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희곡 판매 부수 전년보다 8.7%↑
영세한 시장이나 4, 5년간 꾸준한 증가세
가장 큰 매력은 상상하고 낭독하는 재미
'굿즈처럼' 출판사들 창작 희곡에 주목
"소설이나 수필과 다르게 구체적인 배경 설명이 없어요. 어떤 공간인지 그 사건 이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없죠. 대사와 지문 안에서 스스로 찾아내기 위해 상상하는 게 재밌어요." (희곡 낭독모임 참여 독자 김홍신·43)
희곡을 읽는 재미에 푹 빠진 사람들이 늘고 있다. 최초의 문학이라 불리지만 국내 출판 시장에서는 연간 발행 건수 비중이 1%도 채 안 되는 장르다. 그럼에도 희곡과 연극을 즐기는 방식이 다양해지면서 독자층이 넓어지는 추세다. 인기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희곡 판매 부수의 전년 대비 증가율은 2019년(11%) 이후 연 5.5%, 14.4%, 8.7%로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북펀딩 성사로 독자의 관심이 증명되기도 한다. 6일 출간된 헝가리 작가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희곡집 '르 몽스트르'는 온라인 서점 알라딘의 예술·대중문화 분야에서 주간 판매량 20위 내 순위를 유지하고 있다. 알라딘 북펀딩에서 목표 금액의 세 배를 훌쩍 넘는 액수(약 687만 원)를 모금해 출간 전부터 주목을 받은 책이다. 출판사 제철소의 김태형 대표는 "국내에도 팬층을 보유한 크리스토프의 대표작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도 연극적 요소가 많은 소설이어서 (독자들이) 그의 희곡에 기대감을 보인 듯하다"고 설명했다. 오는 24일 출간 예정인 고(故) 이은용 작가의 희곡집 '우리는 농담이(아니)야'도 총 539명에게 825만 원가량을 모아 펀딩에 성공한 사례다.
출판사들도 시리즈 기획 등 다양한 희곡 출간을 시도하고 있다. 유명 작가별 작품을 모아 내는 희곡집이 아니라 한 작품을 단독으로 출간하는 출판사 알마, 이음, 걷는사람이 대표적이다. 이음과 함께 2016년 초연 희곡을 출간한 우연 전 남산예술센터 극장장(현 이음희곡선 편집위원)은 "해외 사례를 참조해 관객에게 또 다른 즐거움을 주기 위해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이후 국립극단이나 두산아트센터 등에서 선보인 작품성 높은 국내 창작 희곡들도 단편 형태로 출간되기 시작해 이제는 개막과 함께 책이 출간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 국립극단에서 다음 달 7일까지 공연되는 이소연 작가의 '몬순' 역시 개막과 함께 걷는사람에서 책으로 출간됐다.
희곡의 매력은 뭘까. 소설과 시 같은 다른 문학 장르보다 낭독하기 좋다는 것이 장점이다. 그렇다보니 낭독 소모임이나 일일 연기 수업 등의 인기가 희곡으로 연결됐다. 여러 낭독 모임을 주최하는 제주 무명서점의 정원경 대표는 "독자들이 직접 체험하면서 희곡의 매력을 알 수 있게끔 배우가 직접 운영하는 낭독 모임을 만들었더니 일반 책 낭독 모임에 비해 반응이 훨씬 좋다"고 밝혔다. 출판사들은 이런 모임 주최 측의 각종 문의가 늘었다고 전했다. 희곡·연극 전문 출판브랜드인 지만지드라마의 서미랑 편집자는 "동네 서점이나 작은 도서관 등에서 희곡 읽기 모임을 위한 작품 추천을 요청하거나 저작권 관련 문의를 하는 연락이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연극과 비교해 상상의 여지가 많은 것도 특징이다. 김성규 걷는사람 대표는 "독자가 연출가가 되는 셈"이라면서 "연극에서는 관객이 일방적으로 받아들이는 입장이라면, 희곡을 읽을 때 독자는 각자의 기억 속에서 배우를 고르고 이미지를 결합해 장면을 연결해 갈 수 있다"고 희곡 읽기의 매력을 설명했다.
출판계는 국내외 창작극의 성장이 앞으로도 희곡 출판 시장에도 생기를 줄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있다. 자신이 본 연극을 책이란 굿즈(상품)로 소장하고 싶어 하는 관객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 지난해 두산아트센터에서 연일 만석을 기록한 연극 '클래스'(진주 작가) 역시 책(이음 발행)으로 나와 인기를 끌었다. 2019년부터 희곡 시리즈 'GD'를 운영해 온 알마출판사 안지미 대표는 "얼마 전 마에카와 도모히로의 '태양'을 국립정동극장 공연 기간에 리커버 에디션으로 출간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며 "독자들이 접하기 어려운 다양한 동시대 작품을 차곡차곡 출간하다 보면 언젠가는 이 작품들이 고전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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