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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조 투입된 김포골드라인은 어떻게 애물단지가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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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조 투입된 김포골드라인은 어떻게 애물단지가 됐나

입력
2023.04.2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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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5·9호선 연장과 경전철 수차례 계획 변경
정부 수요예측 실패, 김포시 독자 추진 '판단 미스' 겹쳐
한정된 예산에 역사마저 2량 크기로 지어

13일 오후 서울시 강서구 김포도시철도(김포골드라인) 김포공항역 상행선 승강장이 전동차를 기다리는 승객들로 가득 차 있다. 연합뉴스

13일 오후 서울시 강서구 김포도시철도(김포골드라인) 김포공항역 상행선 승강장이 전동차를 기다리는 승객들로 가득 차 있다. 연합뉴스

'김포골병라인'

경기도 김포시 한강신도시의 끝자락 양촌역과 서울 강서구 김포공항역을 이어주는 경전철 김포골드라인(10개 역, 총연장 23.4㎞)의 달갑지 않은 별명이다. 매일 출퇴근길 2량밖에 안 되는 '미니 열차'에 혼잡도가 최대 285%에 달할 정도로 승객들을 꽉꽉 눌러 담아 실어 나르면서 호흡곤란 환자 발생 등 안전사고가 속출하자 시민들에 의해 붙여졌다. 줄여서 '김골라'라 불리는 이 열차는 서울의 '베드타운'인 김포시 주민들에게 꼭 필요하면서도 이제는 미워할 수밖에 없는 '애증'의 산물이 됐다. 국비 지원 한 푼 받지 않고, 김포시민들(교통분담금 1조2,000억 원)과 김포시(3,000억 원)가 마련한 자금 1조5,000억 원만으로 건설된 골드라인은 어떻게 애물단지가 됐을까?

김포 지하철 구상은 26년 전 처음 나왔다. 김포군 시절인 1997년 김포읍과 김포공항역을 연결하는 총연장 10㎞ 규모의 경전철 계획을 발표했다. 김포의 원도심(사우‧북변지구와 풍무지구 등) 택지개발사업을 앞둔 데다 강화를 오가는 서울 나들이객이 늘면서 유일한 간선도로인 48번 국도의 교통체증이 극심해지자 1998년 착공해 2005년 개통한다는 목표였다. 하지만 2001년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경제적 타당성을 조사한 결과 비용 대비 편익(B/C)이 1.0 미만으로 나와 무산됐다.

상황은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가 2기 신도시 건설계획에 김포한강신도시(발표 당시엔 양촌신도시, 2008년 명칭 변경)가 포함되면서 바뀌었다. 교통대책으로 수도권 지하철 5호선 또는 9호선을 연장해 김포공항과 김포신도시를 잇는 노선(9호선 연장의 경우 총 21㎞, 공사비 1조6,722억 원)이 제안됐다. 그러나 대상 지역에 군사시설보호구역이 많아 국방부가 반대했고, 건설교통부가 2004년 6월 당초 498만 평 규모였던 한강신도시를 150만 평으로 대폭 축소한 변경안을 내놓으면서 서울 지하철 연장이 무산됐다.

이후 한강신도시는 350만 평 규모로 확대됐으나, 신도시에 계획된 각종 시설의 규모가 대폭 축소돼 경전철 건설이 대안으로 떠올랐다. 그러면서 '시간이 걸리더라도 중전철을 연장하자'는 여론과 '경전철을 신속하게 추진해 개통하자'는 의견이 부딪히기 시작했다.


