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오후 1시경. 서울 보신각에는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시민 100여명이 모여 있었습니다. 이 자리에 참석한 동물보호단체 활동가들과 일반 시민들의 손에는 ‘동물학대 온상, 펫숍 번식장 철폐하라’, ‘개∙고양이 번식업 폐지하라’, ‘동물학대범 엄정 처벌하라’는 내용의 손팻말이 들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시민들의 앞에는 국화가 놓여 있었습니다. 한 시민은 국화가 놓인 제단을 향해 두 번 절을 하기도 했습니다. 동물들의 넋을 기리기 위한 진혼곡도 연주됐습니다.
이들이 모인 이유는 지난달 경기 양평군에서 발생한 동물 방치 사건으로 희생된 개 1,256마리를 위로하는 위령제를 열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사건을 ‘동물 대량 학살 사건’으로 규정한 ‘양평 개 대량학살 사건 주민대책위원회’(양평주민대책위)는 지난 1개월간 이 사건을 알리며 지방자치단체의 책임 있는 대응과 엄정한 수사를 촉구해왔습니다. 그 결과 지난달 22일 전진선 양평군수가 사과의 뜻을 밝히고 동물복지 관리 강화를 약속했습니다. 이어서 지난달 31일, 이번 사건의 주범 A씨가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됐습니다.
사건 진행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가운데, 위령제가 마련된 이유는 단순히 목숨을 잃은 동물들을 추모하기 위함만은 아니었습니다. 이들은 이 사건의 근본적인 원인이 무분별한 생산을 반복하는 번식장과 이곳에서 동물을 구매하는 펫숍에 있다며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대응을 주문했습니다. 이 위령제를 통해 이들은 번식장과 펫숍의 실태를 시민들에게 더 알리려 한 것입니다. 이번 위령제 진행을 맡은 양평주민대책위 한수진 공동대표는 인사말을 통해 “번식장을 비롯한 동물학대의 원인을 막는 일에 시민과 사회가 나서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한 공동대표의 인사말 이후 희생당한 동물을 위한 묵념이 이어졌습니다.
이번 사건을 직접 목도한 양평군 주민의 추도사도 이어졌습니다. 양평군 주민 최미정 씨는 “인간에게 선택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소중한 생명들이 굶주림과 학대 속에서 처참하게 죽었다”며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최 씨는 “우리가 인간인 것이 더 이상 부끄럽지 않게, 더 이상 소중한 생명을 고통과 슬픔 속에 보내지 않게 오늘을 기억하고 행동해야 한다”며 번식장과 펫숍을 폐지하는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추도사가 전해진 과정에서 눈물을 글썽이는 시민들의 모습도 엿보였습니다.
추모의 뜻은 이어졌습니다. 추모공연에 초대된 가수 리아 씨는 “겨우 1만원을 더 받기 위한 탐욕에 더는 사람이 악랄하고 잔인해져서는 안 된다"며 "이 일이 정말 다시는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는 공감을 얻었으면 좋겠다"고 전했습니다. 그는 “이번에 희생당한 개들은 사람을 보며 자기들의 엄마 아빠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었다”며 추모곡으로 자신의 곡 ‘엄마 아빠에게’를 고른 이유를 밝혔습니다.
정치권과 문화계에서도 추모와 재발 방지의 다짐이 담긴 메시지가 전해졌습니다. 정의당 이정미 대표는 “우리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동물복지에 조금만 더 관심만 있었으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이라며 “현재 번식장에 있는 개들의 복지를 강화하는 한편, 더 나아가서는 판매 자체를 전면 금지하는 방향으로 입법이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은 “다수의 국가에서 번식업을 금지하고 있다”며 “동물을 사고파는 게 아닌 입양을 위한 플랫폼으로 펫숍이 전환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윤미향 무소속 의원도 메시지를 통해 “동물보호를 넘어 동물복지 정책을 논의해야 할 시점에서 이번 학대가 발생했다”며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만으론 동물학대를 막을 수 없다”며 입법부의 역할을 다하겠다고 말했습니다.
20년간 양평군 주민으로 살아온 임순례 영화감독(동물권행동 ‘카라’ 상임고문)도 “제가 살고 있던 지역에서 이런 끔찍한 죽음이 이어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점이 가장 부끄럽고 미안하다”며 “죽음의 행렬을 막기 위해서는 번식장, 경매장, 펫숍을 통한 동물 분양을 법으로 강하게 금지한 뒤, 이를 감시하는 체계를 구축하는 일”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시민들의 마음도 유명인사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서울 신당동에서 온 시민 조정림 씨는 반려견 ‘꼬뭉’이를 안고 있었습니다. 조 씨는 동그람이에 “이번 사건을 뉴스로 접한 뒤 그 끔찍함에 말을 잇지 못했다”며 꼬뭉이를 좀 더 강하게 안았습니다. 그는 “번식장과 펫숍을 금지하는 게 최선이겠지만, 현실적인 이유로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적어도 개체 수를 조절해 이렇게 개들을 함부로 죽게 내버려 두는 사회만큼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추모가 마무리된 뒤, 시민들은 준비된 국화를 강아지들을 위한 제단에 올려놓으며 고개를 숙였습니다. 제단에는 강아지들을 위한 사료와 간식, 장난감과 목줄 등이 놓여 있었습니다. 시민들은 헌화한 뒤 고개를 숙였습니다.
헌화가 마무리된 뒤 양평 주민 대표로 추도사를 읊은 최미정 씨를 다시 만났습니다. 그는 “강아지를 가족으로 여기며 사는 사람으로서 이번 사건을, 내 주변에서 접했을 때의 충격은 매우 컸다”며 “평소 동물권과 환경 문제 있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추도사를 통해 그런 일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밝혔습니다.
최 씨는 한 달 사이 지역사회에서 생긴 변화도 전했습니다. 그는 “‘동물을 학대하지 말자’, ‘사지 말고 입양하자’는 현수막이 마을 곳곳에서 발견되곤 한다”며 “그래도 조금씩은 변하고 있는 듯하고, 앞으로 많이 바뀌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갖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김성호 양평주민대책위 공동대표(한국성서대 교수)는 “다만, 이번 일은 양평 한 군데에서만 벌어진 엽기적인 사건이 아닌 만큼 전국적인 문제라고 봐야 한다”며 “정부는 번식장 영업을 허가제로 전환했다고 하며 손을 놓고 있지만, 그동안 감독을 얼마나 했는지는 의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야기를 듣던 최 씨 역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이번 사건으로 양평군 주민들은 꽤나 깊은 마음의 상처를 입은 듯했습니다. 그 마음의 상처를 달래기 위해서라도, 이번 사건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정부 당국의 노력이 더욱 필요해 보입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