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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 부국들 또 '원유 인질극'..."기름값 100달러 가나" 불길한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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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 부국들 또 '원유 인질극'..."기름값 100달러 가나" 불길한 전망

입력
2023.04.03 19:5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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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 주도 OPEC+, 116만 배럴 기습 감산
유가 하락 조짐에 반년 만에 또 감산 조치
"인플레이션에 기름 붓나" 세계경제 '촉각'
옛 동맹 사우디의 배신... 미국 '반발'

압둘아지즈 빈 살만(가운데) 사우디아라비아 에너지부 장관이 지난해 10월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OPEC+ 월례 장관급 회의 직후 기자회견을 하며 손을 들고 있다. 이날 참가국들은 하루 원유 생산량을 200만 배럴 줄이기로 합의했다. AFP 연합뉴스

압둘아지즈 빈 살만(가운데) 사우디아라비아 에너지부 장관이 지난해 10월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OPEC+ 월례 장관급 회의 직후 기자회견을 하며 손을 들고 있다. 이날 참가국들은 하루 원유 생산량을 200만 배럴 줄이기로 합의했다. AFP 연합뉴스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주요 산유국들이 하루 원유 생산량을 120만 배럴 가까이 줄이겠다고 기습 발표했다. 최근 경기침체 우려로 국제유가가 하락 곡선을 그리자 유가 방어를 위해 반년 만에 추가 감산이란 강수를 둔 것이다. 하루 만에 국제유가가 8% 급등했고, 인플레이션을 극도로 경계하는 미국은 반발했다. 유가가 다시 치솟아 최근 잡혀 가던 물가 상승세에 기름을 부을 수 있다는 우려가 퍼지고 있다.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는 이번 감산으로 '탈미국 기조'를 보다 분명히 했다. 미국은 러시아발 에너지 인플레이션을 잡고 러시아의 전쟁 자금을 말려야 한다며 감산을 저지하려 했지만, 사우디는 또다시 러시아 편에 섰다.

침체 공포에 국제유가 하락하자 반년 새 또 '감산'

2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석유수출기구(OPEC) 회원국과 러시아 등 비회원국들의 협의체인 오펙플러스(OPEC+) 회원국들은 다음 달부터 하루 116만 배럴 규모의 자발적 추가 감산을 예고했다.

오펙플러스의 맹주 사우디가 원유 생산량을 하루 50만 배럴 줄이겠다고 기습 발표한 데 이어 이라크와 아랍에미리트, 쿠웨이트 등도 동참했다. 이달부터 3개월간 50만 배럴을 감산키로 했던 러시아도 감산 기한을 올해 말까지로 연장했다. 지난해 11월부터 하루 200만 배럴의 감산 기조를 유지 중인 오펙플러스의 감산 규모는 하루 366만 배럴에 달하게 됐다.

오펙플러스가 재차 감산을 결정한 건 '불안한' 국제유가를 떠받치기 위해서다. 국제유가는 지난달 15일 1년 4개월 만에 배럴당 70달러 선이 무너지는 등 약세를 보였다. 이는 "미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에서 시작해 유럽까지 번진 은행 위기가 전체 금융위기로 번져 경기침체를 부추기면 원유 수요가 꺾일 수 있다"는 전망이 시장에 반영된 결과다. 영국 에너지 어스팩트의 암리타 센 연구원은 "오펙플러스의 감산은 최근 은행 위기로 인한 '수요 충격'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조치"라고 진단했다.

이번 감산 발표는 3일 오펙플러스 장관급 감시위원회를 앞두고 일요일에 기습적으로 이뤄졌다. 외신들은 사우디와 러시아가 주도한 조치라고 본다. 사우디는 대규모 경제발전 프로젝트인 '비전 2030' 추진을 위해 유가를 띄워 자금을 끌어모아야 한다. 사우디국립은행이 최대주주였던 크레디트 스위스(CS)의 몰락으로 수조 원대 투자금을 날리면서 더 조급해졌다. 서방 제재로 사면초가인 러시아 역시 원유 수익이 절실하다. WSJ는 "국내 프로젝트에 자금을 대야 하는 사우디와 원유 매장량 보충이 급한 러시아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것"이라고 전했다.

지난해 7월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한 조 바이든(왼쪽) 미국 대통령이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와 회담을 하는 모습. AFP 연합뉴스

지난해 7월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한 조 바이든(왼쪽) 미국 대통령이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와 회담을 하는 모습. AFP 연합뉴스


미국 "잘못된 결정" 반발... 내년 유가 100달러 전망도

미국은 반발했다.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에너지 가격이 급등한 이후 미국은 산유국들에 증산을 요구해 왔다. 백악관은 "시장 불확실성을 감안할 때 감산은 바람직하지 않은 결정"이라고 논평했다. 미국은 전략비축유 방출로 급한 불을 끄려 할 것으로 보인다.

유가가 반등해 에너지 가격 상승 압력이 커지면 가뜩이나 세계 경제를 압박 중인 인플레이션이 장기화될 수 있다. 미국 등 주요국 중앙은행들의 금리 인상 레이스도 계속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감산 소식에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5월물)은 장중 8% 급등하며 배럴당 81달러를 웃돌았고, 브렌트유(6월물) 역시 8% 오르며 86달러까지 치솟았다. 골드만삭스는 내년 말 브렌트유가 100달러를 찍을 것으로 보고 있다.

사우디와 미국의 관계 역시 더 악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감산 조치는 미국의 오랜 안보·경제 동맹이자 중동의 대표적 친미 국가였던 사우디가 러시아, 중국과의 밀착을 가속화하겠다는 신호로 해석됐다. 사우디는 미국에서 독립해 다극 외교를 추구하려 하고 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지난해 7월 원유 증산 요청을 위해 자존심을 꺾고 사우디를 방문했지만, 석 달 만에 오펙플러스의 '200만 배럴 감산'이란 뒤통수를 맞았다. 이번 감산 조치로 미국 물가가 다시 뛰어오르면 대선 레이스 개막을 앞두고 바이든 대통령의 리더십에 상처가 날 수밖에 없다.

조아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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