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주의 동물복지 이야기
4월1일, 경기 포천시에서 또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발생했다. 올해만 7번째다. 농장에서 사육되던 9,400마리 돼지는 살처분 예정이다. 동물원을 탈출한 얼룩말 ‘세로’는 언론을 연일 뜨겁게 달구고 시민들이 걱정을 쏟아내는데 비해, 농장에서 지내던 돼지의 살처분을 걱정하는 이는 잘 보이지 않는다.
지난 3월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는 ‘농장동물 복지에 대한 국민인식 조사’와 ‘농장동물 복지에 대한 양돈농가 인식조사’를 발간했다. 국민인식 조사는 전국 17개 시도에 거주하는 성인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설문대행:(주)마크로밀엠브레인/ 신뢰수준 95%, 표본오차 ±2.19%), 양돈농가 인식조사는 전국 양돈농가 145개소를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실시한 내용을 담고 있다. 보고서는 3월 17일 국회에서 열린 ‘농장동물 복지 향상 방안 모색을 위한 국회토론회’에서 공개됐다.
조사 결과 전체 응답자의 95.7%가 ‘공장식 축산의 개선이 필요하다’는데 동의하거나 매우 동의한다고 답했다. 다만, 긍정적으로 보기에는 이른 듯하다. 문제인식이 동물복지를 고려한 소비로 이어지지는 않고 있어서다. 정부는 2012년부터 동물복지 기준을 준수해 동물을 기르는 농장을 인증하는 ‘동물복지 축산농장 인증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6개월 동안 동물복지인증 축산물을 구매한 적이 있다는 응답은 36.4%로 낮게 나타났다. 계란을 구매할 때 ‘동물복지인증 계란’을 주로 구매한다는 응답은 7.1%에 지나지 않았다. 구매하지 않는 이유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라는 응답이 40.5%로 가장 높게 나타났고, ‘일반 축산물보다 가격이 비싸서’가 26.6%로 그 뒤를 이었다.
시행 중인 제도를 시민들이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2018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계란 사육환경 표시제는 난각에 사육환경을 번호로 표시하도록 하고 있다. 1번은 자유 방사, 2번은 축사 내 평사, 3, 4번은 둘 다 케이지 환경이지만 3은 마리 당 면적이 0.075㎡, 4번은 0.05㎡인 환경을 의미한다.
조사 결과, 응답자의 75%가 계란 사육환경 표시제에 대해 알고 있거나 들어보았다고 답했지만, 난각에 표시된 숫자가 나타내는 의미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응답자는 전체의 27.3%에 그쳤다. 국민 중 4분의 3이 제도를 모르는 상황에서 동물복지를 고려해 1,2번 달걀을 선택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동물복지축산 인증마크와 타 인증마크를 정확히 구분하지 못하는 경향도 나타났다. 동물복지 인증마크 외에도 식품안전관리인증기준인 해썹(HACCP), 무항생제 등 다른 인증마크도 동물복지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는 비율이 각 30% 이상이었다. 다른 인증마크가 붙은 제품을 구매하면서 ‘동물복지인증제품’을 구매한다고 생각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정부의 홍보가 부족하다고 지적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한편 양돈농가의 동물복지 인식은 2021년 조사보다 향상된 것으로 나타났다. 농장동물의 복지에 책임을 가져야 할 주체가 ‘생산자’라는 응답이 87.6%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조사에 응한 농가 중 54.5%는 향후 동물복지축산농장으로 전환할 의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개선하고 싶은 농장 환경을 묻는 질문에는 ‘사육밀도 개선’, ‘임신돈 군사사육’(여러 개체를 한 방에 넣고 무리 지어 관리하는 사육 방식), ‘바닥재 제공’ 등 동물복지를 개선하고 싶다는 응답이 전년 대비 증가했다.
현재 돼지의 경우, 동물복지축산 인증을 받은 농가는 전국에 18곳으로 전체 농가의 0.3%에 불과하다. 토론회에 참석한 축산업계 관계자들은 농가가 막대한 비용을 들여 동물복지축산농장으로 전환해도 수익으로 이어지기 힘든 점을 토로했다. 기존 농장이 동물복지 인증을 받기 위해서는 초기 투자비가 많이 들고, 공사 중에는 돼지를 기를 수 없어 수입이 없어지는 것을 감안해야 하는데도 시장 형성이 되지 않아 제 값을 받기 어렵다는 것이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87.3%가 향후 동물복지인증 축산물을 구매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지만, 인증 축산물에 추가로 부담 가능한 비용은 평균 17.04%로 나타났다. 돼지고기의 경우 동물복지인증과 비인증 축산물의 가격 차이가 2배 이상 나는 현실에 비해 충분하지 않은 금액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동물을 위해 선뜻 지갑을 열고 돈을 더 지불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어렵다. 특히 요즘처럼 물가가 치솟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두 번 먹을 것을 한 번 먹고, 대신 먹을 때는 조금이라도 동물을 배려한 환경에서 살게 한 동물을 제값을 주고 소비하는 문화가 정착되지 않는다면 국민들의 공장식 축산에 대한 우려는 의미가 없다. 반복되는 동물 전염병으로 인한 살처분에도 세금이 쓰인다. 모든 동물 전염병의 원인이 밀집 사육은 아니지만, 질병 발생 시 전파가 빠르고 피해를 입는 동물의 숫자가 커지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농장동물의 복지는 흔히 축산업계에서는 '규제'로, 시민 입장에서는 '불편한 진실'로 받아들여진다. "어차피 잡아먹을 동물인데 복지 운운하는 것은 위선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농장에서 식용으로 길러지는 동물도 개나 말과 마찬가지로 살기 위해서는 종의 특성에 따라 필요한 것이 있고, 좋고 나쁨을 경험할 수 있다. 일상적으로 갈증에 시달려야 하는 삶과 물을 마시고 싶을 때 충분히 마실 수 있는 삶의 질은 분명히 다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해 12월 동물보호법을 동물복지법으로 개편하는 등 동물복지를 강화하겠다는 방안을 내놓았지만, 대부분의 내용이 반려동물에 집중되어 있고 농장동물의 복지 개선 방안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일반 농장이 동물복지축산농장으로 전환하기 위한 유인책을 마련하는 동시에 일반 농장에 적용되는 보편적인 동물복지 기준도 마련해야 한다. 시민들도 세로의 외로움을 걱정하는 만큼 농장동물에게도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면 많은 변화가 생길 것이다. 정부와 생산자, 소비자 모두가 조금씩 양보하고 조금 더 협력하면 돼지에게도 살 만한 삶을 살게 하는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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