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 고수'를 찾아서
지난달, 서울 성산동 우리동생동물병원에는 아주 특별한 고양이 손님 한 마리가 한 달간 장기 투숙했습니다. ‘비욘드’(10)라는 이름의 삼색 후지마비 고양이였습니다. 비욘드가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장애가 있어서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보다는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왔음에도 건강 상태가 지극히 양호하다는 점이 더 큰 이유였습니다.
비욘드를 잠시 돌봤던 김재윤 우리동생 원장은 “처음 보자마자 ‘보호자가 잘 돌봤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김 원장에 따르면 보통 후지마비 고양이는 배변, 배뇨가 원활하지 않아 청결에 조금씩은 문제가 있다고 합니다. 뒷다리 쪽에 있는 배변, 배뇨 기관의 괄약근을 조절하는 신경도 마비되면 소변과 대변을 조금씩 흘리는 경우도 있다고 하네요. 그러나 비욘드는 그런 상태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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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서울 성산동 우리동생동물병원에서 1개월 간 머물렀던 고양이 '비욘드'의 모습. 우리동생동물병원 제공
비욘드의 보호자 양선우 씨는 업무상 출장 때문에 집을 비울 수밖에 없는 사정상 우리동생에 비욘드를 맡겼다고 밝혔습니다. 평상시에는 비욘드의 돌봄을 함께 책임지는 직장 동료가 있어서 이런 ‘장기 투숙’을 맡길 필요가 없지만, 이번에는 동료와 동반 출장을 떠나게 되면서 하는 수없이 우리동생에 맡겼다고 합니다. 그는 김 원장의 칭찬에 “사실 잘 돌봐서 비욘드가 잘 지내온 건 아닌 것 같다”며 손사래를 쳤습니다. 다만, 선우 씨는 그의 동료들과 함께 마음으로 비욘드를 돌본 덕인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길에서 발견돼 걷지도 못하는 아깽이..
“우리, 함께 키워보자”
비욘드는 10년 전인 2013년, 서울 마포구의 한 길거리에서 발견됐습니다. 당시 선우 씨는 한 시민단체가 운영하던 방과 후 공부방에서 비욘드를 만났습니다. ‘길고양이 돌보기’라는 교육 프로그램을 현장에서 실시하던 아이들이 한 길고양이를 발견했습니다. 아직 어린 아깽이가 마비된 뒷다리를 끌고 다니며 앞다리로만 걷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결국 혼자서 길생활을 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공부방 측이 고양이를 구조해 보호하고 있었습니다.
이웃 시민단체에서 일하던 선우 씨는 잠시 공부방을 들렀다가 비욘드와 마주하게 됐습니다. 당시 선우 씨는 비욘드를 보고 입양하고 싶다는 마음은 들었지만, 선뜻 결정을 내리기 어려웠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장애가 있는 동물을, 기존에 반려생활 경험이 없던 선우 씨가 덜컥 데려가는 일은 쉽게 결정하긴 어려웠을 겁니다. 그런데, 그런 선우 씨가 비욘드를 입양하게 할 결심을 내리게 해준 건 바로 그가 다니던 시민단체 동료 활동가들의 말 한마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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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아깽이 시절의 비욘드의 모습. 후지마비인 상태로 발견됐지만, 사람의 무릎 위로 올라가려고 애쓰는 천상 개냥이의 모습이었다. 비욘드 보호자 양선우 씨 제공
한 사람이 이 아이를 온전히 책임지기는 힘들 것 같으니, 우리가 다 같이 키워봅시다. 걱정 말고 입양해 봐요.
이들의 지지와 연대 덕에 선우 씨는 입양의 결심을 굳혔습니다. 후지마비로 태어났지만, 장애를 뛰어넘는 묘생을 살아보자는 의미로 비욘드(Beyond)라는 이름도 지어주게 됐다고 합니다.
공동체가 함께 업어 키우기로 다짐한 만큼 비욘드는 선우 씨와 함께 사무실에 동반 출근하게 됐습니다. 아예 단체의 마스코트로 임명돼 구성원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죠. 이런 비욘드의 모습을 담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페이지까지 만들 정도였습니다. 사랑을 받은 덕분인지 비욘드의 건강도 큰 문제를 보이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오히려 비욘드를 직접 만나본 사람들은 ‘생각보다 빨리 걷는다’며 놀랄 정도였죠. 그래서 그런지 선우 씨는 입양 초기에 조금 욕심을 부렸다고 해요.
