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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은숙이 선사하는 낯선 즐거움… 통영에선 '명곡의 씨앗'이 자란다

입력
2023.04.03 10:00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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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20여 년간 공연 기획과 음악에 대한 글쓰기를 해 온 이지영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이 클래식 음악 무대 옆에서의 경험과 무대 밑에서 느꼈던 감정을 독자 여러분에게 친구처럼 편안하게 전합니다.

진은숙(오른쪽) 통영국제음악제 예술감독과 김소현 통영국제음악재단 예술사업본부장이 통영국제음악제 개막일인 지난달 31일 기자간담회에서 올해 프로그램을 설명하고 있다. 통영국제음악제 제공

진은숙(오른쪽) 통영국제음악제 예술감독과 김소현 통영국제음악재단 예술사업본부장이 통영국제음악제 개막일인 지난달 31일 기자간담회에서 올해 프로그램을 설명하고 있다. 통영국제음악제 제공

음악이 탄생하고 그 음악이 생명력을 더해 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일은 대단히 흥미롭다. 마치 아직은 알려지지 않은 영재를 발견하고 그들이 음악가로서 단단해지는 과정을 지켜보며 마침내 세상이 그들을 알아보게 될 때를 마주하는 것과 비슷한 설렘과 귀 기울임이 있다.

어느새 통영은 그 두 가지 설렘을 모두 충족시키는 도시가 됐다. 올해로 21주년을 맞은 통영국제음악제는 작곡가들의 초연작을 품어내며 음악가들이 찾고 싶은 축제로 자리 잡았다. 또 통영국제음악재단이 주관해 올해로 20주년을 맞는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는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신인 음악가들을 찾아내는 전초기지가 됐다. 지금까지 통영을 찾은 음악가들과 작품 목록이 이를 증명하고 첼리스트 한재민, 바이올리니스트 배원희, 피아니스트 임윤찬 등의 이름이 콩쿠르의 위상을 말해준다.

그런데 클래식 음악을 즐겨 듣는 사람도 '새로운 인물'은 환영하지만 '새로운 작품' 감상은 꺼려진다. 당신 잘못이 아니다. '음악의 아버지' 바흐도 당대에 인정받는 작곡가가 아니었다. 사후 100년 이상 독일에서조차 잊혔던 바흐는 멘델스존이 그의 작품을 무대에 올리면서 마침내 재조명받게 됐다. 연주자는 현재를 살지만 작곡가는 왜 미래에 평가받게 될까.

진은숙 통영국제음악제 예술감독. 통영국제음악재단 제공

진은숙 통영국제음악제 예술감독. 통영국제음악재단 제공

지난해부터 통영국제음악제 예술감독은 작곡가 진은숙이 맡고 있다. 진은숙은 20세기 후반의 가장 진보적이고 영향력 있는 음악가 중 한 사람인 죄르지 리게티(1923-2006)의 제자다. 작곡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그라베마이어상(2004년), 아놀트 쇤베르크상(2005년), 레오니 소닝 음악상(2021년) 등을 받고 지금까지 베를린 필하모닉, 뮌헨 필하모닉, BBC 심포니, 시카고 심포니, LA필, 런던 필하모닉, 뉴욕 필하모닉 등이 작품을 위촉하고 연주하는 21세기를 대표하는 작곡가다. 루체른, 베르겐 등 주요 페스티벌 상주 작곡가이자 예술감독으로, 올해는 프랑스의 대표적 현대음악축제인 프레장스 페스티벌의 '작곡가의 초상 시리즈' 주인공이 됐다.

최근작인 바이올린 협주곡 2번은 지난해 1월 사이먼 래틀이 이끄는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바이올리니스트 레오니다스 카바코스 연주로 런던에서 초연한 후 보스턴, 뉴욕(카네기홀), 라이프치히 등을 거쳐 9일 통영국제음악제에서 만나게 된다. 진은숙의 활동은 어쩌면 스승을 뛰어넘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낯선 이름, 낯선 작품이다.

"예술작품의 가치는 작품을 만든 사람이 죽고 난 후, 그러니까 작품에 미쳐 온 작곡가의 인간관계나 권력, 유행 등 영향력이 없어진 후에야 온전히 평가하게 돼요. 생전 활동이 많았어도 사후 꾸준히 연주되는 작품은 손가락에 꼽을 만큼 적죠. 시간의 필터링을 거쳐야 하는 거죠."

올해 통영국제음악제의 상주음악가인 바이올리니스트 레오니다스 카바코스가 지난달 31일 개막 연주회에서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와 협연하고 있다. 통영국제음악제 제공

올해 통영국제음악제의 상주음악가인 바이올리니스트 레오니다스 카바코스가 지난달 31일 개막 연주회에서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와 협연하고 있다. 통영국제음악제 제공

절대 평가를 마친 작곡가의 음악과 생애는 누구나 공감하며 위대함을 칭송하게 된다. 홀대받았던 바흐의 생애를 안타까워하고 그의 작품을 재평가하게 만든 멘델스존의 심미안과, 그가 서양음악사에 미친 영향, 헌신적인 인생을 되짚어보는 일은 감동적이다. 그런데 동시대를 살고 있는 작곡가의 이야기와 작품을 들으며 그들의 고민에 동참하는 일에는 이색적인 즐거움이 있다. 아직 시대의 평가를 받지 못한 불완전한 상태의 작품, 작곡가의 고민과 낯선 소리를 대면하면서 우리는 먼 미래에 또 다른 과거가 될 현재를 어떤 방식으로 수용하며 살아가야 하는지 질문을 받게 된다. 이 질문에 답을 찾아가는 동안 우리는 슈베르트의 친구들이 될 수 있고, 스트라빈스키를 후원한 샤넬이나 쇼스타코비치를 죽음의 문턱까지 내몰았던 즈다노프, 차이콥스키의 죽음을 방조한 동창이 될 수도 있다.

연주자들은 좋은 연주를 통해 과거 명작의 아름다움을 전해주기도 하지만 좋은 연주를 통해 현재의 악보를 작품으로 만들어내기도 한다. 진은숙의 피아노, 첼로, 생황 협주곡은 정명훈이 지휘하는 서울시향의 연주로 도이치그라모폰을 통해 앨범으로 발매됐다. 피아노 협주곡 협연자였던 김선욱은 2021년 베를린 필하모닉 데뷔 무대에서도 진은숙의 협주곡을 연주해 이 작품의 연주 수준을 크게 높였다는 평가다. 생황 협주곡은 악기의 재발견이었다. 모차르트에게 안톤 슈타틀러가 있어 그 유명한 클라리넷 협주곡이 나왔듯이 진은숙에게는 생황 연주자 우웨이가 있었다. 우웨이는 5일 진은숙의 제자이자 현재 뜨거운 작곡가인 신동훈의 '생황, 아코디언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2인극' 아시아 초연 무대를 통영에서 선보인다.

100년 후 세계음악사는 어떻게 달라져 있을까. 작품과 작곡가, 연주자가 인정받는 시기는 각기 다르지만 새로운 작품과 예술가를 잉태하는 일은 통영에서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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