김포시 한강신도시 계기로 도시철도 본격 추진

중량전철과 경량전철 비교표. 국토교통부 철도산업정보센터 캡처

중량전철과 경량전철 비교표. 국토교통부 철도산업정보센터 캡처

이런 상황은 2006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중전철 건설'을 공약으로 내걸어 당선된 강경구(한나라당, 현 국민의힘) 김포시장이 취임하면서 또다시 바뀐다. 김포시로 승격했던 1998년 당시 12만8,000명(통계청 기준)이었던 인구가 거의 2배인 20만 명으로 늘어나자 9호선을 연장하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여전히 중전철을 건설하기에는 타당성이 부족했고, 국토해양부와 김포시는 2007년 인구 15만~17만 명 규모의 한강신도시 건설을 발표하면서 교통대책으로 경전철 건설 방안(2010년 착공 2013년 개통 목표)을 내놓았다. 강 시장은 2009년 양촌에서 김포공항역으로 가는 고가(지상) 경전철을 건설(4량 1편성, 총 연장 27㎞, 총 사업비 1조1,863억 원)하는 기본계획 승인도 받아 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전체 구간 중 서울 구간(3㎞)은 지하화하고, 나머지 김포 구간은 지상에 건설하려 하자 김포시민들이 "고가의 높이가 건물 4층 높이에 달해, 도시 미관을 심각하게 훼손할 뿐 아니라 사생활 침해, 지역 갈등 유발 등 도시 발전을 크게 저해한다"며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유정훈 아주대 교통시스템공학과 교수는 이에 대해 "기존 지상철이 있는 지자체도 지하화해 달라고 요구하는 마당에 인구 50만 명 규모가 예상되는 김포시 주민들이 도시 미관을 해치니까 지하화해 달라는 요구는 어찌 보면 당연하다"면서도 "대신 건설비가 싼 지상철의 장점은 놓치게 됐다"고 말했다.

철도정보산업센터에 따르면 최대 수송용량이 시간당 1만~2만 명인 경전철(차량 편성 2~6량)을 지하방식으로 건설할 때 건설비는 1㎞당 800억~900억 원으로, 지상 건설(고가방식, 1㎞당 350억~500억 원)의 2배 수준으로 비싸다. 유 교수는 "경기 용인과 의정부, 부산 김해가 (지상 경전철을) 너무 무식하게 지어서 그렇지, 외국은 지상으로도 도시와 조화를 이루도록 예쁘게 건설한다"며 "우리나라 초기 지상 경전철이 흉물이 되어 버리니까, 너도나도 지하를 선호하고, 지하로 지으니 건설비가 일반 지하철과 별 차이가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이 문제는 이듬해인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9호선 연장 추진'을 내건 민주당 소속 유영록 시장후보가 당선되면서 고민할 필요가 없어졌다. 고가경전철이 전면 백지화돼서다. 유 시장은 인구 증가로 2006년과는 사정이 달라져 9호선 연장이 가능하다고 주장, 취임 직후부터 9호선 연장을 추진했다. 이번에도 타당성 용역 결과 고촌~김포 원도심~한강신도시 노선의 경제성(B/C)이 낮게 나오자, 유 시장은 한강신도시 교통분담금과 시 예산을 전부 투입해 '김포 지하철 건설에 국비와 도비를 받지 않겠다'는 확약서를 경기도에 제출하는 배수진을 쳤다. 당시 9호선이 4량으로 운행하고, 김포구간 승강장도 4량으로 계획 중인 점을 고려해 사업비를 계산, 이 같은 판단을 내렸다고 한다.

그러나 서울시가 9호선의 8량 증결 계획을 제시하며 8량 역사 건설을 요구하는 바람에 약 5,000억 원대의 추가 부담이 생길 것으로 예상되자 유 시장은 취임 1년 반 만에 경전철 계획으로 급선회했다.

시장 따라 중전철↔경전철, 지상철↔지하철 수차례 오락가락

김포골드라인 노선도. 구글 맵

김포골드라인 노선도. 구글 맵

특히 김포시는 예비타당성조사를 받지 않기 위해 경전철 건설을 위한 국비나 도비 지원을 받지 않는다는 방침을 유지하는 큰 실수를 저지른다. 정부의 예비타당성을 통과하면 도시철도법(도시철도의건설과지원에관한기준)에 따라 도시철도 건설비를 국비 60%, 지방자치단체 40%로 분담해 지원받을 수 있었으나 이를 포기한 것이다.

당시 김포시의회 회의록을 보면, 유 시장은 2011년 9월 "한강신도시 광역교통개선대책으로 추진되는 김포도시철도는 예비타당성 조사 대상이 아니다"며 "그렇기 때문에 LH의 광역교통개발부담금과 우리 재정사업으로 바로 진행한다"는 발언도 나온다. 이 때문에 김포골드라인 총사업비 1조5,000억 원은 한강신도시 입주민들이 LH에 낸 교통분담금(1조2,000억 원)과 김포시 예산(3,000억 원)으로 충당됐다. 김포시는 부담을 줄이려 민자 유치에도 나섰다가 실패했다.

