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점심을 먹으러 식당에 갔는데 탁자에 보리 같이 생긴 것이 놓여 있었다. 자세히 보니 엿기름이었다. 엿기름은 보리에 물을 부어 싹이 트게 한 다음에 말린 것으로 식혜나 엿을 만드는 데에 쓰인다. 그런데 엿기름은 기름(油)도 아닌데 왜 기름이라는 이름이 붙었을까? 엿을 만들 때 쓰는 것이니 '엿기름'의 ‘엿’은 다디단 그 엿이겠지만 '기름'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16세기 문헌 '신증유합'에서 한자 '糱'을 '보리길움 얼'이라고 풀이한 것을 보면 '기름'은 '기르다'에서 왔을 가능성이 높다. '糱'은 '곡식에 싹이 자란 것, 싹이 트다'의 의미가 있다. 보리길움은 보리에 싹이 트도록 기른 것으로 지금의 엿기름을 이른다. '기르다'의 명사형 '길움'이 '기름'으로 바뀌어 엿기름과 같은 형태가 된 것이다. 콩나물과 숙주나물의 옛말인 콩기름, 녹두기름도 엿기름과 관련 있다. 콩나물과 숙주나물은 '콩, 녹두에 물을 주어 싹을 내어 기른 것'으로 이때의 '기름'도 엿기름의 '기름'과 같다.
엿기름은 엿길금이라고도 하고 지역에 따라 '보리질금, 엿지름, 엿질금' 등으로 나타난다. '길금, 질금' 역시 '기르다'와 관련이 있다. '기르다'의 방언형 '길구다'가 '길금/질금'으로 변화한 것이다.
엿기름의 기름이 기름(油)이 아님을 알았듯, 말의 뿌리를 찾다 보면 몰랐던 말의 뜻을 알아가는 소소한 재미가 있다. 요즘 우리말의 어원에 대한 관심이 높은 이유일 것이다. 말의 뿌리를 찾는 것은 어휘가 살아온 역사를 알아 가는 일이다. 어휘가 살아온 역사는 곧 우리말의 역사이다. 소중한 우리말의 역사를 담을 그릇, 어원사전이 필요한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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