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중 교역' 재개 기대감에 들뜬 중국 단둥
대북 무역상들 '디데이 5월 20일' 한목소리
"떠났던 상인들, 이미 돌아오고 있다"
발 묶인 북한 노동자 "곧 고향 돌아갈 듯"
40개월 교역 중단에 단둥 물류센터는 '썰렁'
"조선(북한)도 더 이상은 버티기 어렵지 않겠습니까? 이번에는 열릴 것이라고 합디다."
지난달 30일 북한과 국경을 맞댄 중국 랴오닝성 단둥에서 만난 북한 화교 출신 무역상의 얘기다. 그는 대북 교역 일을 곧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에 한껏 들떠 있었다. "대북 무역으로 먹고살았는데 3년 동안 일이 없어 힘들었다. 곧 다시 바빠질 것 같다"고도 했다.
북한과 중국의 국경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되기 시작한 2020년 1월 이후 약 40개월째 철통같이 닫혀 있다. 한국일보가 지난달 30, 31일 둘러본 단둥에선 "국경이 곧 열릴 것"이란 소식이 이곳저곳에서 쏟아지고 있었다. '5월 20일'이라는 구체적 날짜까지 떠돌았다.
단둥은 북중 간 최대 교역 거점이다. 중국에서 압록강을 건너면 평안북도 신의주에 닿는다. 2019년 북중 교역액은 27억8,900만 달러(중국 해관총서)였는데, 이 중 약 70%의 교역이 단둥에서 이뤄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중 무역의 상당 규모가 통계에 잡히지 않는 ‘밀무역’ 형태라는 점을 감안하면 북중 무역에서 단둥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민생경제 악화보다 코로나19 유입을 두려워한 김정은 정권은 단둥 교역을 포기하는 초강수를 뒀다. 지난해 9월 이후 단둥-신의주 간 화물열차 운행을 재개해 긴급 물자를 들이고 있지만, 육로 교역은 아직이다. 가장 큰 육로 교역을 재개하지 않으면 더 이상 버티기 어려울 것이라는 게 중국의 대북 소식통들의 공통된 전망이다. 단둥이 다시 들썩이는 건 북한의 사정이 임계치에 이르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단둥-평양 직송' 간판만...교역 끊어진 단둥
단둥에서 만난 대북 무역상인들의 상당수는 한목소리로 '5월 20일'을 말했다. 20년 넘게 대북 무역업을 한다는 단둥의 소식통은 "5월 20일을 목표로 북중이 단둥-신의주 간 육로 재개방을 준비하고 있다"며 "이 소식이 퍼지면서 단둥을 떠났던 무역업자들이 하나 둘 돌아오는 것"이라고 전했다. 또 다른 단둥 주민은 "식량 사정도 안 좋고 물자도 제대로 못 들어가니 북한이 국경을 조만간 열지 않고는 힘들 것"이라고 했다. 다만 왜 5월 20일인가에 대해 명쾌한 설명을 내놓는 사람은 없었다.
교역 재개에 대한 기대는 차올랐지만, 본격적인 활기는 아직이었다. 31일 단둥 해관(세관)과 대북 물자 보관소 격인 화위안 물류센터는 평일 낮인데도 적막했다. 노동자도, 화물 트럭도 거의 없었다. 외곽 고속도로에 단둥 시내로 이어지는 도로변에는 ‘신의주 직송’, ‘단둥-평양 운송, 매일 봉사합니다’라는 간판이 걸린 물류회사 수십 곳이 줄지어 있었지만, 영업 중인 업체는 드물었다.
신의주가 시원하게 보이는 중조(중국과 북한)우의교와 압록강단교는 단둥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들의 필수 코스다. 이 지역도 썰렁했다. 국경 봉쇄 전에는 하루 최대 20만 명의 관광객이 유람선을 타고 신의주를 오갔지만, 요즘은 하루 두 차례만 유람선을 운행한다.
압록강단교 맞은편 거리엔 ‘조선(북한) 물품 판매점’, ‘능라도’ , ’고려관’ 같은 북한 식당과 기념품 가게들이 즐비했지만, 가게 안은 텅 비어 있었다. “대동강 맥주 있나요”라고 묻자, 상점 주인은 “북한 물건이 들어오지 않는다”고 했다.
"반미 결집에 끼지 못하는 김정은, 초조할 것"
국경 개방을 가장 고대하는 건 국경 봉쇄로 중국에서 발이 묶인 북한 노동자들이었다. 이들 사이에선 "곧 고향에 돌아갈 수 있다"는 기대감이 차올라 있었다. 지난달 29일 중국 랴오닝성 성도인 선양에서 만난 북한 노동자는 “3년 넘게 고향인 평양에 가지 못했는데, 조만간 드디어 돌아갈 수 있을 것 같다”며 기뻐했다. 중국 전역에는 5만 ~7만여 명의 북한 노동자가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베이징 외교가에서도 북한 국경 개방이 머지않았다고 본다. 무엇보다 김정은 정권이 중국과의 외교를 정상화할 불가피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제로 코로나' 3년간 정상외교를 중단했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해 말부터 동남아시아와 유럽을 무대로 세 결집을 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나 반미연대를 재확인했다.
중국의 혈맹을 자처하는 북한은 3년 넘게 중국과 기본적인 인적 교류마저 끊은 상태다. 베이징의 외교 소식통은 "북한만 끼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라며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매우 초조한 심정일 것”이라고 했다. 지난 2년간 평양에 부임하지 못하고 있었던 왕야쥔 주북한 중국 대사가 지난달 말 북한에 들어간 것도 북중 교류의 40개월 단절이 끝나가는 신호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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