김포골드라인은 2013년 12월 경기도에 심의 요청된 사업계획 승인안에서는 승강장 길이를 3량(47m) 규모에서 2량(33m) 크기로 축소했다. 또 계획의 기준 지표로 사용되는 국토부의 국가교통데이터베이스(KTDB)에는 김포시 인구가 40만 명 수준으로만 잡혔고, 예산도 부족해 도시철도 기본계획상 지하철 역사를 2량 규모로 설계할 수밖에 없었던 한계도 있다. 이로 인해 1,500억 원의 예산을 절감하게 됐으나 인구가 늘어 혼잡률이 상승해도 더 이상 열차를 증결할 수 없게 돼 당시 시의원 다수가 반대 의견을 내기도 했다. 실제로 김포시 인구는 한강신도시 입주가 시작된 2010년대 거의 매년 2만~3만명씩 늘어나 10년 만에 2배(2010년 23만8,000명→2020년 47만4,000명, 통계청 자료)가 됐고, 올해 1월 말 기준 51만명(외국인 포함, 김포시 자료)이다.

유정훈 교수는 "김포시가 막상 자기 뜻대로 하려 해도 예산 부담 때문에 경전철로 하고, 열차도 4량 1편성은 비싸니까 2량 1편성으로 한 것"이라며 "혼잡도가 높아질 경우를 대비해 역사만이라도 4량 크기에 맞게 지었어야 하나 부족한 자금으로 인해 2량 크기로 지은 것은 결정적 패착"이라고 아쉬워했다. 그는 "역사를 4량 크기로 지으면 2량보다는 공사비가 많이 들겠지만, 엄청난 차이는 아니다"며 "조금 여유 있게 미래를 보고 건설했어야 했는데, 당시 최대로 댈 수 있는 자금이 1조5,000억 원이니까 거기에 맞춰 공사한 것으로밖에 안 보인다"고 했다.

여러 우여곡절 끝에 2014년 3월 착공된 골드라인은 2018년 11월 개통할 예정이었으나 10개월가량 지연되며 주민들의 따가운 눈총도 받았다. 2016년 레미콘 수급 차질과 인·허가, 보상 등 문제가 맞물려 토목 공사가 당초 계획보다 6~8개월가량 지연됐고, 2019년 4~5월 영업시운전 때 차량 떨림 현상이 나타나서다.

"국비·도비 지원 안 받겠다" 결정적 실수... 열차 4량→2량, 역사도 2량 크기로

2021년 5월 9일 국회 앞에서 김포주민들이 GTX-D 강남 직결을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1년 5월 9일 국회 앞에서 김포주민들이 GTX-D 강남 직결을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출퇴근 고통에 시달려 온 김포시민들은 1년 가까이 개통이 미뤄지자 선출직 총사퇴를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또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김포도시철도 개통 지연에 대한 철저한 감사와 관련자 처벌을 부탁드립니다'라는 청원이 올라오기도 했다.

천신만고 끝에 2019년 9월 28일 개통된 골드라인은 그러나 밀려드는 인파로 인해 크고 작은 사고가 잇따랐다. 국가 차원에서 추진된 한강신도시 개발로 김포시 인구가 50만 명 수준으로 늘어날 것이 충분히 예상됐음에도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정치권 모두 간과한 결과다. 선출직 공직자들의 공약 남발과 여러 차례의 계획 변경, 건설교통부(현 국토부)의 엉터리 탑승수요 예측이 부른 인재라고 볼 수 있다.

역사를 4량 크기로 짓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나 사실상 불가능해 5호선 연장이나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 D노선 건설을 가능한 한 앞당기는 것이 현실적인 해결책이라는 게 중론이다. 그전에는 버스 투입이나 열차 편성 확대 등으로 버티는 수밖에 없다.

유정훈 교수는 "내년 예정된 열차 증편(6편성 12량) 조기 시행은 이론적으로 현재 3분인 배차 간격을 2분 30초로 줄일 수 있지만, 서울지하철도 안전을 고려해 출근 시 2호선 배차 간격이 2분 30초 정도"라며 "(증편은) 수송 능력이 엄청나게 향상되는 것이 아니고, 또 혼잡하면 승하차에 시간이 많이 소요돼 연착될 가능성도 있어 배차간격을 2분 30초로 맞추기가 아주 쉽지는 않다"고 말했다.

박민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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