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출혈로 요양급여 신청했지만 거부
공단 "근무시간 길지 않아... 과로 아냐"
대법 "긴장 컸을 것... 신체 장해 이어져"
"휴게 시설 없어... 사용자 보호조처 미흡"
콜센터 상담원 A(58)씨는 2018년 9월 뇌출혈로 쓰러진 뒤 근로복지공단에 요양급여 신청을 했다. 민원인 응대를 넘어 폭언과 성희롱까지 당하는 과정에서 뇌출혈이 발생했기 때문에 산업재해라는 취지였다. A씨는 2018년 2월부터 600개 이상 무인 주차장 이용 운전자들에게 상담업무를 해온 것으로 파악됐다. 요양급여는 근로자가 업무상 사유로 다치거나 질병에 걸린 경우 지급되는 보험 혜택을 뜻한다.
공단은 그러나 이듬해 11월 A씨의 신청을 거부했다. ①A씨가 쓰러지기 직전 주당 업무시간이 41시간에 불과했고 ②급격한 업무 환경 변화가 확인되지 않는 점을 고려하면 뇌출혈과 업무 사이의 인과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취지였다. A씨는 2020년 9월 공단을 상대로 "요양급여 불승인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1심 법원은 2021년 10월 A씨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지난해 6월 정반대 결론을 내렸다. A씨가 ①고정적인 시간에 근무한 데다 이틀간 휴일을 보장받았고 ②뇌출혈이 발병한 근무일에 통화량이 많지 않았던 점을 고려하면 육체적 부담이 컸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정신적 스트레스에 대해서도 "전화상담 과정에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인정할 만한 자료는 보이지 않는다"며 "항의나 불만이 심한 전화를 받은 경우 상사에게 전화를 넘길 수 있다"며 기각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결국 뇌출혈의 원인을 A씨의 고혈압과 고도비만 탓으로 결론 내렸다. 재판부는 "고혈압의 원인은 약을 복용하지 않은 A씨의 개인적 요인에 따른 것"이라며 "업무상 부담이나 스트레스가 뇌출혈 발생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직무 스트레스로 뇌출혈 인정"
그러나 대법원 2부(천대엽 대법관)는 최근 원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A씨는 민원인과의 다양한 분쟁을 지속적으로 처리해야 했고, 그 결과에 따라 소속 업체에 불이익이 초래될 가능성까지 있었기 때문에 정신적 긴장이 큰 상태에서 근무할 수밖에 없었다"며 "직무 스트레스로 인해 뇌혈관계질환 등의 신체적 장해까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봤다. 대법원은 A씨가 콜센터 상담원으로 4년 9개월간 근무하면서 건강이 악화했던 점도 고려했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A씨의 근무 환경이 좋지 않았던 점도 지적했다. 대법원은 "사용자는 건강문제 발생가능성 및 대비책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거나 고혈압 관리 등 건강증진 프로그램을 시행하는 등의 조치를 전혀 취하지 않았다"며 "정신적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휴게시설이 마련되지 않는 등 사용자의 보호조처가 완비되지 않은 상황도 과도한 육체적·정신적 피로에 노출되게 한 주요한 정황"이라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결국 "A씨의 근로시간이 1주 평균 52시간을 초과하지 않았더라도 '만성적인 과중한 업무'에 종사했다고 볼 여지가 크다"며 "과중한 업무나 과도한 스트레스가 뇌출혈의 주요 원인인 고혈압과 겹쳤을 가능성이 크다"고 결론 내렸다. 노동의 '양'이 아닌 '질'에 주목해 "업무시간 자체가 과로로 보기 어렵다"는 원심 판단을 배척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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