비욘드가 네 다리로 걷는 모습이 보고 싶었어요. 침 치료를 하는 병원을 수소문해서 찾아가 봤고, 비욘드가 조금씩 네 다리로 서는 데까지 성공하기도 했어요. 결국 치료가 뜻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낙담하지는 않았어요. 지금까지 잘 살아주고 있으니까요.
후지마비 고양이는 불행? 조금만 배려해 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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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욘드는 입양 이후 선우 씨와 함께 동반 출퇴근을 하며 직장 동료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다. 비욘드 보호자 양선우 씨 제공
사실 뒷다리를 쓰지 못하는 고양이라고 하면 걱정부터 앞서곤 합니다. ‘오래 살지 못하지 않을까?’, ‘다른 고양이들처럼 걷지 못하는데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죠. 그러나 김 원장은 그런 의문에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그는 “다양한 후지마비 원인 중 심혈관계 문제로 인한 혈액순환이 원활하지 않아 후지마비가 온다면 심장이 좋지 않다는 신호이니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다”면서도 “그런 사례가 아니라면 후지마비와 수명은 별 상관이 없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선우 씨 역시 배변∙배뇨 외에 비욘드의 삶에서 큰 문제는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비욘드의 경우에는 스스로 대소변을 볼 수 없어서, 보호자가 도움의 손길을 줘야만 가능합니다. 동반출근을 할 때에는 ‘공동육묘’를 자처한 활동가들이 십시일반 나눠서 함께 괄약근을 마사지해 주며 배변을 도왔습니다. 동반출근을 하지 않을 때에도 언제든 비욘드를 봐줄 또 다른 집사들이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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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마비 고양이인 비욘드는 배변과 배뇨를 위해 매번 사람의 손을 거쳐야 한다. 이는 선우 씨와 함께 직장 동료들이 함께 했다. 비욘드 보호자 양선우 씨 제공
오히려 배변보다 더 어려운 건 배뇨입니다. 횟수가 더 잦기 때문이죠. 실제로 비욘드는 배뇨를 제때 하지 못해 방광염으로 혈뇨를 보는 일도 있었다고 해요. 그러나 최근에는 하루에 서너 차례 방광을 압박해 배변을 보도록 도와주는 타이밍을 찾아 이마저도 발병이 뜸해졌다고 하네요. 김 원장은 “시간이 지나다 보면 보호자도 고양이의 적절한 배뇨 시점을 찾을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후지마비 고양이와 함께 살아가기 위해 신경 써야 할 것은 바로 ‘바닥’입니다. 후지마비 고양이는 뒷다리를 끌고 다닐 수밖에 없습니다. 바닥과 피부의 마찰이 심할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김 원장은 “바닥과 피부의 마찰이 심해지면 상처가 많을 수밖에 없다”며 “이를 위해서는 바닥 관리를 잘 해주고, 바닥이 닿는 부위에 보호대를 대 주면 좋다”고 말했습니다.
선우 씨와 동료들 역시 비욘드의 피부 관리를 위해 각고의 노력을 다했습니다. 동반출근할 비욘드를 위해 사무실을 고를 때 장판이 깔린 곳을 찾았고 당시에는 생소했던 고양이 휠체어를 구해보기도 했습니다. 비록 휠체어는 비욘드가 적응하지 못해 사용하지 못했지만, 비욘드의 삶의 질을 개선해 주기 위한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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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 씨는 이미 한 차례 동화로 출간한 비욘드의 후속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비욘드 보호자 양선우 씨 제공
후지마비 고양이 키우는 게 쉽지 않다고 해서 각오는 했지만, 정말 처음에는 힘들었어요. 방광염 걸릴 때는 ‘내가 잘못 키워서 이렇게 됐나’ 싶어서 눈물이 핑 돌 정도였어요. 지금은 건강하게 잘 지내줘서 참 고마워요. 이제 노묘가 되었으니, 비욘드가 어떤 걸 먹어야 건강하게 지낼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어요.
사실 비욘드 처음 입양했을 때, 동화책을 낸 적이 있어요. 그 동화책의 후속작을 쓰고 싶어요. ‘그 후로 오래오래 잘 살았답니다’라는 내용으로요.
선우 씨의 생각이 곧 현실이 되기를 바랍니다. 후지마비 고양이와 묘연을 느끼면서도 입양을 주저하는 예비 집사들에게 큰 도움이 줄 이야기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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