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로써 민족미술의 발전과 해외 진출의 시도는 실천된 것으로 믿는 바입니다. ‘운운’이란 문자 그대로 억지로 웃어넘기지 않을 수 없는 것이었다."
서양화가 정규(1923~1971)는 월간지 '신태양' 1957년 4월호에 게재된 수필 ‘한국양화의 선구자들’에서 ‘천일화랑’으로부터 전시 안내장을 받았던 기억을 이렇게 술회한다. 천일화랑은 서울 종로4가에 있었던 천일백화점에 1954년 문을 열었다. 휴전 직후의 어수선한 상황에서 개관한 화랑이 ‘민족미술의 발전과 해외 진출 시도’를 말하니 화가는 웃음이 나왔을 것이다. 실제로 화랑은 반년 정도만 운영되고 문을 닫았다.
그러나 정규는 "천일백화점 미술상설진열관이 아무런 성과도 없이 하나의 비상설미술진열관이 되고 말았느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라고 말을 이어간다. 그곳에서 미술사적으로 주목할 만한 전시가 열렸다는 이야기다. 바로 전쟁 중에 세상을 떠난 서양화가 구본웅(1906~1953), 김중현(1901∼1953), 이인성(1912~1950)의 유작전인 ‘유작 3인전’이다. 이 전시의 개막식 사진에는 젊은 날의 김환기(1913~1974), 장욱진(1917~1990), 도상봉(1902~1977)도 보인다.
천일화랑을 연 주인공은 훗날 천일백화점 사장을 지낸 이완석(1915~1969)이다. 그는 충남 공주 출신으로 1930년대 도쿄의 태평양미술학교 도안과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한다. 이후 해방 이전에 서울에서 가장 큰 제약회사 중 하나였던 ‘천일제약’에 디자이너로 취직한다. 그 자신이 미술가였고 화가들과 친분이 있었기에 사실상 수익이 나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화랑을 열었던 것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천일화랑의 미술사적 유산을 지금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예화랑’에서 만날 수 있다. 예화랑은 이완석의 딸 이숙영이 1978년 문을 열었다. 그가 2010년 별세한 이후에는 그의 딸인 김방은 대표와 김 대표의 이모인 이승희 대표가 함께 예화랑을 운영하고 있다. 예화랑은 개관 45주년을 기념해 다음 달 4일까지 ‘밤하늘의 별이 되어’ 전시를 연다. 이번 전시에는 구본웅, 이인성을 비롯해 권옥연, 김향안, 김환기, 남관, 문신, 변종하, 손응성, 오지호, 유영국, 윤중식, 이대원, 이준, 임군홍, 임직순, 장욱진, 정규, 천경자, 최영림, 홍종명 등 한국 현대미술사를 화려하게 장식한 서양화가 21명의 작품을 선보인다. 전시장에는 이완석이 생전에 작업했던 디자인 도안과 그림, 천일화랑 관련 사진들을 전시하는 공간도 마련됐다.
최근 전시장에서 만난 김방은 대표는 “외할아버지는 경영 능력을 인정받아서 백화점 사장까지 지냈다. 그 당시 미술가로서는 행운이 따른 경우”라면서 “그래서 동료 작가들을 위한 공간, 사람들이 항상 예술가의 그림을 볼 수 있는 전시장을 꿈꿨던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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