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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실패한 확장억제

입력
2023.04.19 16: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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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명나라 환관 황엄. KBS 화면 캡처

명나라 환관 황엄. KBS 화면 캡처

중국 명나라 3대 황제 영락제는 환관을 중용했다. 영락제의 대표적 대외원정인 남해원정(1405~1433)도 환관 정화(鄭和)에게 맡겼다. 정화가 거느린 함대는 거선 62척, 승무원만 2만7,800여 명에 달했다. 7차에 걸친 원정에서 정화는 실론, 자바 등 동남아는 물론이고 아프리카 동해안까지 도달했다가 귀환했다.

□영락제는 조선과의 외교도 환관에게 맡겼다. 신의주가 고향으로 알려진 조선 출신 황엄(黃儼)이었다. 황엄은 영락제 메시지를 들고 1403년부터 1419년까지 조선을 9차례 이상 방문했다. 1406년 방문 때는 제주 법화사의 구리 불상을 통째로 실어갔고, 1407년에는 태조 이성계가 고이 모셔 뒀던 석가모니 진신사리를 반 협박으로 받아냈다. 황엄의 위세와 수탈이 너무 심해, 태종 이방원마저 “황엄의 패악을 황제에게 상주하여 처벌토록 하겠다”고 화를 낼 정도였다.

□태종과 그의 신하들은 황엄을 통해 세자(양녕대군)를 영락제의 부마로 만들려고 시도했다. 공부(孔俯)는 “제실(帝室)과 연혼(連婚)하게 된다면, 북쪽 건주(建州)의 핍박(逼迫)과 서쪽 왕구아(王狗兒)의 수자리[戍]가 있다 하더라도 무엇이 두려우랴"고 말했다. 명 황실과의 혼인으로 초강대국 명은 물론이고 북원, 여진족으로부터의 안보를 단번에 확보하려는 시도였다. 쉽게 말해 ‘조선판 확장억제’인 셈인데, 황엄이 황제를 만나고 다시 찾아온 뒤 아무 말도 않으면서 흐지부지됐다.

□외교가에서는 이달 말 한미정상회담에서 미국의 강화된 확장억제 방안이 나올 것으로 예상한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례를 본뜬 새로운 네트워크의 출범이나, 차관급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 등 현재 협의체를 격상하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하지만 고도화하는 북한의 핵 위협과 복잡한 국제정세를 감안하면 그 어느 것도 우리 안보를 보장하지 못한다. 혼담이 깨진 뒤 태종은 섣부른 제의를 후회하며, “군신이 일체가 된 연후에야 나라가 다스려져서 편안해진다”고 자강론을 펼쳤다. 당장 확장억제를 넘어서긴 어렵지만, 독일과 일본처럼 필요하다면 6개월 안에 핵무장이 가능한 ‘무기화되지 않는 무기체계’의 구축은 여전히 시급하다.

조철환 오피니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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