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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다움' 인정받은 미래의 루돌프 부흐빈더를 응원한다

입력
2023.04.17 10:0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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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20여 년간 공연 기획과 음악에 대한 글쓰기를 해 온 이지영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이 클래식 음악 무대 옆에서의 경험과 무대 밑에서 느꼈던 감정을 독자 여러분에게 친구처럼 편안하게 전합니다.

피아니스트 김도현(왼쪽부터), 김홍기, 박진형. 금호문화재단 제공

피아니스트 김도현(왼쪽부터), 김홍기, 박진형. 금호문화재단 제공

세상을 놀라게 한 한국 클래식 연주자들 덕분에 티켓 구매가 어려운 공연이 많아졌다. 코로나19 팬데믹을 지나면서 클래식 음악회에 대한 관심은 더 높아진 것 같다. 아쉬운 부분은 그 높은 관심이 특정 연주자와 해외 오케스트라 공연에 과하게 쏠려 있다는 점이다. 클래식 음악 팬층이 두텁지 않은 상태에서 엄청난 스타들이 등장했으니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하지만 밀물과 썰물의 차가 큰 생태계는 위험할 수 있다. 또 다른 스타 연주자가 바통을 이어받지 못하면 밀려든 청중의 관심은 언제든 빠르게 빠져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과는 조금 다른 차원의 우려가 있다. 음악계가 스타 연주자들의 활동에 집중하는 동안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은 연주자들의 활동이 폄하되지는 않을까, 그래서 그들의 음악 여정에 조급함과 혼돈을 주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점이다. 세계 무대에서 주목받는 스타 연주자들과 종이 한 장 차이로 수면 위에 오르지 못했지만 주목해야 할 연주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 김도현, 박진형, 김홍기 등 젊은 피아니스트들의 무대를 찾았다. 제각기 다양한 목소리이지만 어쩜 이렇게 자연스럽고 말이 되는 연주를 할까 놀라웠고 심지어 세계적 수준으로 평가받는 피아니스트들의 무대보다 더 감동적인 부분도 있었다. 3명의 젊은 피아니스트들은 차이콥스키 콩쿠르, 부소니 콩쿠르, 프라하의 봄 콩쿠르, 윤이상 콩쿠르 등에서 수상했다. 눈에 띄는 것은 콩쿠르 순위보다 이들이 받은 ‘특별상’과 당시 심사위원들이 언급한 별도의 평가다.

김홍기는 게자 안다 콩쿠르에서 ‘슈만 최고연주 특별상’을 받았다. 김도현은 부소니 콩쿠르에서 2위상과 함께 ‘현대작품 최고연주상’을,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는 발레리 게르기에프로부터 ‘세미파이널 최고연주 특별상’을 받았다. 박진형은 프라하의 봄 국제 음악 콩쿠르 우승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피아니스트 당 타이 손으로부터 ‘독보적으로 아름다운 음색을 지닌 피아니스트’라는 평을 받았다. 이런 평가는 젊은 연주자의 음악세계를 일정한 틀에 가두게 될 수도 있어 조심스럽지만 콩쿠르 순위보다 더 중요하게 새겨야 할 부분이 있다.

피아니스트 김선욱은 베토벤과 브람스 해석에 뛰어난 연주자로 알려져 있지만 진은숙의 피아노 협주곡도 훌륭하게 연주했다. 최근 막을 내린 통영국제음악제에서는 상주 음악가로서 리게티 피아노 협주곡을 대단히 멋지게 소화해냈다. 특정 시대 레퍼토리에 머무는 연주자들도 있는데 고전, 낭만에 이어 20세기, 21세기 작품 해석에서도 탁월한 감각을 증명한 것이다. 그런데 김선욱에게 쇼팽은 연주자 자신이 고개를 강하게 내저을 만큼 맞지 않는 옷이다. 그가 쇼팽 작품만 연주해야 하는 쇼팽 콩쿠르에 참가하지 않았던 이유, 지금도 쇼팽 작품을 연주하지 않는 이유는 명확하다. 자신이 잘할 수 있는 레퍼토리가 따로 있기 때문이다.

손열음은 2011년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러시아 출신인 다닐 트리포노프에 이어 2위 수상자가 됐는데 이때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특별상과 쉐드린 에튀드 특별상을 함께 받았다. 콩쿠르 이후 다양한 무대를 선보여 왔던 손열음은 2023년 현재, 세계적 거장들로부터 찬사를 받아왔고 연주자 본인도 가장 사랑하는 작곡가인 모차르트 연주에 집중하고 있다.

콩쿠르 결과가 음악가에 대한 절대평가라고 말할 수 없지만 특별상의 의미, 또는 연주자의 개성이 콩쿠르 순위보다 더 중요해지는 시점은 콩쿠르를 통해 자신의 이름을 알린 후부터다. 여러 작곡가의 작품을 두루 잘 소화하는 연주자도 있지만 자기만의 강점과 연주 스타일로 특정 작곡가의 작품을 누구보다 훌륭하게 표현하는 연주자의 음악은 더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앞서 몇 명의 피아니스트들만 언급했지만 더 많은 젊은 연주자들이 콩쿠르와 오케스트라, 합창단의 문을 두드리며 자신이 설 수 있는 무대를 찾고 있다. 모두 응원하지만 누구보다 가장 힘을 내주었으면 하는 이들은 콩쿠르 도전 과정을 이제 막 끝낸, 30대에 접어든 연주자들이다. 콩쿠르에서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었든 얻지 못했든 자신만의 매력에 집중해야 하는 이 외로운 시기에 많이 지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루돌프 부흐빈더도 최고의 콩쿠르 우승자가 아닌 ‘특별상’ 수상자였던 시절이 있었고, 젊을 땐 알프레드 브렌델의 인기에 가리어졌던 연주자였다. 그 누구의 음악도 아닌 ‘나다운’ 음악을 연주하며 40대, 50대를 맞이할 즈음엔 쏠림 현상이 심했던 청중도 당신이 가장 잘 연주하는 그 작품 연주를 듣기 위해 음악회를 찾게 되기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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