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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책임 주장에 희생되는 말기 환자들

입력
2023.03.30 20:0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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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대석
허대석서울대병원 내과 명예교수

편집자주

국민 10명 중 8명이 병원에서 사망하는 현실. 그러나 연명의료기술의 발달은 죽음 앞 인간의 존엄성을 무너뜨린다. 과연 우리는 어떻게 죽어야 할 것인가.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병원에 출근하자마자 응급실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내가 진료해 오던 환자가 의식을 잃은 채 병원에 실려 왔다는 것이다. 불과 일주일 전에 퇴원한 50대 후반의 남자 간암 환자였다. 단기간에 상태가 악화한 것을 의아하게 여기면서 응급실로 달려갔다. 환자는 황달과 복수 소견을 보였고, 주변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는 혼수상태였다.

수년 전 간암으로 진단된 그는 색전술과 항암제 치료를 받으면서 투병해 왔는데 최근 더 이상 항암 치료에 반응이 없었다. 환자와 그의 아내는 모두 대학교수였고 병의 진행 상태를 이해하고 있었다. 항암 치료에는 반응하지 않았지만 전신 상태는 나쁘지 않아 한동안은 평소처럼 생활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퇴원하였다.

응급실에 도착해서 환자를 진찰한 뒤 옆을 보니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모습의 부인이 서 있었다. 일주일 전에 비해 전신 상태가 급격히 나빠진 원인을 알기 위해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봤다. 간암 환자가 성분 미상의 건강보조식품을 먹고 상태가 갑자기 악화하는 경우가 많기에 평소에 먹지 않던 것을 먹었는지도 물어봤다.

그런데 환자를 혼수상태에 이르게 한 원인은 무엇을 먹었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아무것도 먹지 않은 데 있었다. 그는 금식기도원에 가서 단식한 것이었다. 병원에서 퇴원한 그는 자신의 병이 불치병이고 수개월 내 사망하리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이것을 해 봐라, 저것을 먹어봐라"라며 조언을 들었는데 그중에서 "금식기도로 말기 암 환자가 완치되었다"라는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였다.

환자는 그 금식기도원을 수소문해 찾아가 금식기도를 시작한 지 사흘 만에 혼수상태에 빠졌다. 간암 환자들은 대부분 간경변을 동반하고 간 기능이 저하되어 있어 금식과 같은 극단적 자극을 받으면 간성혼수상태가 발생한다. 다시 입원한 그는 계속 혼수상태로 있다가 나흘 뒤 사망했다. 이 환자는 집에서 요양하면서 있었더라면 몇 달간 가족과 함께 삶을 마무리할 시간을 가질 수 있었을 텐데 갑자기 돌아가신 것이었다.

이와 유사한 일들은 지속해서 발생하고 있다. 최근 2, 3년 전에는 개 구충제로 말기 암을 극복했다는 미국인의 개인적인 경험담이 유튜브를 통해 알려지면서 개 구충제 구하기가 하늘에서 별 따기만큼 어려워지는 일이 언론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구충제를 복용하는 말기 암 환자들이 경쟁적으로 유튜브에 올린 영상을 일부 언론이 여과 없이 보도하면서 큰 혼란이 있었다. 실제 공식적인 임상시험에서 효과를 보인 암 환자가 없었고, 간독성 등의 부작용으로 환자가 손해를 볼 수 있음이 알려지면서 지금은 열기가 시들해졌다. 이런 주장에 동요되는 이유는 절박한 상황에서는 지푸라기라도 잡고자 하는 것이 인간 심리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의학적으로 더 이상 치료 가능성이 없다는 이야기를 전하면 쉽게 받아들이는 경우는 드물다. 말기 암을 완치시켰다는 신약이나 치료법을 찾아 외국으로 떠났다가 가족들이 임종을 지키지도 못하고 시신으로 돌아오는 환자들도 적지 않다. 주장이 사실로 인정받아 현장에서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단계에 이르기까지는 수많은 검증을 받아야 한다.

새로운 의료기술은 '신의료기술평가'라는 법적 제도를 통해 안전성과 효능을 평가받아야 하는데 대부분의 근거 없는 주장들이 이런 과정에서 사라진다. 검증 과정에 걸리는 시간이 길다는 이유로 검증 과정 자체를 행정적인 규제로 매도하기도 한다. 주장이 사실로 인정받지 못하는 가장 흔한 상황은 개발자는 효과가 있다고 주장하지만 다른 연구자들이 검증해 본 결과 효과를 입증하지 못하거나 효과는 있으나 부작용이 심각하여 일반적으로 사용하기 어려운 경우이다.

현실이 안 좋은 상황일수록 그것이 실현이 가능한 일인지 여부를 따지기보다 우선 희망을 말해 주는 사람을 믿고 싶어 한다. 문제는 그런 이야기 대부분이 일방적 주장이지 과학적 검증을 거친 사실이 아니라는 점이다.

허대석 서울대병원 내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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