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료품가격 인상 자제·금리 인하 요청
"경제정책방향 혼선, 충격 초래 우려"
시장주의를 내건 윤석열 정부가 연일 ‘가격 통제’에 나서고 있다. 서민 부담 경감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세금으로 손해를 메우는 식이어서 ‘폭탄 돌리기’에 그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 경기를 되살려야 하는 윤석열 정부의 최근 경제정책은 적극적인 시장 개입과 맞닿아 있다. “자유로운 시장이 숨 쉬는 곳은 언제나 번영과 풍요가 꽃 피었다”(대통령 취임사·지난해 5월)며 시장주의를 앞세운 것과 정반대다.
초과생산된 쌀을 정부가 의무로 사들이자는 야당 주장(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맞서 수확기 쌀 가격의 ‘관리 목표’를 제시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6일 농림축산식품부는 올해 수확기 쌀값을 80㎏당 20만 원(지난해 18만7,268원) 안팎이 되도록 선제적으로 시장격리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양곡관리법 개정안과 마찬가지로 세금을 투입해 벼 재배 농가의 소득 보전에 나서기로 한 것이다.
사실상 ‘시장 개입’이란 점을 인정하지 않으려다 보니 정책 설명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김인중 농식품부 차관은 “수확기 쌀값이 80㎏에 20만 원이 되도록 시장 관리를 하겠다는 것”이라면서도 “정부가 목표가격을 제시한 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2017년부터 2021년까지 5년간의 수확기 쌀값 평균가격은 약 19만3,000원이다. 이에 대해 농식품부 관계자는 "남는 쌀을 의무로 사들이는 야당의 양곡관리법 개정안과 일시적으로 농가의 경영안정을 위해 지원하는 정부안과는 분명 다르다"고 해명했다.
앞서 지난달 31일 정부는 전기·가스요금 2분기(4~6월) 결정을 유보했다. 요금 인상분 결정을 당분간 미룬 것으로, 공공요금 정상화를 내걸었던 당초 입장과 온도차가 크다. 은행 대출금리 인하 요구와 식료품 가격 인상 자제도 마찬가지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과 정황근 농식품부 장관은 ‘요청’이란 단어를 쓰며 완곡히 표현했으나, 해당 업계에선 ‘압박’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한국 경제가 3고(고금리·고물가·고환율)의 늪에 빠진 상황에서 정부가 경기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요인에 대해 손 놓고 있긴 어려울 수 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시장 개입은 효과를 낼 수 있는 가장 손쉬운 수단”이라며 “민생물가 부담을 줄인다는 명분까지 있어 시장가격 억누르기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관치 경제’가 계속될 경우 문제 해결 시기를 놓치고, 또 다른 부작용마저 떠안게 될 공산이 크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정부가 수확기 쌀의 가격 수준을 정해 놓는 건 관련 시장경쟁력 확보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단계적인 요금 정상화가 불가피한 전기·가스요금 역시 인상 당위성에 대한 공감대 형성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주원 실장도 “시장주의와 배치되는 정책은 이번 정부 경제정책 방향에 대한 혼선과 예상치 못한 충격을 불러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전기요금 인상 유예로 부채가 급증한 한국전력공사는 채권을 발행할 수밖에 없고, 이는 다른 회사의 자금조달 어려움으로 이어져 경기 회복을 끌어내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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