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르·FIFA, "열악한 처우 개선" 약속 불구
"월드컵 후 실직·저임금 여전… 빈곤 수렁에"
한국 경기도 만한 크기에 인구 300만 명 미만인 카타르가 지난해 월드컵을 무사히 치를 수 있었던 데에는 이주노동자들의 공이 컸다. 축구 인프라가 부족한 상황에서, 이주노동자 250만 명이 터무니없는 저임금을 받으며 월드컵 준비에 동원됐기 때문이다. 노동력 착취 논란이 국제 문제로 비화하며 '월드컵 보이콧' 움직임마저 일자, 카타르와 국제축구연맹(FIFA)은 이들의 열악한 처우 개선을 약속하고 나섰다.
그러나 현실은 바뀐 게 없다. 월드컵이 끝난 지 딱 100일 만인 28일(현지시간), 영국 가디언은 "카타르 이주노동자 상당수가 여전히 빈곤의 수렁에 빠져 있다"며 그 실태를 보도했다.
348시간 근무에 월급 49만 원… "선택의 여지 없다"
가디언에 따르면 호텔과 박물관 등에 투입된 사설 보안요원들이 대표적 사례다. 월드컵 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법률에 규정된 최저시급에도 훨씬 못 미치는 '노예 노동'에 내몰려 있는 것이다. 통상 한 달에 348시간 근무하고, 310파운드(약 49만 원)의 임금을 받는다. 여기엔 104시간의 초과근무 수당도 포함되는데, 이때 시급은 35펜스(약 456원)도 안 된다고 가디언은 지적했다.
지난해 1인당 명목 국내총생산(GDP)이 8만2,886달러로, 한국(3만3,591달러)의 두 배가 넘는 '부자나라' 카타르에서 실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보안요원으로 일하는 한 이주노동자는 "우리는 착취당하고 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다"며 "월드컵은 끝났고, 우리는 현 상황을 견뎌야만 한다"고 가디언에 말했다.
오히려 상황은 더 악화했다. '월드컵 특수'가 끝났기 때문이다. 서아프리카 기니 출신 아부바카르는 "월드컵 폐막과 함께 일이 뚝 끊겼다"고 했다. 일자리가 사라져 '실직과 빈곤'의 악순환에 빠졌다. 이틀을 쫄쫄 굶다가 결국 고향의 가난한 가족한테 손을 벌려야 했다는 그는 "세계 최고의 부국 중 한 곳에 있는데 아프리카에 돈을 구걸하고 있다니, 아이러니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비자 사기' 빚 때문에 고향에도 못 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도 쉽지 않다. 빚더미 탓에 카타르에 발이 묶인 탓이다. 가나 나이지리아 시에라리온 기니 니제르 등 아프리카 출신 이주노동자 대부분은 비자 브로커에 속아 이미 많은 채무를 진 채 카타르 땅을 밟았다.
예컨대 비자 브로커들은 "취업비자로 전환될 것"이라며 '하야카드' 발급을 핑계로 거액을 요구했다. 하지만 하야카드는 카타르가 월드컵 관광객에게 입국 비자 대신 내준 것이다. '취업비자 전환'은 완전히 거짓말이었다. 나이지리아 출신 하킴은 "재산을 모두 팔아 200만 나이라(약 600만 원)를 브로커에게 줬으나, 이곳에 버려졌다"며 "카타르 입국 후 단 1카타르리얄도 벌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브로커의 농간을 눈치챘을 땐 이미 늦었다. 역시 나이지리아 출신인 아마드는 가족과 친구한테 빌려서 모은 1,070파운드(약 171만 원)를 브로커에게 모두 건넨 후에야 속았다는 걸 알게 됐다. 카타르 수도 도하 외곽의 작은 방에서 다른 이주노동자 9명과 함께 지낸다는 그는 "집에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다. 빚을 갚아야 한다"고 말했다.
카타르는 이런 현실에 눈을 감고 있다. 카타르의 외신 담당 대변인은 가디언에 "근로자 수십만 명이 지역 최초로 도입된 최저임금과 보건·안전 기준 개선, 전직의 자유 등 노동 개혁의 혜택을 받았다"고만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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