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징용 해법, 일본에 '과거사 문제 삼지 않는다' 신호"
"한국 입장 고려해 일본 역사 서술하도록 한 조항 부활해야"
일본의 교과서 개악에 대한 비판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일본 내 우경화가 더 빨라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이를 막으려면 우리 정부가 일본에 교과서 왜곡을 막는 장치인 ‘근린제국조항’ 부활을 제안해야 한다는 강창일 전 주일대사의 주장도 제기됐다.
오태규 전 총영사 "일본 제동할 브레이크 우리가 풀었다"
일본 문부과학성은 지난 28일 ‘독도는 일본의 고유 영토’, ‘(조선인은) 일본군의 병사로서 참가’했다고 기술한 초등학교 사회 교과서의 검정 심사를 통과시켰다. 일본의 식민 지배를 희석시키는 역사 기술을 한층 더 강화한 것이다. 이에 대해 오태규 전 일본 오사카 총영사는 29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에서 “10년간 계속된 우경화의 연장선상”이라며 “이제까지 차근차근 일본 사회 전체가 우경화되는 흐름 속에서 교과서도 이렇게 과거 역사를 지우고 찬양하는 식으로 계속 강화되어 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앞으로 이런 우경화가 더욱 강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오 전 총영사는 “강제노동 문제 갈등의 뿌리를 보면 ‘일본의 식민 지배가 불법이었다’는 한국 쪽과 ‘합법이었다’는 일본 쪽의 시각차 대립”이라며 “그런데 정부 (강제징용) 해법은 결국 일본의 주장을 전폭적으로 수용한 것이라서 일본이 ‘(한국이) 과거사에 대해서는 더 이상 이렇게 크게 문제를 삼지 않겠구나’ 이렇게 볼 수 있는 어떤 충분한 신호였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교과서를 비롯한 우경화 작업이 더욱 강하고 빨리 전개되지 않을까 예상한다”고 덧붙였다.
결국 일본의 역사 왜곡에 제동을 걸 명분마저 잃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과거사 부분에 대한 지적, 경고가 일본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것에 대한 브레이크 역할을 할 수 있는데 (이번 한일 정상회담에서) 우리 스스로 브레이크를 풀어놓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강창일 전 대사 "우익세력 면밀히 파악했어야"... 정부 "대일외교와 교과서는 무관"
일각에서는 얼마 전 한일 정상회담에서 우리가 ‘통 큰 양보’를 하고 일본의 호응을 기다리던 중 되레 교과서 왜곡이라는 ‘뒤통수’를 맞았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강창일 전 주일대사는 정부가 일본 우익세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강 전 대사는 이날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와 “일본 사회가 점점 우경화되고 있고 자민당도 그 세력들에 의해서 움직이고 있다”며 “우리가 통 크게 대승적 결단을 내렸다고 했을 때 이 사람들은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고 ‘때렸더니 그냥 말 잘 듣는다’ 이런 식으로 인식을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런 것도 면밀히 파악을 해서 대책을 냈어야 되는데 너무 쉽게 생각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반면 정부는 교과서 왜곡은 우리 정부의 대일외교와는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4월 검정 신청이 완료된 교과서에 대해 검정을 통과시킨 것이므로 12일 전에 있었던 한일 정상회담과 연결시키는 것은 무리라는 것이다. 오 전 총영사는 “교과서 검정은 몇 개월 쭉 이어지는 것이고 정상회담은 그 가운데 들어가서 하는 것이라 엄밀하게 원인과 결과의 관계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면서도 “하지만 일반 시민들이 볼 때는 우리가 일본에 이렇게 많이 퍼주기를 했는데 결국 돌아온 게 뭐냐, 이런 식의 인식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 입장 고려한 일본사 서술' 조항 부활해야"
일단 우리 정부는 일본에 항의한 상태다. 외교부와 교육부는 28일 성명을 내 “교과서를 통한 부당한 역사와 영토 주장을 멈추라”며 유감을 표명했다. 조현동 외교부 1차관은 구마가이 나오키 주한일본대사대리를 초치해 항의했다.
강 전 대사는 이제 새로운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가 (5월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만날 때 옆 나라에 대한 배려를 명시한 ‘근린제국조항’을 부활하자고 얘기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근린제국조항은 일본 문부과학성의 교과서 검정 기준 중 하나로, 일본 근현대사를 서술할 때는 한국, 중국 등 주변국의 입장을 고려해야 한다는 조항이다. 1982년 일본이 교과서 검정 과정에서 한국과 중국에 대한 침략을 ‘진출’로, 한국의 3·1운동을 ‘폭동’으로 수정하도록 한 일이 드러나 한국과 중국이 거세게 반발하면서 생긴 조항이다. 하지만 2014년 아베 정권에서 “정부의 통일된 견해를 교과서에 반영시켜야 한다”고 결정한 후 근린제국조항은 사실상 무력화됐다. 이후 일본 우익 세력들의 견해가 교과서에 점차 반영되며 확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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