필수의료 사고처리 특례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중증·응급 환자나 위험도 높은 수술 등 필수의료를 제공받은 환자에게 사상 사고가 발생한 경우 필수의료 종사자에게 공소권 없음(기소 불가) 특례를 둔다'는 게 핵심이다. 정부와 의협이 모인 의정협의체에서도 검토해 온 의제지만, 환자의 권익을 침해하지 않는 적정선에서 절충점을 찾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무엇보다 '국민 설득'이라는 난관이 있다. 보건복지부가 1월 말 '필수의료 지원 대책'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위 특례법을 한 방편으로 언급하자, 환자단체연합회는 "의료사고 현장에는 충분한 설명도, 애도 표시도, 적정 피해 보상도 거의 없거나 드문 게 현실"이라면서 "정부와 국회는 형사처벌 면제 특례법 제정 논의 대신 '의료인 의료사고 설명의무법' '의료사고 입증책임 전환법'부터 추진해야 한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현재는 의료사고 때 의료인 과실을 입증할 책임이 환자에게 있는데, 역으로 의사가 '과실 없음'에 대한 입증을 하도록 법을 바꾸라는 요구다.

사회적 합의가 쉽지 않을 '형사처벌 면책' 법안을 두고 힘겨루기를 하기보다 △의료배상책임보험 활성화 △의료분쟁조정제도 내실화 △면허관리기구 차원의 규제(면허취소) 등 다른 해법을 찾는 게 합리적이란 의견도 나온다. 한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한국이 의료사고 관련 기소 빈도가 높고 재판에서도 의사의 '주의·설명 의무' 관련 요구 수준이 높은 게 사실이나, 형사책임을 제도적으로 아예 못 묻게 하는 나라는 전 세계적으로 찾아보기 힘들다"면서 "현실적 해결책은 의료배상책임보험 활성화"라고 말했다. 보험연구원의 '의료배상책임의 현황과 과제'(2020)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상급종합병원 의료배상책임보험 가입률은 10% 미만, 병·의원은 30% 정도로 추정된다.

"필수의료 분야에 한해 상대가치점수 내 '위험도' 항목 점수를 높이는 것도 한 방법"(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으로 제시된다. 의료수가(의료 서비스 값)를 결정하는 요인 중 하나인 상대가치점수는 △의사 업무량 △진료비용 △위험도로 구성되는데, 의료분쟁과 소송이 늘어나는 추세를 감안해 분쟁 해결 비용을 수가에 더하자(수가 인상)는 것이다.

글 싣는 순서

<의사 캐슬 '3058'_시한부 한국 의료>

①'슬의생 99즈'는 없다
②투석 환자는 고향에 못 사나요
③의사 빈자리 채우는 PA 유령
④정원이냐 수가냐, 누구 말이 맞나
⑤벼랑 끝 한국 의료 되살리려면

'그 많던 의사는 다 어디로 갔나' 인터랙티브 보기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3042817583729148


최나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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