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영역 '접수'하고 성장 주체로 나선 엄마들
'좋은 엄마' 규정짓지 않고 가족도 지지
K콘텐츠 속 중년 여성 배우 입지 넓어져
'길복순'(전도연)과 '차정숙'(엄정화), 그리고 '오경숙'(문소리). 최근 K콘텐츠에서 화제가 된 영화·드라마 속 여자 주인공들이다. 공통점은 모두 '엄마'라는 것. 의료계, 정치계는 물론이고 음습한 살인업계까지 접수한 엄마들은 성장을 멈추지 않는다. K콘텐츠 속 엄마들이 '일과 가정'이라는 세계에 갇히지 않고 주체적으로 판을 이끌며 본격적인 자아 찾기에 나섰다.
남성만의 영역 깨고 '엄마도 성장 주체' 보여줘
가장 상징적인 점은 활동 무대의 변화다. 과거 남성만의 영역으로 치부됐던 분야에서 거리낌 없이 엄마가 주인공으로 누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길복순'의 주인공 길복순은 청부살인업계의 전설적인 킬러고, JTBC '닥터 차정숙'의 차정숙은 20년간 주부로 살며 경력 단절을 겪다 다시 병원으로 돌아간 의사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퀸메이커'는 극 중 악의 축이 되는 재벌가 회장님부터 정치인까지 주요 인물들을 전부 중년 여성으로 캐스팅했다.
엄마를 계속 성장하는 주체로 그리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닥터 차정숙'은 아예 결혼과 육아로 경력이 단절된 차정숙의 자아 찾기를 전면에 내세운다. 나이 많은 레지던트로 "잘할 수 있겠냐"라는 직장 안팎의 선입견 속에서도 차정숙은 "엄마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강해"라고 외치는 '꺾이지 않는 마음'을 가진 굳센 캐릭터다. tvN '일타 스캔들'의 남행선(전도연)이 딸 해이의 입시가 끝난 뒤 핸드볼 국가대표 경력을 살려 스포츠지도사 자격증을 따며 새로운 인생을 준비하는 전개와 겹친다.
가족들도 엄마의 희생을 강요하는 대신 엄마의 자아 찾기, 엄마의 성장을 지지한다. '퀸메이커' 오경숙은 서울시장 선거를 눈앞에 두고 경쟁자 백재민(류수영)의 공격이 자신의 아들을 향하자 "레이스를 멈추겠다"고 선언한다. 하지만 아들은 말한다. "(엄마) 이렇게 실망시킬 거야? 일단 (선거에) 이겨야 혼을 내든지 갈아엎을 거 아니야."
'좋은 엄마'의 의미도 새롭다. 일과 가정 사이 혼란을 겪다가 그 어딘가에서 찾은 균형을 평가하던 과거와 다르다. 길복순은 사춘기 딸과 갈등을 겪으며 킬러라는 자신의 일과 가치관에 대한 고민을 시작한다. 하지만 딸과 소통하면서 좋은 엄마를 넘어 좋은 인간에 대한 답을 찾아간다. 황진미 대중문화 평론가는 "'길복순'은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선 단순히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 아닌, 자식과 가치에 대해 보편적인 대화가 가능해야 함을 보여준다"면서 "'좋은 엄마는 결국 좋은 인간'이란 담론으로 확대된, 괜찮은 모성에 대한 탐색을 한 영화"라고 풀이했다.
'여성 서사' 바람 타고 바뀐 '엄마'들…중년 여성 배우 입지도 넓어져
엄마들의 변신은 2021년 "잘 봐, 언니들 싸움이다"라는 명대사를 남긴 Mnet '스트릿 우먼 파이터', SBS '골 때리는 그녀들' 등에서부터 두드러진 K콘텐츠 속 여성 서사 바람을 타고 시작됐다. 여성의 주체성(ENA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tvN '작은 아씨들' 등)이나 젊은 여성 간 연대(티빙 '술꾼도시여자들')를 강조한 서사에서 더 나아가 '엄마' 캐릭터들까지 극 중심에 서게 된 것. 시청자들도 호응하고 있다. "'닥터 차정숙'이 엄마로, 아내로 살며 잃어버린 나를 찾는 드라마인 것 같아 좋다. 응원한다" 같은 리뷰가 줄을 잇는다. '퀸메이커'는 공개 첫 주 비영어권 TV시리즈 주간 시청 시간 1위를 기록하는 등 흥행에도 성공했다.
연기력이 검증된 중년 여성 배우들의 입지가 넓어진 것도 주체적 엄마 캐릭터의 등장을 촉진한 측면이 있다. 당장 김희애(56)·문소리(49)·엄정화(54)·전도연(50) 등 탄탄한 연기력의 40~50대 여성 배우들이 '원톱'으로 나서는 것이 대세가 된 상황이다.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는 "사회도 받아들일 준비가 됐고 동시에 검증된 여성 배우들이 겪는 연기적 갈증을 해소하려는 대중문화 산업계의 변화가 맞물리면서 '엄마' 캐릭터가 더 다양화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재근 대중문화 평론가도 "최근 중년 여성들의 사회적 성취나 성장, 욕망 등이 K콘텐츠의 주요 테마가 됐다. 중년 여성 배우들의 위상이 더 높아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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