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범 9명도 일부 혐의 인정하거나 전면 부인
피해자 측 "사회 재난...엄중 처벌해달라" 촉구
인천 미추홀구 일대에 소규모 아파트와 빌라 2,700여 채를 보유하면서, 120억 원대 전세보증금을 가로챈 혐의로 기소된 건축업자가 첫 재판에서 전세사기 혐의를 부인했다.
사기와 부동산 실명법 위반, 공인중개사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된 A(62)씨는 5일 오전 인천지법 형사1단독 오기두 판사 심리로 열린 첫 공판에서 사기와 공인중개사법 위반 혐의를 부인했다.
다만 A씨 변호인은 부동산 실명법 위반과 관련해 "사실관계에 대해선 대체적으로 인정한다"면서도 "법리상 사기 구성 요건이 없고 검찰의 법 적용도 무리해 보인다"고 말했다.
A씨와 함께 기소된 공범 9명은 이날 법정에서 "명의 신탁 부분 인정한다"며 혐의를 일부 인정하면서도 핵심 혐의에 대해서는 "공모한 적 없다"고 전면 부인했다.
첫 재판을 방청하기 위해 법정에 온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A씨와 일부 공범들이 혐의를 부인하자 탄식하거나 눈물을 터뜨렸다. 오 판사는 이날 피해자 단체인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 대책위원회(대책위) 측에 의견 개진 시간을 줬다.
안상미 대책위원장은 "2,864 피해 세대에 2,300억 원 이상 보증금이 걸려 있다"며 "계속 경매가 진행되면서 (피해자들은) 길거리로 나앉고 있고 신변을 비관해 극단적 선택을 한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피고인들은 변제를 하겠다고 하지만 현실성이 전혀 없고 시간만 벌려고 하고 있다"며 "엄중하게 처벌하고 재산을 환수해서 살 수 있게 해달라"고 덧붙였다.
대책위는 재판에 앞서 이날 오전 인천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피고인들은 지금도 몰랐다며 변명을 늘어놓거나 중형을 피하기 위해 실현 가능성이 없는 변제 계획만을 반복적으로 얘기하고 있다"면서 엄중한 처벌을 촉구했다.
A씨 등은 지난해 1~7월 A씨가 소유한 주택 세입자 161명으로부터 전세 보증금 7,000만~1억2,000만 원씩 총 125억 원을 받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A씨는 자신이 소유한 주택 430채를 공인중개사 C(44)씨 등 3명의 명의로 소유권 보존 등기를 해 부동산실명법을 위반한 혐의 등도 받고 있다.
A씨는 2009년부터 공인중개사와 중개보조원 등 다른 사람 명의를 빌려 토지를 매입하고, 자신이 운영하는 종합건설업체를 통해 주택을 직접 건축했다. 건축 비용은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이나 준공 대출금으로, 대출 이자와 직원 급여 등 사업 비용은 임차인들로부터 받은 전세 보증금으로 충당했다. A씨는 이 같은 방식으로 미추홀구 일대에 총 2,700여 채의 주택을 보유, '건축왕'으로 불리게 됐다.
A씨는 임대사업을 위해 공인중개사를 고용하고, 이들 명의로 공인중개사 사무소를 운영하면서 자신이 소유한 주택 중개를 전담하게 했다. 공인중개사들은 A씨에게 고용된 사실과 주택 실소유자가 A씨인 사실을 숨기고 청년, 신혼부부 등 피해자들에게 전세계약을 체결하도록 한 뒤 급여뿐만 아니라 계약 체결에 따른 성과급까지 지급받았다.
대출금과 전세 보증금으로 대출 이자와 직원 급여, 보증금 등을 돌려막기하던 A씨가 늘어나는 이자를 감당하지 못해 지난해 1월부터 다수의 주택이 경매에 넘어갔으나 공인중개사 등은 이 같은 사정을 숨기고 피해자들과 전세계약을 체결했다. 공인중개사들은 보증금을 대신 갚아 준다는 이행각서를 작성해 임차인들을 안심시켰다. 경매가 시작된 주택 수는 지난 2월 기준 총 690가구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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