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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범 멍에' 1년... 검사의 뒤늦은 반성문

입력
2023.04.26 19:0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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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원
정명원검사

편집자주

17년 차 베테랑 검사이자 ‘친애하는 나의 민원인’ 저자인 정명원 검사가 전하는 다양한 사람과 사건, 우리가 사는 세상이야기.

삽화=신동준기자


갑자기 숨진 아내 살인범으로 몰린 남편
검경, 핑퐁·지연 수사로 1년 피의자 신세
신속한 무고 규명도 수사기관 책무 절감

어쩌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적어도 수사 초기의 상황은 그랬다. 지인들과 술을 마시고 귀가하던 여성이 남편의 차에서 잠들어 버렸고, 남편은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지 않는 여성을 당장 집까지 데려가기를 포기하고 잠시 차 안에 그대로 두었다. 남편에게 연락을 받고 온 지인들과 함께 그녀를 병원으로 옮길 때까지만 해도 수액이라도 맞으면 술에서 깨어날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병원으로 옮겨진 직후 여성은 사망했고 남편은 수사의 대상이 된다. 사망한 여성의 얼굴과 복부에 외력에 의한 것으로 보이는 상처들이 있었으니 그 시간까지 함께 있었던 사람, 남편이 의심을 받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곧 반전이 있었다. 부검 결과 여성의 사망은 몸에 있는 상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남편은 아내를 옮기려는 과정에서 얼굴과 몸을 때리기도 했다고 자백했지만, 그 행위가 여성의 사망과는 무관하다는 사실이 밝혀진 이상 그에게 아내의 사망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상해치사죄로 체포되었던 그는 석방되었다. 수사를 받느라 아내의 장례조차 제대로 치르지 못한 그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시간이었지만, 갑자기 들이닥친 불행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벌어진 비극의 악화 상황이었다고 해석될 뿐 딱히 누구의 잘못이라고는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제 혐의를 벗고 가정으로 돌아간 그가 뒤늦게라도 슬픔을 추스르고 엄마를 잃은 아들의 마음을 살펴 줄 수 있기를 조용히 바라야 할 일이었다.

그러나 안정은 쉽사리 찾아오지 않았다. 그는 석방되었지만 여전히 피의자의 자리에 있었다. 그가 아내의 죽음에 대해 무혐의를 받고 사건이 종결되기까지 꼬박 1년도 넘는 시간이 걸렸다. 그사이 좁은 지역 사회에서 소문은 들끓었을 것이고, 어쩌면 내가 아내를 죽게 만든 죄인일지도 모른다는 자책이 소문보다 앞서 그의 삶을 할퀴었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그 현장에서 아버지와 함께 어머니를 옮기려고 했던 아들이 있었다. 아이에게 가해진, 깊이가 짐작되지 않는 혼란의 시간에 대해 생각하면 이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만 말할 수는 없다. 그에 대해 우리는, 수사기관은 책임이 있다.

초기의 수사 방향이 틀어진 이후 사건은 상해치사에서 유기치사 사건으로 바뀌어 검찰로 송치되고, 유기치사죄 성립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검사의 요구에 의해 경찰로 돌려보내지고 결국 불기소로 결정되기까지 엎치락뒤치락했다. 그중 뼈아픈 것은 검사의 보완수사 요구로부터 사건이 다시 송치되기까지 약 9개월의 시간 동안 사건이 거의 방치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무책임하게 흘려버린 시간에 대해 바뀐 형사법에 따른 검경 간의 역할 분담 시스템의 비합리성이라던가 검찰의 보완수사 요구에 대해 이행기한을 강제하지 않은 법률상의 허점을 꼬집을 수 있겠다. 그도 아니라면 검사의 보완수사 요구를 받고도 수개월간이나 별다른 수사를 진행하지 않은 경찰을 탓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렇게 단순하게 사건을 규정하고 넘어가 버리기엔 수사기관에 몸담고 있는 자로서의 업보가 나 역시 무겁다.

수사하는 자는 사냥꾼과 같다. 냄새가 나는 곳을 향해 의혹을 뒤쫓고 사실의 숲을 헤집는다. 그것은 감추어지고 사라져 버리는 증거들에 맞서 진실을 추구하는 자들의 몸에 밴 습성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우리가 헤집는 것이 어떤 이들의 삶이라는 사실을 종종 잊는다. 수사의 대상이 되는 것은 언제라도 구체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 수사가 끝난 후에도 계속해서 살아가야 할 삶이 그들에게 있다는 사실을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한다. 의혹을 품는 것은 수사기관의 의무지만 의혹으로부터 무고한 자를 서둘러 놓아주어야 하는 것도 수사기관의 책무다. 너무 늦게 도달한 수사결과 통지서에 미처 동봉하지 못한 반성문을 부끄러운 마음으로 여기에 놓는다.

정명원 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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