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대노총 "권순원 교수 사퇴하라" 요구에
공익위원들 '장내 정리' 요구하며 회의장 입장 거부
결국 개의 선언도 못 하고 첫 전원회의 '파행'
2024년도 최저임금 논의가 첫발도 떼기 전에 파행했다. 최저임금위원회 근로자위원을 구성하고 있는 양대 노총이 공익위원 중 한 명인 권순원 숙명여대 교수 사퇴를 주장하고 나서자 공익위원들이 회의장 입장 자체를 거부하면서 한 시간가량 회의 진행이 지연됐다. 기다리던 근로자위원들마저 회의장에서 퇴장하면서 이날 회의는 무산됐다.
18일 오후 3시 개최 예정이었던 제1차 최저임금위원회는 모든 참석자가 회의 장소에 도착했음에도 개의 선언도 하지 못한 채 취소됐다. 오후 4시쯤 근로자위원들이 마지막으로 회의장을 떠나면서 회의가 파행했고, 이후 오후 4시 40분쯤 위원회 관계자가 "다시 1차 회의 일정을 잡아 공지할 것"이라며 "오늘 회의는 취소됐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미 회의 시작 전부터 파행 분위기가 감지됐다. 양대 노총은 회의 직전 기자회견을 열고 공개적으로 권순원 교수의 공익위원 사퇴를 요구했고, 회의장 안에서도 다수의 조합원들이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는 등 권 교수 사퇴를 촉구했다. '주 최대 69시간' 근로시간 개편안의 밑그림을 그린 미래노동시장연구회의 좌장을 맡았던 권 교수가 객관적 입장에서 최저임금 심의를 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회의 직전 위원장인 박준식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가 회의장에 잠시 얼굴을 드러내긴 했지만, 어수선한 분위기를 지켜본 뒤 자리에 앉지 않고 이내 모습을 감췄다.
결국 회의 시작 시간이 지났지만 공익위원은 '장내 정리'를 요구하며 아무도 참석하지 않았고, 위원회 사무국 측에서 "대표위원만 위층 회의실에서 따로 모여 달라"고 공지하자 류기정 한국경영자총협회 전무를 비롯한 사용자위원 9명은 모두 퇴장했다. 공익위원과 사용자위원 측이 사실상 회의 참석을 거부한 셈이다.
긴 시간 동안 아무도 회의장에 나타나지 않자 근로자위원들은 반발했다. 박희은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관례적으로 입장부터 모두발언까지 공개하는 행사인데 왜 일방적으로 나가라고 하는 거냐"며 "대화하려고 여기에 와 있는데 회의를 진행해야 하는 위원장이 모습조차 드러내지 않는 건 직무유기"라고 항의했다. '관계자 외에는 퇴장해달라'는 위원회 사무국 요구에 조합원들은 "최저임금 적용 당사자가 관계자가 아니면 누가 관계자냐"라며 날 선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오후 3시 50분이 넘어 류기섭 한국노총 사무총장은 "노동자가 의사를 전달할 기회조차 박탈하고 회의에 참가하지 않는 위원장의 직무유기에 대해 상당히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박희은 부위원장도 "그동안 최저임금위원회가 얼마나 최저임금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외면한 채 운영돼 왔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현장"이라며 "1시간 가까이 기다렸음에도 시작조차 하지 못한 상황에 대한 책임은 최준식 위원장과 권순원 교수에게 있음을 다시 한번 밝힌다"고 지적했다. 오후 4시쯤 이들은 회의장에서 퇴장했고, 위층에 마련된 별도 회의실에서 대기 중이던 사용자위원과 공익위원들은 이후 별다른 의견 표명 없이 자리를 떴다.
노동계는 내년도 최저임금을 올해(9,620원) 대비 24.7% 오른 1만2,000원으로 제시한 상태다. 이들은 "저성장 국면에서 물가 폭등까지 더해지며 노동자 실질임금은 급락했다"며 "성장률 둔화 요인으로 내수 침체가 지목됐는데, 위축된 소비심리를 회복하려면 최저임금을 높여 내수를 촉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상공인들의 어려움을 강조하고 있는 경영계는 최저임금 동결을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저임금 심의는 6월 말까지 완료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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