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3년 발의됐으나 1982년 결국 폐기
미 상원, 이번 주 비준 결의안 표결 예정
"법률상 권리의 평등은 성별을 이유로 거부되거나 축소돼서는 안 된다."
1923년 미국에서 참정권 운동을 이끈 1세대 페미니스트 앨리스 폴이 제안했다 폐기된 '성평등 헌법수정안(ERA)' 조문의 일부다. ERA는 1970년대 제2의 페미니즘 물결에 올라탔으나 의회 비준을 눈앞에 두고 백래시(사회·정치 진보에 대한 반발)에 거꾸러졌다.
지난 100년간 미 헌법에서 유예됐던 성평등이 이번엔 빛을 볼 수 있을까. 이번 주 상원에서 ERA 비준을 위한 결의안이 표결에 부쳐진다고 25일(현지시간) 미 워싱턴포스트(WP)가 전했다.
미 상원, 초당적 결의안 표결 부쳐
지난해 연방대법원이 헌법상 임신중지(낙태)권을 폐기하고, 보수적인 주(州)를 중심으로 '먹는 낙태약'에 대한 접근을 가로막으면서 미국 여성 인권이 위기에 처했다. 여성 인권 억압을 ERA로 저지하겠다는 것이 평등론자들의 복안이다.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지난 24일 성명을 통해 "지금처럼 ERA가 긴급하게 필요했던 적이 없다. 미국 여성들은 100년을 더 기다릴 여유가 없다"며 결의안 표결 일정을 공개했다.
ERA 결의안은 리사 머코스키(공화당·알래스카) 상원의원과 벤 카딘(민주당·메릴랜드) 상원의원이 초당적으로 발의했다. 1982년으로 못 박은 ERA의 비준 시한을 폐지하는 게 골자다. ERA가 비준에 필요한 주의회 의결 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1982년 폐기됐기 때문이다.
ERA가 헌법에 추가되려면 의회에서 3분의 2의 찬성을 받아야 하고, 전체 50개 주 가운데 38개 주의회에서 4분의 3 찬성을 얻어 비준돼야 한다. 결의안은 연방의회와 주의회의 비준을 촉구하는 내용이다.
같은 내용의 결의안은 2021년 3월 하원을 통과했다. 당시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의회가 즉시 행동에 나서 ERA 비준 결의안을 통과시킬 것을 촉구한다"고 환영했다.
100년 이어온 싸움에 종지부 찍을까
성평등의 원칙을 헌법에 새기는 일은 간단치 않았다. 100년 전 첫선을 보인 ERA은 연방의회 문턱도 넘지 못했다. 1972년에야 상·하원을 통과했다. 1982년까지 38개 주의 비준을 받는 것이 마지막 관문이었다. 분위기는 낙관적이었다. 당시 미국에선 여성 운동이 절정이었다. 1966년 창설된 최대 여성운동단체 전미여성기구(NOW)와 글로리아 스타이넘, 베티 프리단 등 2세대 페미니스트들이 앞장섰다.
그러나 1970년대 후반으로 가면서 백래시 역시 힘을 얻었다. 비준 기준에서 3곳이 모자란 35개 주만 비준함으로써 ERA는 폐기 처분됐다.
2017년 네바다, 2018년 일리노이, 2020년 버지니아가 뒤늦게 ERA 비준에 동참했지만 당시 도널드 트럼프 정부는 "ERA는 비준 시한이 만료돼 더 이상 계류 중이 아니다"라는 이유로 묵살했다.
ERA가 비준 요건을 충족한 데다 정권의 지지도 받는 만큼 비준 가능성이 상당하다. 슈머 원내대표는 "ERA 비준으로 마침내 성차별에 대한 헌법적 구제책이 마련될 것"이라며 "이로써 미국은 법 아래 평등한 정의를 실현하는 데 한 걸음 더 다가가게 된다"고 강조했다. 다만 백래시 역시 기승을 부리는 것이 변수다. 결의안의 상원 표결 결과에 따라 비준 가능성을 가늠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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