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노인단체, 유럽인권재판소에 정부 제소
"폭염 탓 사망... 정부는 '건강권' 책임져야"
지난달 29일(현지시간)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 위치한 유럽인권재판소(ECHR). 스위스 여성 노인 수십 명이 우르르 이곳 앞에 몰려들었다. "기후변화 때문에 죽을 수도 있는 위험에 처했는데 스위스 정부가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있으니 ECHR가 나서 달라"고 요구하며 행동에 나선 것이다. 이들은 정부가 기후위기 해소를 위해 노력하지 않는 것을 '인권침해'라고 본다. 기후변화가 인권에 미치는 영향을 ECHR가 심리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노인 주도 소송 이례적... "지구온난화 피해, 더 치명적"
스위스 정부를 ECHR에 제소한 이들은 평균 연령 73세의 환경단체 '기후 보호를 위한 노인 여성' 소속 회원들이다. 스위스 전역에서 약 2,000명이 가입했다. 공동회장인 앤 마러, 로즈마리 위들러 발티 등 대표단과 법률 대리인을 맡은 '그린피스 스위스'는 이날 ECHR에서 열린 공청회에 참석했다.
정부를 상대로 하는 기후 소송은 최근 급증하는 추세지만, 노인층이 주도하는 경우는 드물다. '기후위기 피해는 장기간 지속된다는 점에서 젊은 층이 더 많이 입는다'는 일반적 통념과 관계가 있다. 그러나 이들은 "지구온난화는 노인, 특히 노인 여성에게 더 직접적·치명적인 피해를 안기고 있다"고 강조한다. 폭염에 따른 사망이 노인들한테서 더 많이 일어나는 게 대표적이다. 마러 회장은 "높은 기온은 정서적·신체적 고통을 수반하는데, 나이 든 여성을 더욱 아프게 한다"고 말했다고 그린피스는 전했다.
그런데도 정부가 소극적으로 대처하는 건 "유럽인권조약에 명시된 생명, 건강, 복지 등에 관한 권리 침해에 해당한다"는 게 이들의 입장이다. 발티 회장은 "국가가 취해야 할 필수적인 기후 보호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은 노인 여성의 인권침해인지에 대한 답을 시급히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럽 전역에 영향... "기후변화와의 싸움서 중요한 순간"
이번 소송은 미래 세대를 위한 행동이기도 하다. 이들은 "스위스 정부가 지금의 기후변화 대응 정책을 고수하면 2100년 지구 온도는 산업화 이전 대비 섭씨 3도가량 오를 것"이라고 계산한다. '상승폭을 1.5도 이내로 제한하자'는 파리기후협약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는 얘기다.
2016년부터 스위스 내부에서 이같이 주장하며 소송을 진행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2020년 ECHR로 '전장'을 옮긴 건 이 때문이다. ECHR 판단은 이르면 올해 말쯤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이 승소할 경우, 유럽 내 다른 국가뿐 아니라 국제사회가 더 과감한 기후위기 대책을 내놓는 주춧돌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국제환경법센터는 "기후변화와의 싸움에서 중요한 순간"이라며 "(이번 소송의 판결이) 국가가 인권 보호 의무 차원에서 기후변화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는 걸 확인하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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