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연구 권위자' 하버드대 교수의 이중생활
화석연료 회사 이사 겸직하며 "환경 보호해야"
기부금 급급한 대학들, 공허한 친환경 구호
#. "2050년까지 우리 대학의 화석연료 사용을 중단하겠다." 하버드대는 2020년 미국 대학 최초로 이 같은 기후 공약을 내놓았다. 그러나 2년여 만에 체면을 구겼다. 공약을 만든 교수가 화석연료 기업의 사외이사를 맡아 기업 이미지 세탁에 일조한 것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 교수가 하버드대 간판을 내걸고 기후 운동에 앞장섰던 터라 충격이 더 컸다.
이는 영국 가디언이 1일(현지시간) 보도한 대학의 '그린 워싱'(환경적인 척하는 위장 환경주의) 사례다. 대외적으로는 기후 변화 대응을 주장하면서 뒤로는 환경 파괴 기업들로부터 기부금을 받는 등 이익을 챙기는 미국 학계의 이중성이 난타당하고 있다.
'기후 아이콘' 하버드대 교수의 이중생활
조디 프리먼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는 미국 글로벌 석유 기업 ‘코노코필립스’에서 급여를 받는 사외이사로 재직 중인 것이 밝혀져 사퇴 압박을 받고 있다. 이 회사는 알래스카 공공 토지에 매장된 석유를 채굴하는 ‘윌로우 프로젝트’를 추진 중으로,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 최근 승인을 따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이 프로젝트를 두고 "30년 동안 최소 2억6,300만 톤의 온실가스를 발생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알래스카의 야생동물 서식지도 파괴될 위기에 놓였다.
프리먼 교수는 환경법 권위자로 미국 기후운동의 토대를 마련했다. 2006년 기후 정책 분석을 위해 하버드대 싱크탱크인 ‘환경·에너지 법률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버락 오바마 정부에서 기후변화 부문 고문을 지냈다. 현재는 ‘지속가능성을 위한 하버드 회장위원회’의 공동의장이다. 가디언은 “프리먼 교수는 ‘산업계 넷 제로(Net Zero·탄소 순 배출량 제로)’ 연구에 들어갈 기후 보조금까지 챙겼다”고 전했다.
프리먼 교수는 "기업에 들어가 화석연료 기업을 개혁하려 했다"고 해명했으나 먹히지 않았다. 하버드대 학생들은 성명을 내 “코노코필립스는 화석연료 기업 중에서도 기후 정책에 제일 뒤떨어져 있다. 프리먼의 개혁이 실패했다는 뜻”이라며 사외이사나 교수직 중 하나를 반납하라고 요구했다. 화석연료 관련 국제기구인 에너지정책연구소의 이타이 바르디 연구원은 “기후정책 권위자를 이사직에 앉혀 환경 파괴를 합법·친환경적인 작업으로 포장하는 수법”이라고 꼬집었다.
화석연료 회사, 미 명문대에 천문학적 기부금
가디언은 '그린 워싱’이 이름난 미국 대학들에 만연하다고 지적했다.
가장 큰 이유는 화석연료 회사로부터 나오는 막대한 기부금이다. 싱크탱크 ‘데이터 포 프로그레스(Data for Progress)’에 따르면, 화석연료 회사 6곳이 2010년부터 10년간 미국 27개 대학에 지원한 연구 자금은 7억 달러(약 9,170억 원)에 달한다. 가장 많은 지원을 받은 상위 5개 학교엔 버클리(약 2,017억 원), 스탠퍼드(약 741억 원), 매사추세츠 공과대학(약 530억 원) 등 기후 연구를 강조한 이른바 명문대들이 포함됐다. 하버드대도 약 262억 원을 지원받아 10위 안에 들었다.
더 큰 문제는 기업들이 기부금을 앞세워 대학의 환경 분야 연구에 개입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데이터 포 프로그레스의 그레이스 애드콕스 애널리스트는 “업계가 선호하는 방식으로 기후 정책에 손을 댈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미국 보스턴글로브 보도에 따르면, 대형 천연가스 기업 ‘내셔널 그리드’는 미 매사추세츠 공과대학의 수소연료에 대한 학술 논문이 발표되기 전에 내용을 입수한 뒤 로비스트를 동원해 수정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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