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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벗어난 통신요금 인하대책

입력
2023.04.01 04:3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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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진
최연진IT전문기자
이종호 과기정통부 장관이 지난달 23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SK텔레콤의 5G 중간요금제를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종호 과기정통부 장관이 지난달 23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SK텔레콤의 5G 중간요금제를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식당에서 양도 많지 않은 라면 한 가지만 비싸게 팔자 값싸고 양 많은 신 메뉴를 늘리라는 요구가 빗발친다. 주인이 고심 끝에 대안을 내놓는다. 기존 라면을 그대로 둔 채 양에 따라 값을 다르게 받는 공깃밥을 서너 가지 추가했다. 과연 이것을 신 메뉴라고 볼 수 있을까. 식당 주인은 선택 사항이 늘었고 적은 돈을 추가해 배도 불릴 수 있으니 가격을 내린 것과 마찬가지인 신 메뉴라고 주장하지만 사람들은 결코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정부의 가계 통신비 인하 요구에 SK텔레콤이 최근 내놓은 5세대(G) 이동통신의 중간요금제를 보고 든 생각이다. 이번 SKT의 중간요금제는 월 5만9,000원을 받는 '베이직 플러스' 요금제에 3,000~9,000원을 추가하면 13~75GB 데이터를 더 쓸 수 있다. 기존 베이직 플러스 요금제에 추가 요금을 내거나 아예 라면과 공깃밥 묶음처럼 데이터 용량을 추가한 요금에 새로 가입하면 이용할 수 있다.

SK텔레콤은 신규 가입이 가능하다는 이유로 새로운 요금제라고 주장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기본 요금의 변동이 없고 부가 선택사항(옵션)만 늘어난 것이어서 요금제라고 보기 힘들다. 그런데도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까지 나서 이례적으로 특정 기업의 요금제를 소개하며 국민들의 통신비 부담이 줄어들 것이라고 옹호했다. 지난 2월 15일 윤석열 대통령이 가계 통신비 경감 방안을 찾으라고 주문한 것에 비하면 결과가 옹색해 설명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별다른 해법이 없는 정부로서는 그럴 만하다. 윤 대통령은 통신 3사의 과점 체계를 깨뜨려 요금 인하를 부추길 수 있는 새로운 경쟁자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하지만 제4이동통신 사업자가 쉽게 나오기 힘든 환경이다. 전국망을 설치하는 데 막대한 투자비가 들어 어지간한 기업들은 엄두를 내지 못한다. 최근 만난 일부 기업들은 정부에서 5G 주파수를 거저 줘도 힘들다며 손사래를 쳤다.

여기에 시장도 없다. 전 국민이 휴대폰을 사용하는 마당에 새로 가입자를 끌어오려면 마케팅 비용을 들여 이통 3사의 가입자를 빼앗아야 한다. 이런 환경에서 정부가 특별한 혜택을 주지 않는 한 제4 이동통신이 나오기 힘들다.

이렇게 되면 정부가 다음 수순으로 꺼낼 수 있는 카드는 알뜰폰 요금 인하다. 알뜰폰은 이통 3사의 망을 빌려 요금을 낮춘 이동통신 서비스다. 알뜰폰 요금을 낮추려면 이통 3사가 망을 빌려주는 도매대가를 내려야 한다. 그래서 과기부는 상반기 중 알뜰폰 요금인하를 목표로 통신 3사와 도매대가 인하 방안을 논의한다. 통신비와 알뜰폰 망 임대료 인하 요구는 아예 정해진 수순처럼 움직이는 정부의 패키지 정책이다. 그래서 이통사들도 이를 염두에 두고 움직이다보니 공깃밥 추가 같은 선택 사항을 요금제라고 우기는 일이 발생한다.

제대로 된 요금 인하 효과를 노린다면 5G보다 3G와 4G 요금을 낮추는 것이 더 낫다. 망 투자한 지 얼마 안 되는 신상품인 5G 요금을 낮추라는 것보다, 오래된 3G와 4G 요금 인하가 더 설득력 있다. 가입자도 5G보다 3G, 4G가 더 많아 요금 인하 효과도 확실하다. 물론 이통사에서는 3G와 4G 요금을 낮추면 5G 이용률이 떨어질 것을 우려할 수 있으나 아직까지 3G와 4G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쉽게 5G로 넘어가지 않는 서민이 대부분이다.

그러려면 정부에서도 정교한 정책이 필요하다. 기업에만 덮어놓고 요금을 낮추거나 요금제를 늘리라고 주문할 것이 아니라 3G, 4G, 5G, 와이파이까지 세분화해서 서민들 입장에서 들여다보는 정책 기교를 보여줘야 한다.


최연진 IT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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