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츠 카프카 탄생 140주년 기념
단편선 '돌연한 출발' 출간
'변신' '시골의사' '굴' 등 32편 묶어
자필 원고·드로잉, 역자의 시 수록
"어느 날 내가 바퀴벌레로 변하면 어떻게 할 거야?"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지는 질문이다. 가족 등 가까운 이들의 반응을 온라인으로 공유하는, 일종의 놀이다. 이게 무슨 기괴한 질문인가. 그런데 사실 그 질문의 원조는 체코 작가 프란츠 카프카(1883~1924)다. 자고 일어나니 벌레로 변한 주인공을 그린 단편소설 '변신'은 그의 대표작이다. 카프카는 왜 황당한 상상을 바탕으로 글을 써 내려간 걸까.
신간 '돌연한 출발'은 그런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아갈 시간을 선사한다. 카프카 탄생 140주년을 기념해 그의 단편소설 32편을 묶은 단편선이다. 카프카 작품을 번역하고 그가 활동했던 체코 프라하를 찾은 경험으로 시집을 낸 적 있는 전영애(72) 서울대 독어독문학과 명예교수가 작품 선별에 참여했고 번역도 맡았다.
책은 작가 인생 전반을 소개하는 자료들로 시작한다. 카프카의 자필원고 사진자료와 친구 오스카 폴락에게 보낸 편지, 역자가 카프카의 삶과 문학을 소개하는 짧은 글 등이다. 이는 난해한 그의 작품을 처음 접하는 독자라도 한 걸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하는 길라잡이다. 극도로 불쾌하고 혼란스럽고 모순적인 상황을 의미하는 '카프카적(kafkaesque·카프카에스크)'이란 단어가 독일어 사전에 등재됐을 정도로 카프카 문학은 독특하다. 카프카는 권위적인 아버지와 우울증을 앓는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프라하에서 평생을 살았지만 그곳에서는 소수 언어인 독일어를 모국어로 썼고, 유대인이었으나 유대교 신앙은 없었다. 이중 삼중으로 이방인이었던 그 삶을 알면 작품 기저에 깔린 불안과 초조, 허무의 감정을 보다 깊숙이 들여다보게 된다.
단편선은 3부로 구성됐다. 1부에는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인 '변신'과 '시골의사'가 포함돼 있다. 두 작품 모두 현실과 비현실을 오가는 듯한 혼란 속에서 출구 없는 삶, 고립된 인간상을 보여준다. 특히 '변신'의 벌레로 변해버린 주인공 '그레고르'와 그의 가족들에게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발견한다. 하루아침에 벌레가 된 상황에도 그레고르는 고작 지각과 결근을 걱정하고, 생활비를 버는 가장의 역할을 더는 할 수 없게 된 그는 불필요한 존재로 버려진다. 기능으로만 존재하는 사회에서 '나'란 존재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한다는 점에서 현재적이다.
2, 3부는 각각 카프카 속의 '길'을 보여주는 작품들, 문체의 특징이 두드러지는 소설들로 채워졌다. 그중 한 쪽 분량도 되지 않은 짧은 소설들은 카프카 문학의 정수를 보여준다. 군더더기 없는 표현과 정확한 묘사, 구체적인 문장이 짧지만 깊은 사유를 유도한다. 기이하고 암담해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인생들을 만날 수 있는데 '옆마을' '돌연한 출발' '귀가' '나무들' 등이 대표적이다. 이외에도 카프카가 죽기 전 원고를 불태울 때 유일하게 제외시킨 '굴', 카프카 스스로도 만족했던 작품 '선고'도 함께 묶였다.
"1 / 어둠이었습니다 세상은 / 열리지 않는 문門이었습니다 // 어둠 한 조각 도려내어 / 한 줄기 길을 트려 하였습니다 / 눈빛만 벼렸습니다, 새파랗게 // 2 / 거미줄 미로 / 내 손바닥에 펼쳐져 있습니다 // 3 / 눈이 아픕니다 / 죽도록 벼려 온 어둠의 칼 / 나 이제 허덕이며 / 엎디어 받습니다 // 나 아직도 / 문 앞에 있습니다 무쇠문 앞에" (징벌 - 카프카, 나의 카프카12)
책 후반부에 실린 역자의 시는 여운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그가 프라하에 남겨진 카프카의 흔적을 찾아가며 쓴 시집 '카프카, 나의 카프카'(1994)에 수록됐던 시 18편 전편이 모두 실렸다.
카프카의 글은 세계적으로도 연구가 가장 많이 이뤄지는 텍스트 중 하나다. 한 번 읽으면 좀처럼 잊기 힘들 정도로 인상적이고, 생각하게 만드는 힘을 가져서다. 그의 작품이 지금도 읽히는 건 모순과 고통, 실패의 이야기 앞에 선 독자들이 기어코 희망을 찾아내려 하기 때문이기도 할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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