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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 위기 만든 정치권

입력
2023.03.31 17:0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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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31일 오전 한 KT 주주가 서울 서초구 KT연구개발센터에서 열린 제41기 주주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걸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31일 오전 한 KT 주주가 서울 서초구 KT연구개발센터에서 열린 제41기 주주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걸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31일 주주총회로 KT에 사장, 이사 10명 중 9명이 공석인 초유의 경영공백이 공식화했다. 사장 3차 공모, 이사진 재구성 등 정상화에는 몇 달이 걸릴 것이다. 1월 말부터 하락 중인 주가는 장중 한때 52주 신저가를 기록했다. 매출 25조 원, 재계 12위 기업이 두 달 만에 이런 위기에 빠지다니 놀라운 일이다. 정권이 만든 위기라는 게 더욱 놀랍다.

□ 신호탄으로 여겨지는 것은 1월 30일 윤석열 대통령이 “소유분산 기업에 스튜어드십 코드가 작동돼야 한다”고 한 발언이다. 이후 KT 최대 주주인 국민연금이 구현모 전 대표 유임에 제동을 걸었다. 사장 재공모에서 정·관계 출신 인사들이 떨어진 뒤에는 국민의힘이 기자회견을 열고 “사장 돌려막기” “이권 카르텔”이라며 노골적으로 압박했다. 윤경림 차기 대표 후보는 스스로 물러났다. 국민연금이 연임에 찬성하지 않은 사외이사 3명마저 31일 사퇴하는 등 이사들도 줄사퇴했다.

□ 국민연금은 사실 제 코가 석자다. 재정 고갈은 시간 문제이고 연금개혁은 지지부진하니 기금운영 수익률 제고가 절실하다. 그런데도 3월 초 기금운영위원회 상근 전문위원에 검사 출신 한석훈 변호사를 임명하며 우려를 낳고 있다. 이번 KT 개입이 ‘낙하산 사장’으로 이어진다면 그 또한 KT의 미래가치를 떨어뜨려 손해를 자초하는 일이다. 스튜어드십 코드란 국민연금이 주인(연금가입자)의 재산을 관리하는 집사로서 수익을 높이기 위해 투자 기업의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것인데, 정권에 휘둘린 이런 경영 참여는 주인(국민)에 대한 배신이다.

□ KT는 국가기간산업의 대표 기업이며 인공지능, 빅데이터, 클라우드 등 디지털 전환의 중대 기로에 서 있다. 이날 주총에 참석한 KT주주모임 카페 운영자는 “챗GPT 등 치고 나가는 경쟁사를 쫓아가서 역전하고 세계적인 기업이 돼도 시원찮은 판에 이런 경영 위기”가 웬 말이냐고 했다. 정치권이 자리 몇 개 마련하겠다고 세계와 경쟁해야 할 KT를 흔들고 국민연금 가입자에게 손해를 끼치는 게 가당하기나 한가.

김희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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